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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임수]20세기 이후 全無했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번엔…

동아일보 정임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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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만과 맞닿은 중동 산유국에서 원유나 천연가스를 싣고 큰 바다로 나가려면 이란과 오만 사이에 있는 호르무즈해협을 지나야 한다. 호리병같이 생긴 이 뱃길은 이란과 오만이 절반씩 관할하지만, 수심이 100m 안팎으로 얕은 데다 폭이 가장 좁은 곳은 39km에 불과해 대형 유조선은 그나마 수심이 깊은 북쪽 이란 해역을 통과해야 한다. 여기서도 들어가는 배와 나가는 배는 각각 3km 너비의 정해진 항로를 따라 이동해야 한다. 배 한 척만 틀어져도 수로가 엉키며 마비되는 구조인 셈이다.

▷그동안 미국의 압박이 거세질 때마다 이란이 ‘호르무즈 봉쇄’ 카드를 꺼내든 배경이다. 전 세계 원유 소비량의 20%, 중동 산유국이 수출하는 원유의 85%가 오가는 이 길목을 막아 국제 사회에 타격을 주겠다는 것이다. 2012년 미국이 이란의 핵 개발 의혹을 제기하며 이란산 원유 수입을 금지하자 이란은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엄포를 놨고, 2018년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이란 핵 합의를 파기하고 제재를 복원했을 때도 봉쇄 위협으로 맞섰다.

▷미국이 21일(현지 시간) 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에 개입해 이란 본토를 공습하면서 호르무즈의 봉쇄 가능성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이란 의회가 곧바로 호르무즈 봉쇄를 의결해 최고국가안보회의의 최종 결정만을 남겨 놓고 있다.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주가와 환율이 출렁이는 등 글로벌 금융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호르무즈 폐쇄가 현실화하면 국제 유가가 지금의 두 배로 치솟아 ‘워플레이션’(전쟁+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거라는 경고까지 나온다.

▷그런데 이란이 쥔 사실상 유일한 공세 카드임에도 20세기 이후 봉쇄가 현실화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란 해군사령관이 한때 “호르무즈 봉쇄는 물 마시는 것만큼 쉽다”고 큰소리쳤지만, 실행에 옮기는 것이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서방의 제재로 극심한 경제난을 겪는 이란이 수출 대부분을 원유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수출길을 막는 건 자해나 다름없다. 게다가 저렴한 이란산 원유를 대거 수입하며 이란을 편드는 동맹국 중국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도 딜레마다.

▷호르무즈 봉쇄가 가시화하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나라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이다.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원유의 70% 이상이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등으로 수출되고, 특히 한국이 수입하는 중동산 원유의 99%가 이곳을 거친다. 한국은 이란의 도발에 맞서 달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5년 전 아덴만에 파견된 청해부대를 호르무즈해협으로 파병한 적도 있다. 이번에도 국내 선박과 유조선이 표적이 되면 청해부대가 출동할 가능성이 크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 호르무즈 봉쇄의 불똥이 어떻게 튈지 걱정스럽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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