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미국의 압박이 거세질 때마다 이란이 ‘호르무즈 봉쇄’ 카드를 꺼내든 배경이다. 전 세계 원유 소비량의 20%, 중동 산유국이 수출하는 원유의 85%가 오가는 이 길목을 막아 국제 사회에 타격을 주겠다는 것이다. 2012년 미국이 이란의 핵 개발 의혹을 제기하며 이란산 원유 수입을 금지하자 이란은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엄포를 놨고, 2018년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이란 핵 합의를 파기하고 제재를 복원했을 때도 봉쇄 위협으로 맞섰다.
▷미국이 21일(현지 시간) 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에 개입해 이란 본토를 공습하면서 호르무즈의 봉쇄 가능성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이란 의회가 곧바로 호르무즈 봉쇄를 의결해 최고국가안보회의의 최종 결정만을 남겨 놓고 있다.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주가와 환율이 출렁이는 등 글로벌 금융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호르무즈 폐쇄가 현실화하면 국제 유가가 지금의 두 배로 치솟아 ‘워플레이션’(전쟁+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거라는 경고까지 나온다.
▷그런데 이란이 쥔 사실상 유일한 공세 카드임에도 20세기 이후 봉쇄가 현실화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란 해군사령관이 한때 “호르무즈 봉쇄는 물 마시는 것만큼 쉽다”고 큰소리쳤지만, 실행에 옮기는 것이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서방의 제재로 극심한 경제난을 겪는 이란이 수출 대부분을 원유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수출길을 막는 건 자해나 다름없다. 게다가 저렴한 이란산 원유를 대거 수입하며 이란을 편드는 동맹국 중국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도 딜레마다.
▷호르무즈 봉쇄가 가시화하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나라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이다.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원유의 70% 이상이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등으로 수출되고, 특히 한국이 수입하는 중동산 원유의 99%가 이곳을 거친다. 한국은 이란의 도발에 맞서 달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5년 전 아덴만에 파견된 청해부대를 호르무즈해협으로 파병한 적도 있다. 이번에도 국내 선박과 유조선이 표적이 되면 청해부대가 출동할 가능성이 크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 호르무즈 봉쇄의 불똥이 어떻게 튈지 걱정스럽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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