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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호 인권위원장(왼쪽)과 이숙진 상임위원을 비롯한 위원들이 23일 서울 중구 인권위에서 열린 제13차 전원위원회에 참석해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
“내란이란 말 함부로 쓰는데, 지금 내란 인정한 유권해석 있어요?”(한석훈 위원)
“내란인지 아닌지는 대법원 판결이 나 봐야 합니다.”(김용원 상임위원)
“계엄 옹호 아니고 형사소송법 원칙상 개인에게 방어권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였는데, 인권위원들에 대한 공격에 언제까지 속수무책으로….”(이한별 위원)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23일 오후 제13차 전원위원회를 열고 표결까지 간 끝에 이재명 정부에 제안하는 16대 인권과제를 의결했다. 이숙진 상임위원과 원민경·소라미 위원이 지난 전원위에 이어 주장한 ‘인권위 정상화’ 내용은 인권과제에 포함되지 못했다. 심의 과정에서 ‘새정부 인권과제’의 내용은 대부분 후퇴했고, ‘인권위 정상화’ 추가를 반대한 위원들은 여전히 12·3 내란사태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이어갔다.
이날 의결된 새정부 인권과제 목록은 △지능정보 사회에서의 인권보호 강화 △기후위기 대응 및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의 취약계층 보호 △실질적 성평등 제도화를 통한 차별시정 강화 △장애인 인권보호 △사회권으로서의 보편적 돌봄권 보장 강화 △기본적 인권보장 체계의 구축 등 16가지다. 처음 사무처에서 올라온 안은 15가지였으나, ‘아동·청소년 인권보호 강화’가 독립된 항목으로 추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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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10일 윤석열 방어권 보장 안건에 찬성한 인권위원들. 왼쪽부터 안창호 위원장, 김용원 상임위원, 한석훈·이한별·강정혜 위원.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
심의 과정에서 하부과제로 제시된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적용 확대’와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 제한 방안 검토’는 한석훈 위원이 반대한 끝에 삭제됐다. ‘장애인 탈시설 정책 지원 강화’도 빠졌다. 대신 국민의힘 등이 주장해온 ‘북한인권재단 설립 촉구’ 등은 추가됐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관련 정부 주도 공론화 추진’은 16번째 ‘기본적 인권보장 체계 구축’의 하부과제로만 포함됐다. 인권위가 참여정부 이후 새 정부에 인권과제를 제시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늘 우선 순위에 두었던 것에 견주면 그 중요성이 축소된 모양새다. 이숙진 위원 등이 이날 강하게 주장한 ‘인권위 정상화’ 과제는 안창호 위원장을 비롯해 김용원·한석훈·이한별·김용직· 강정혜 위원 6명이 반대해 과제에 포함되지 못했다.
이날 의결안건은 ‘새정부 인권과제’였으나 위원들은 지난 2월 의결된 비상계엄에 대한 인권위의 대응을 놓고 더 긴 설전을 벌였다. 이숙진 상임위원이 ‘인권위 정상화’ 내용의 추가 필요성을 주장하며 다시 한 번 인권위의 ‘비정상 상황’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이 상임위원은 “간리(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 GANHRI) 특별심사를 받는 전례 없는 상황에서, 아직도 윤석열 방어권 보장 권고가 옳다고 보는 안창호 위원장의 소신이 인권위의 역할에 위태로움을 주고 있다”며 “위원장께서는 기자회견을 열어 좀 더 자세히 설명을 구하고 설득을 구하든지 조직 수장으로서 상황 타개를 위해 노력해달라”고 말했다. 이에 안 위원장은 “영국이나 캐나다도 시민단체 문제 제기로 간리 특별심사를 받았으나 곧바로 기각됐고 등급이 유지됐다”며 맞섰다.
이날 한석훈·김용원 위원은 ‘윤석열 대통령 방어권 보장 권고’를 다시 한 번 강하게 옹호했다. 한석훈 위원은 “인권위 내부 직원이나 편향된 언론, 국제언론기구에 의해 인권위가 독립성을 침해받고 있다며 이것이야말로 비정상”이라고 했다. 이어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 결정한)헌법재판소 판결의 소수의견에도 대통령의 방어권 보장이 언급됐다”고 했다. 김용원 상임위원도 “인권위 비정상의 핵심은 ‘윤석열 방어권 보장 프레임’”이라며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결의한 안건을 틀려먹었다고 하는데, 이분법적인 사고와 독단적인 인권관이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전원위를 지켜본 인권위 한 직원은 “내란을 옹호하는 위원들의 발언을 들으며 회의를 보는 내내 모욕감이 들었다”며 “존재 이유를 망각한 이들에 의해 부유하는 국가기관의 진면목이 드러난 것 같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이날 의결한 새정부 인권 과제를 24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위원회에 제출한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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