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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과 민정수석, 누구도 몰랐던 ‘비밀 전화’ [뉴스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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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명태균게이트진상조사단이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심우정 검찰총장과 김주현 전 대통령실 민정수석의 비화폰(보안 휴대전화) 통화 의혹과 관련해 심 총장의 사퇴와 특검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명태균게이트진상조사단이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심우정 검찰총장과 김주현 전 대통령실 민정수석의 비화폰(보안 휴대전화) 통화 의혹과 관련해 심 총장의 사퇴와 특검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태규 | 사회부장



“뭐? 검찰총장이 비화폰을 갖고 있었다고?”



심우정 검찰총장이 비화폰으로 김주현 전 대통령실 민정수석과 통화했다는 사실을 법조팀장에게서 보고받고 나는 이렇게 반응했다. 2024년 12월3일 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은 군과 국가정보원 쪽에 비화폰으로 전화를 걸어 “국회의원을 끌어내라”, “싹 다 잡아들이라”고 윽박질렀다. 그날 윤석열은 대통령실에서 앉은 자세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철딱서니 없는 손오공이 여의봉을 휘두르듯 비화폰으로 여기저기 전화질을 해댔다. 비상계엄이 언제부터 기획됐는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는데, 음험한 ‘내란의 도구’였던 비화폰을 검찰총장도 갖고 있었다니…. 나아가 그 통화 상대가 대통령실 민정수석이었다. 점입가경이다.



지난해 5월부터 ‘윤석열 검찰 정권’이라는 외양에 걸맞지 않게 대통령과 검찰총장의 갈등이 노출됐다. 이원석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에 ‘김건희 여사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하자 윤 대통령은 민정수석 직제를 부활시킨 뒤 서울중앙지검 지휘부를 싹 갈아버렸다. 지난해 7월20일엔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대검에 보고조차 하지 않고 김 여사를 ‘출장 조사’했고 이 총장은 ‘대리 사과’하며 반발했다. 검찰의 ‘반항’이 점점 커지자, 윤 대통령으로서는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폭탄을 제거’해줄 이가 필요했을 법하다. 과거 법무부 검찰국장과 검찰과장으로 호흡을 맞췄던 ‘김주현-심우정 짝’을 환상의 조합으로 확신했을 개연성이 컸다.



검찰청법에서는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 법무부 장관만이 검찰총장을 지휘·감독할 수 있도록 규정해놓았다. 검찰 인사권자인 대통령과 그를 보좌하는 참모 등이 수사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칸막이를 쳐놓은 것이다. 심 총장도 지난해 9월19일 취임하면서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이 지켜질 수 있도록 든든한 방벽이자 울타리가 될 것을 약속”했다. 심 총장은 이보다 10여일 앞선 인사청문회에서 “대통령께 충성을 맹세했냐”는 질의(이건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너무 모욕적인 질문”이라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언행일치’를 생각했다면 심 총장은 민정수석과 일반전화로도 통화하면 안 될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취임하고 20여일 뒤 김 수석과 비화폰으로 전화를 주고받았다. 각각의 비화폰은 통화 대상이 일정하게 제한되는데, 검찰총장과 민정수석은 비화폰 통화가 가능했다. ‘통화 가능 설정’ 자체부터 불순한 의도다. 이 시기는 ‘명태균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날 잡으면 한달 만에 대통령이 탄핵될 텐데 감당되겠냐”며 명씨가 검찰을 향해 으름장을 놓은 직후였다.



한겨레가 보도 전 해명을 요청하자 심 총장은 “민정수석으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와 있어서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도·감청이 방지되는 비화폰에 민정수석의 ‘부재중 전화’가 찍힌 순간, 심 총장은 십중팔구 수사 관련 논의를 하기 위한 전화가 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부적절한 통화가 예상되는 상황이었으므로 심 총장은 통화 시도 자체를 물리쳤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심 총장은 도리어 민정수석에게 ‘콜백’을 했다. 심 총장이 민정수석과 ‘은밀한 논의’를 할 자세가 돼 있었다는 점을 방증한다.



심 총장은 “어떠한 경위로 통화 내역을 입수하였는지 알 수 없으나, 검찰 사건과 관련해 통화한 사실은 없다”며 “검찰 정책과 행정에 관한 통화를 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철벽 보안인 줄 알았던 비화폰 통화 내역이 드러난 현실에 당혹스러움이 읽힌다. 영화 ‘암살’에서 변절자 염석진(이정재)은 죽을 위기에 처한 마지막 장면에서 안옥윤(전지현)이 “왜 동지를 팔았나?”라고 묻자 “해방될지 몰랐으니까”라고 답한다. 심 총장도 민정수석과의 비화폰 통화가 이렇게 드러날지 몰랐을 거다. 고검장 출신의 법조인은 “서초동(대검)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 강북(청와대·대통령실)과 직거래하는 거다. 검찰총장이 검찰 행정을 왜 민정수석과 비화폰으로 논의하나. 법무부 장관과 하면 되지. 심 총장이 책임을 회피하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심 총장은 민정수석과 ‘비밀 공유’를 마다하지 않으며, “든든한 방벽이자 울타리”가 되겠다는 약속을 스스로 저버렸다. 내란이 실패하고 2025년에 뒤늦게, 새삼 드러난 대한민국 검찰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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