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흐림 / 7.0 °
한겨레 언론사 이미지

‘인사청문회’라는 늪 [박찬수 칼럼]

한겨레
원문보기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23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안규백(국방부)·정동영(통일부) 등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의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이번주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를 시작으로, 이재명 정부 첫 내각의 본격적인 인사 검증의 막이 올랐다. 연합뉴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23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안규백(국방부)·정동영(통일부) 등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의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이번주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를 시작으로, 이재명 정부 첫 내각의 본격적인 인사 검증의 막이 올랐다. 연합뉴스


박찬수 | 대기자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를 둘러싼 공방은 국회 인사청문회가 얼마나 정파적 다툼의 끝자락까지 갔는지를 보여준다. 대통령의 인사권 남용을 제어하기 위한 인사청문 제도는 미국에선 200년 넘게 지속되며 문제점을 노출하긴 하지만 여전히 기본 골격은 유지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2000년 김대중 정부 시절에 시작한 한국의 고위 공직 인사청문 제도는 불과 20여년 만에 긍정적 의미를 거의 상실한 채 정쟁과 진영 간 쟁투의 장으로 변해버렸다.



단적인 사례가 김민석 후보자의 전 부인을 겨냥한 국민의힘 공세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의 전 부인을 인사청문회 증인으로 세우자고 요구했다. 며칠 전엔 전 부인이 2020년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비상임이사로 선임된 게 의혹이 있다며 기자회견을 했다. 그때가 문재인 정부 시절이고 김 의원이 국회의원이라는 게 주장의 유일한 근거다. 이런 식이라면 윤석열 정부 시절 정부기관이나 공기업에 취업한 친인척을 둔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은 모두 ‘청탁 혐의’로 조사를 받아야 한다. 전 부인의 인권과 프라이버시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는 찾아볼 수 없다.



‘검증’이란 이름으로 후보자 본인 아닌 가족까지 무차별적으로 심판대에 올리는 행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 때 본격화했다. 2019년 조국 청문회에서 국민의힘은 조 후보자 일가의 재산 의혹을 제기하면서 동생 부부가 위장이혼을 했을 가능성이 있으니 전 부인을 증인으로 부르자고 요구했다. 이에 조 후보자 동생의 전 부인은 “합의 이혼했지만 아이와 주변 시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혼 사실을 숨겼다”는 호소문을 언론에 보냈다. 가족을 겨냥하는 데엔, 후보자에게 심리적 압박을 주고 실수를 틈타 국민 정서를 자극해보겠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



국회 인사청문회 전에 검찰이 후보자에 제기된 의혹을 수사하는 것도 인사청문 제도의 본질을 훼손한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인사권은 역시 국민이 선출한 국회에 의해서 감시를 받는 게 합당하다. 검찰이 수사권을 가졌다고 해서 대통령 인사권에 간섭하고 국회의 감시 권한에 영향을 끼치겠다는 건 오만한 생각이다. 공직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은 그 공직에 적합하냐는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이걸 범죄 혐의로 연결하기 시작하면 ‘탈탈 털어서 먼지 안날 사람’만 공직에 기용해야 한다는 식의 비현실적 논리로 귀결된다. 그 과정에서 검찰권이 어떻게 자의적으로 행사되고 정치적으로 악용되는지, 윤석열 시대는 똑똑히 보여줬다. 인사청문회가 후보자 본인뿐 아니라 가족까지 검찰 수사를 받고, 때론 형사처벌까지 감수해야 하는 늪으로 바뀐 지금의 현실을 다시 생각해봐야 할 이유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검증할 책임이 국회에 있다면, 공직 후보자는 국회를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 점에서 김민석 총리 후보자가 수입과 지출 내역을 국회 청문위원들에게 제출하지 않는 건 적절하지 않다. 청문회 직전 또는 청문회장에서 사실을 밝히는 게 야당의 도 넘은 공세를 피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다. 하지만 국회의 고위 공직 검증이란 제도의 취지는 빛이 바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 개인에 대한 평가보다 그가 얼마나 첨예한 진영 대결의 전선에 서 있느냐가 청문회 통과에서 훨씬 중요해진다.



이건 김 후보자가 처음은 아니며, 이미 오래전부터 관행이 되다시피 했다. 미국은 연방수사국(FBI)이 공직 후보자의 재산, 납세, 범죄 경력 등을 조사해서 관련 보고서를 상원에 보낸다. 이 보고서는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된다. 그러니 한국처럼 개각 때마다 후보자들이 기본 자료를 내니 마니 하는 논란이 벌어지지 않는다. 요즘 여당에선 도덕성과 프라이버시 사안은 비공개로 따로 검증하고 국회 청문회에선 업무 수행 능력과 자질에 초점을 맞추자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이런 개선 방안은 이전 정권에선 야당인 국민의힘이 주장했던 것이다.



문제는 ‘내로남불’ 프레임이다. 여야 모두 이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건 맞지만, 비난만 하기엔 인사청문회는 너무 멀리 가버렸다. 진정 내로남불이라 믿는다면, 이제 고칠 때가 됐다. 가령 미국처럼 공직 후보자의 기본 검증자료를 국회가 받을 수 있게 하고, 도덕성과 자질을 분리해서 검증하는 식으로 제도 개선을 모색한다면 여야가 논의를 시작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23일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를 발표했다. 총리에 이어 장관들까지, 위기 상황에서 늪에 빠진 것 같은 청문회 대결을 계속 지켜보는 건 힘든 일이다.



pcs@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김우빈 신민아 결혼
    김우빈 신민아 결혼
  2. 2안세영 야마구치 완파
    안세영 야마구치 완파
  3. 3손흥민 토트넘 이적
    손흥민 토트넘 이적
  4. 4대구FC 한국영 영입
    대구FC 한국영 영입
  5. 5서울광장 스케이트
    서울광장 스케이트

한겨레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