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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전기료 혁신 없인 재생에너지 정책 없다

아시아경제 심성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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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공고를 또 할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지 고민입니다."

지난 3월부터 에너지저장장치(ESS) 민간 보급을 추진해 온 광주시 담당자의 목소리엔 사업 초반의 자신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야심 차게 시도한 사업이지만 1차 공고에서 지원자는 단 한 명도 없었고, 최근 2차 모집에는 그 많던 문의 전화조차 뚝 끊긴 탓이다.

ESS는 낮에 생산한 재생에너지를 저장했다가 피크 시간에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력 수요조절, 계통 안정화에 꼭 필요한 기반 시설이다. 광주를 포함한 호남권은 이미 변전소 용량이 포화 상태에 달해 2031년 말까지는 사실상 신규 발전소 건립이 불가능하다. 광주가 ESS 민간 보급 사업에 선제적으로 첫발을 뗄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ESS는 전기가 싼 시간에 저장해 뒀다가 비쌀 때 판매해 이익을 내는 구조인데, 현재 한전이 적용하는 시간·계절별 요금 차이는 이익을 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업계 안팎의 평가다. 예컨대 중소기업에서 많이 쓰는 300㎾ 미만(산업용 전력 갑Ⅰ저압) 기준으로 여름철 전력량 요금은 1㎾h당 116.2원, 봄·가을철은 94.4원이다. 20원 남짓한 차이로는 설치에 수억 원이 드는 ESS 투자비를 회수하기 어렵다. 광주도 5억원의 투자금 회수까지 10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관측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행 요금 구조의 격차가 ESS 민간보급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한다. 전력시장 민영화가 활발한 미국 텍사스주는 민간 전력 공급회사가 구입하는 도매 전력 가격이 소비자의 전기요금 고지서에 실시간 반영돼 가격 신호가 뚜렷하다. 지난해 기준 미국에서 ESS 설치율이 가장 높았으며, 국내 기업 SK가스 등도 텍사스에서 처음으로 상업용 ESS를 가동 중이다.

현재 한국에서 송전망을 비롯한 전력 계통 부족은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 확충에 핵심 장애 요인이 되고 있다. 전력을 독점 공급하는 한전은 전기요금을 대외 환경에 맞춰 올리지 못하면서 누적 부채가 200조원에 달한다. 한전 혼자만으론 전력수급기본계획 목표를 달성하기에 역부족이다. 재생에너지 목표를 채우기 위해선 태양광·풍력 설비뿐만 아니라 ESS 보급이 확대될 수 있는 전기 시장 구조 혁신이 병행돼야 한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더 이상 환경만의 문제가 아니다. 탄소중립 시대엔 기업 경쟁력과 지역 생존을 좌우하는 핵심 전략이다. 지금 필요한 건 환경 구호가 아닌 전력 시스템 재설계다. 다양한 공급자가 참여하는 전력 시장을 열고, ESS 설치가 가능할 만큼의 요금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높아지고, 전기 소비자도 효율적인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심성아 기자 hea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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