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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청년도, 서울 예비 신부도...강진 농촌에 때아닌 창업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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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소·극·장] #28 전남 강진군
빈집 리모델링 거쳐 무료 제공하고
월세 1만 원 '만원주택'으로 주거 해결
군이 창업 지원, 외지 청년들 소통도 활발
주민과 청년들 힘 합친 '불금불파' 인기

편집자주

지역 소멸위기 극복 장면, '지역 소극장.' 기발한 아이디어와 정책으로 소멸 위기를 넘고 있는 우리 지역 이야기를 4주에 한 번씩 토요일 상영합니다.


전남 강진군의 한적한 농촌 병영면에서 양조장을 만들어 강진 쌀 막걸리 '코리안화이트'와 지역특화 맥주 '하멜맥주'를 생산하는 김휘은(왼쪽 두 번째)씨와 임직원들. 이들 4명은 모두 병영면에 거주하며, 2명은 주민등록도 강진으로 옮겼다. 강진=박민식 기자

전남 강진군의 한적한 농촌 병영면에서 양조장을 만들어 강진 쌀 막걸리 '코리안화이트'와 지역특화 맥주 '하멜맥주'를 생산하는 김휘은(왼쪽 두 번째)씨와 임직원들. 이들 4명은 모두 병영면에 거주하며, 2명은 주민등록도 강진으로 옮겼다. 강진=박민식 기자


경기 의정부시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소규모 양조장을 운영하던 도시 청년 김휘은(36)씨는 2023년 12월 전남 강진군의 한적한 시골 병영면으로 이주했다. 서울시의 도농상생 청년창업 지원사업(넥스트로컬)에 선정돼 주류 제조와 컨설팅·일반음식점이 가능한 법인(ABBF)을 세운 그는 강진의 드넓은 평야에 펼쳐진 농경지를 보고 마음을 빼앗겼다.

애주가인 김씨는 강진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쌀(새청무)이 눈에 들어와 차별화된 막걸리 '코리안화이트'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세계인이 즐기는 발효주 와인처럼 전통 발효주도 잘 만들면 성공 못할 이유가 없다는 호기로운 생각이었다. 농경지 중 82%가 논인 강진이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강진군도 적극적으로 창업과 이주를 도왔다. 297㎡(약 90평) 규모 양조장을 짓는데 필요한 시설자금(5억 원) 중 군이 50%를 지원했다. 임대료도 공공건물임대 규정에 맞춰 연간 250만 원만 내면 된다. 거주할 집은 군이 빈집을 리모델링해 청년에게 무료로 빌려주는 사업(사도삼촌·1주일 중 나흘은 도시에서, 사흘은 농촌에서 생활)을 통해 6개월 지내다 지금은 이장이 소개한 곳에서 부담없이 살고 있다. 임대료는 월이 아니라 1년에 100만 원이다.

가장 큰 문제인 사업장과 주거가 해결되니 사업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농업회사법인(배럭·BARRACK)을 추가로 등록하고, 군의 '하멜맥주' 생산도 맡았다. 조선시대에 네덜란드인 하멜이 7년간 머물렀던 마을이라는 스토리를 입힌 지역특화 하멜맥주는 강진에 맥주 양조장이 없어 이전에는 타 지역 업체가 생산했다. "하멜맥주는 올 2월부터 만들어 1만2,000병을 판매했어요. 강진 쌀로 발효 방식을 달리해 샴페인인 듯하면서도 맥주 같은 독특한 맛을 내는 막걸리 코리안화이트도 이달부터 본격 생산해 납품하고 있죠. 모바일 시대 거래처는 전국입니다. 임직원도 4명으로 늘어났어요. 모두 수도권이나 다른 대도시 출신인데, 강진에 살고 있어요. 그중 2명은 저처럼 아예 주민등록지를 옮겨 강진군민이 됐죠."

도박에 가까운 시골에서 나홀로 창업...뒷배는 지자체



전남 강진군의 한적한 농촌 병영면에서 파스타집을 운영하며 강진산 여주 열매로 피클을 만드는 임고은씨가 자신의 상품을 소개하고 있다. 강진=박민식 기자

전남 강진군의 한적한 농촌 병영면에서 파스타집을 운영하며 강진산 여주 열매로 피클을 만드는 임고은씨가 자신의 상품을 소개하고 있다. 강진=박민식 기자


김씨만이 아니다. 강진의 한적한 시골 마을 병영면에서 도시 청년들이 잇따라 창업하고 있다. 대한민국 인구 절반이 집중된 최대 소비시장 수도권을 뒤로한 채 연고도 없는 농촌에서 홀로 사업하는 건 도박에 가까운 모험. 그럼에도 이들을 붙잡은 건 강진군의 다양한 지역 소멸 위기 극복 사업이다. 1960년대 12만6,000명이었던 인구가 계속 감소해 3만2,722명(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쪼그라들자 강진군은 지자체(서울시·전남도)와 중앙정부(행정안전부·농식품부 등)의 정책을 디딤돌 삼아 청년 창업과 귀농귀촌에 공을 들이고 있다. 소멸 위기 지역의 문제인 빈집 활용 같은 하드웨어뿐 아니라 청년들이 특산품과 지역 자원을 활용한 사업을 하거나 콘텐츠를 제작하도록 '소프트파워'도 강력히 지원한다.

그 혜택을 서울 토박이였던 임고은(35)씨도 누리고 있다. 서울에서 초중고와 대학까지 나와 밴드 활동을 했고 디자인회사, 브런치 카페, 호텔 레스토랑 등에서 일했던 그는 2023년 9월부터 사도삼촌 1호 주택에 입주해 살며 파스타가게 '라라잇'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강진으로 온 계기는 특산품 중 하나인 여주 열매였다. 파스타와 어울리는 음식인 피클을 오이보다 건강에 좋고 식감도 뛰어난 여주로 만들고 싶었는데, 강진군농업기술센터가 꾸준히 품질을 개량한 강진산 여주는 다른 지역 여주보다 더 크고 아삭했다. 임씨는 "여주는 수확 직후부터 신선도가 떨어져 싱싱한 상품을 만들기 위해 내려올 생각을 했다"며 "여유로운 주민들을 보고 더 이상 도시에서처럼 아등바등 살고 싶지 않기도 했다"고 말했다.


전남 강진군 병영면 '불금불파' 관광객 및 매출 추이. 그래픽=신동준 기자

전남 강진군 병영면 '불금불파' 관광객 및 매출 추이. 그래픽=신동준 기자


그가 만든 여주 피클은 KBS1TV '6시 내고향'에 소개되며 소위 대박이 났다. 마을에서 유일무이한 파스타집도 주민은 물론 관광객이 많이 찾아 오히려 '서울 벌이'보다 더 나아졌다. "20평 남짓한 월세가 1만 원이에요. 빈 점포를 군이 거의 무료로 창업 청년에게 지원하는 거죠. 한우 쌀 채소 등은 지역 상품을 쓰고요. 그러니 찹스테이크 2만 원, 버섯크림리소토 1만3,000원, 새우관자알리오파스타 1만4,000원 등 가격이 저렴해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도 잘 드세요. 설과 추석 명절에 손님이 많고, 어버이날은 예약 안 하면 식사를 못할 정도죠. 서울에서 흔한 파스타집이 여기에서는 훨씬 경쟁력 있어요." 결혼을 앞둔 임씨는 예비 신랑과 상의해 강진군에 살기로 하고 지난해 8월쯤 리모델링을 염두에 두고 빈집도 구매했다. 부산 출신인 예비 신랑 역시 곧 강진군민이 된다.

지친 심신 이끌고 온 강진에서 찾은 '진짜 인생'



전남 강진군 병영면에서 소품 매장 오렌지버드를 운영 중인 이자형(31)씨가 본인이 제작한 각종 '병영굿즈'를 소개하고 있다. 강진=박민식 기자

전남 강진군 병영면에서 소품 매장 오렌지버드를 운영 중인 이자형(31)씨가 본인이 제작한 각종 '병영굿즈'를 소개하고 있다. 강진=박민식 기자


병영면에서 소품 매장 '오렌지버드'를 운영하는 이자형(31)씨는 지인인 김휘은씨를 보고 강진에 내려왔다. 그 역시 의정부(초중고)·의왕(대학)·서울(직장) 등 수도권에서 생활했다. 전공(어린이제품디자인)을 살려 주로 굿즈를 제작하는 여러 디자인업체에서 근무했으나 야근이 일상이었다.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2023년 10월 퇴사한 그는 지난해 2월 사도삼촌으로 지내다 월세 1만 원만 내면 최장 5년간 거주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일명 만원주택)으로 옮겼다.

이씨는 "병영면의 유일한 디자이너라 디자인 관련 일을 도맡아 한다"며 "군의 사업 중 디자인과 연관된 일이면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진청자가 그려진 텀블러, 수령 800년으로 추정되는 병영 은행나무를 모티브로 한 은행잎 모양 책갈피 등 오렌지버드에서 판매하는 각종 병영마을 굿즈가 그의 작품이다. 취미로 틈틈이 배웠던 사진 실력을 발휘해 관광객을 안내하고 촬영을 해주는 '사진스테이'도 한다.


이처럼 강진에 온 청년들이 마음껏 꿈을 펼치며 또 다른 청년이 유입되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지고 있다. 병영면 남선마을 주행용(73) 이장은 "젊은 사람들이 병영면에 와서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다"며 "청년이 마을에 속속 모여들고 맥주까지 만드니까 희망이 생긴다"고 말했다.

봄가을 주민과 청년이 만드는 관광 효자상품 '불금불파'



전남 강진군 병영면에서 주말마다 열리는 '불금불파' 행사에서 마을 주민들이 공연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강진군 제공

전남 강진군 병영면에서 주말마다 열리는 '불금불파' 행사에서 마을 주민들이 공연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강진군 제공


청년들은 사도삼촌 프로그램으로 일정 기간 거주해본 뒤 정착을 결정해 주민과 잘 어울릴 뿐 아니라 서로서로 교류도 활발하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역 행사가 2023년부터 시작된 '불금불파(불타는 금요일 불고기 파티)'다. 매년 봄가을에 병영면 5일장이 열리는 자리에서 금·토요일마다 불맛나는 매콤 연탄불고기를 비롯해 강진에 정착한 청년들이 제작한 상품 등을 판매한다. 임고은씨가 만든 피자와 파스타, 김휘은씨가 제조한 하멜맥주, 이자형씨가 제작한 굿즈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각종 공연과 즐길 거리도 어울어진다.

주민과 청년들이 주도하는 불금불파는 2023년 1만3,440명이 방문해 1억2,19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에는 1만2,809명이 찾으며 2억1,054만 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올해도 봄에만 6,233명이 다녀가는 등 지역 상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강진군은 상반기 불금불파를 마무리하고 9월 5일에 재개장해 11월 1일까지 운영할 예정이다.


신이슬 강진군 인구정책과 주무관은 "고령화와 인구 자연감소 추세를 거스를 수는 없지만 청년들이 꾸준히 유입돼 활력이 돌고 있다"며 "청년 창업 지원과 생활인구 확대 정책을 강화해 지역 소멸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말했다.

강진=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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