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이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 그때까지 스스로 의식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제가 이 주제에 대해 알고 싶어 하고 나의 움직임이라는 것을 해결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박솔뫼 ‘극동의 여자 친구들’ 중
김리윤 시인 |
몸을 가진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움직인다. 한 개체의 움직임은 언제나 변화를 담보하고 시간을 끌어당기며 나의 바깥과 뒤섞이는 사건을 발생시킨다. 우리의 몸과 움직임을 의식하는 동안 몸 사이의 구별도, 간격도 잊게 된다. 뒤섞인 숨으로 자욱한 허공에서 너의 숨과 나의 숨을 분간할 수 없듯이.
지난해 머문 태국 북부에서 다른 작가들과 짝을 지어 서로의 움직임을 따라하는 워크숍에 참여했다. 나의 파트너는 영국에서 온 조너선이었고 그는 나보다 서른 살쯤 많았으며 30cm쯤 더 컸다. 우리는 설명에 따라 서로의 눈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시야의 가장자리에서 어른거리는 상대의 움직임을 따랐다. 움직임 자체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던 파란 눈동자를 무언가로 착각했던 것 같은데 그것은 나였을까, 모르는 사람이나 시간이었을까.
개와 걷는 동안 종종 바람과 등을 맞대고 있고 그 바람은 나뭇잎과, 나뭇잎은 새와, 새는 구름과… 그렇게 함께 움직이며 서로의 어깨뼈를 혼동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개는 자주 곤경에 처한다. 나무에 줄이 걸려서, 볼일이 급해서, 땅이 젖어서… 그 앞에서 나는 대체로 발이 가볍고, 뭘 해야 할지 알고, 명료하고 단순하게 몸을 다루는 사람처럼, 그렇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좋다. 나의 움직임이라는 것을 잠시 해결한 듯이.
김리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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