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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想과 세상]나를 사랑하는 나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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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선을 다해 최악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차갑게 튀기는 빛을 헤치며 걷는 숲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 환하고 포근한 풍경에 나는 꽤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 같아 꼭 아름답다고 말해야 할 것 같아 입 다물고 걸으면 금세 최악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고 그곳에는 내가 아는 얼굴이 많았다 너도? 너도 여기 있었구나 신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가엾게 봐주셔서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해주신 거야 우리는 몹시도 기쁜 마음으로 둘러앉아 차를 마셨다 뜨거운 물로 잠깐 바짝 우려낸 차 하지만 돌아갈 수 있을까 그래도 최악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구나 그렇게 말했을 때 누군가, 더 나빠질 수 있을까? 이야기했고, 아니야, 우리는 이미 최악으로 와 있잖아, 그런데 여기보다 더 먼 곳이 있으면 어쩌지 그리고 저 멀리에서는 여전히 최선을 다해 최악으로 걸어오는 아는 얼굴들이 어른어른 보였다. 권누리(1995~)


만약 당신이 최선을 다해 걸어온 길이 최악이었다면, 너무 끔찍한 일이겠다. 언제나 당신은 구부러진 길들을 펴면서, 끊어진 길들을 간신히 이으면서 걸어왔다. 그러나 에움길로 돌아서 겨우 도착한 곳이 절벽 끝이라면, 등 뒤로 으르렁거리는 짐승들이 바짝 다가오고 있다면, 무심코 걸어간 숲이 빠져나올 수 없는 늪이었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러나 당신은 아직 당신의 길을 다 가지 못했다. “저 멀리에서는 여전히 최선을 다해 최악으로 걸어오는 아는 얼굴들”이 희미하게 보이고, 당신은 “여기보다 더 먼 곳”을 향해 불안한 발걸음을 옮겨야만 한다.

지구에는 너무 많은 신들이 있다. 당신의 신과 나의 신이 달라서 우리는 등을 돌린다. 우리 마음에도 너무 많은 신들이 매일 서로 다투고 있다. 왜 당신의 신은, 당신만 사랑하는가. 왜 이 세계는 늘 최악의 길로 내달려 평화가 오는 문을 닫아버리는가. 오늘 죽어가는 지구의 아이들에게 신이 도착하기를! 최선이 최악을 이길 수 있기를!

이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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