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방위비 증액’ 압박 본격화에… 반기드는 동맹국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동맹국들을 향한 방위비 증액 압박을 본격화하자 일본, 스페인 등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일본은 미·일 외교·국방장관(2+2) 회의를 전격 취소했고, 스페인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5%’라는 국방비 증액 목표 합의에서 이탈을 시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22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다음달 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기로 했던 미·일 2+2 회의를 보류하기로 했다. 외교 소식통들은 신문에 “회의를 위한 물밑접촉 과정에서 미국 측이 비공식적으로 일본 방위비를 GDP 대비 3.5% 수준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타진해 왔다”며 “예정대로 회의를 열면 미국이 증액 요구를 공식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도 엘브리지 콜비 미국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이 최근 일본 측에 GDP 대비 방위비를 기존 요구인 3%보다 더 높은 3.5%로 올리라고 요구함에 따라 2+2 회의가 무산됐다고 보도했다. 콜비 차관은 후보자 시절이던 지난 3월 청문회에서도 일본이 추진 중인 2027회계연도 방위비 GDP 대비 2% 목표를 두고 “명백하게 불충분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일본 방위비는 일본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반박했고,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조잡한 논의를 할 생각은 없다”며 불쾌감을 드러냈었다. 일본의 2025년도 방위 관련 예산은 GDP의 1.8% 수준인 약 9조9000억엔(93조5000억원)이다.

미·일동맹을 안보의 핵심으로서 중시하는 일본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리는 2+2 회의를 취소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이를 두고 현지 언론들은 다음달로 다가온 참의원(상원) 선거까지 염두에 둔 결정이라고 분석했다. 교도통신은 “재원 확보 측면에서 전망이 서지 않는 3.5% 증액 요구를 갑자기 받으면 새로운 마찰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했고, 방위성 관계자는 아사히에 “(미국과) 관세 협상도 지지부진한데 방위비 증액 요구까지 받게 되면 2+2 회의 개최는 이시바 내각에 마이너스가 될 뿐”이라고 말했다.

미 국방부가 최근 동맹국들에게 GDP의 5%를 국방비로 지출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한 가운데 유럽 동맹국 사이에서도 균열이 생기고 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나토 32개국 대사들은 24일 개막하는 정상회의를 앞두고 최종 합의안을 논의했지만,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가 “GDP 5% 목표는 불합리하며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합의에서 스페인을 제외해 달라고 하면서다.

유럽 동맹과 거리를 두는 트럼프 대통령을 만족시키기 위해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이 ‘GDP 대비 직접 군사비 3.5%·간접적 안보 관련 비용 1.5%’라는 절충안을 내놨으나 이탈자가 나온 것이다. 스페인은 GDP 대비 국방비 비율이 1.24%로 회원국 중 가장 낮다. 이탈리아, 벨기에, 캐나다, 프랑스 등도 5% 달성이 현실적으로 무리라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8일 경기도 동두천시 캠프 케이시에서 열린 주한미군 순환배치 여단 임무교대식에서 주한미군 장병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향해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국방부는 GDP 5% 기준과 관련해 “한국은 미국의 주요 동맹국 중 GDP 대비 국방비 비율이 매우 높은 국가 중 하나”라는 입장이다. 한국의 올해 국방비는 2015년 37조5550억원 대비 23조6919억원(63.1%) 증가했다. GDP 대비 비율도 2.16%에서 2.32%로 높아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 요구대로 5%(약 132조원)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예산을 2배 이상 증액해야 한다.

정부는 향후 미국과 관련 논의를 진행하기 되면 한국이 역내 다른 국가보다 국방비 지출 확대 기조가 뚜렷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방부는 지난 20일 관련 질문에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위협 등 엄중한 안보 상황을 고려해 국방비를 지속적으로 증액하고 있다”며 “한국은 앞으로도 한반도 방위 및 역내 평화·안정에 필요한 능력과 태세를 구비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쿄=유태영 특파원, 박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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