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훈 전 주일대사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
이수훈 전 주일본 한국대사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은 ‘역사 봉합, 반공 연대’라는 시대적 한계가 있었다면서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은 양국이 이를 극복하고 한단계 높이 나아가려면 상호 존중과 신뢰를 쌓아나가야 하고, 한국만의 양보가 아니라 일본의 호응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7일 오후 서울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한 인터뷰에서 이 전 대사는 이재명 대통령이 강제동원 ‘제3자 변제’에 대해서도 “정책의 일관성이 중요하다”고 밝힌 것은 “맥시멈의 전향적 조치”라면서, 일본이 이 대통령에 대해 ‘반일’이라는 의구심을 버리고 이 대통령의 우호 조치에 적극 화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역사 반성의 의미를 담은 전후 80주년 담화를 발표하고 이것을 기반으로 ‘이재명-이시바 신 한일선언’으로 포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청사진을 만들 수 있다고 기대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한국 정상으로서 22년 만에 일본을 국빈방문하고 일왕의 방한이 이어진다면 양국 관계를 매우 탄탄하게 만들 수 있다고도 전망했다.
문재인 정부의 첫 주일 한국대사였던 이 전 대사는 동북아 정세를 오랫동안 천착해온 국제정치학자이며 민주당 동북아평화협력위원회 특임고문이기도 하다.
—60년 전 수교 당시 한일기본조약에서 일본은 `식민지배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과거를 봉인했고 결국 양국 사이에 과거사 문제는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이에 대해 이재명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1965년 한일기본조약은 ‘역사 봉합, 반공 연대’라는 두 축으로 요약할 수 있다. 둘 다 현재의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다. ‘65년 체제’는 수명을 다했고 그것을 어떻게 대체할 것인가는 시대적 과제다. 그것이 쉽지는 않고 서두른다고 잘 해결할 수도 없다. 한일이 함께 새 합의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국제질서의 대전환기이고 동북아 정세도 무척 불안정하기 때문에 한일 협력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과거사를 너무 전면에 내세우면 한일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진전시키기 어렵다. 한국은 일본을 향해 과거사 직시라는 원칙을 분명히 하면서도 일본의 전향적인 태도를 이끌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번에는 우리만 또는 우리 지도자만 무엇을 내놓아서는 안되고, 일본도 호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일본 총리의 `전후 80주년 담화’나 한일간에 `제2의 김대중 오부치 선언(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 나와야 할까.
“이재명 대통령이 올해 8.15 경축사를 통해 메시지를 내겠지만, 일본이 해야할 역할이 있다. 2015년 아베 총리의 전후 70주년 담화는 역사 반성에 대해 아쉬운 점이 많았다. 올해 전후 80주년을 맞아 이시바 총리가 좀더 역사를 직시하는 담화를 내놓는 것이 바람직하다. 역대 정부의 담화를 계승한다고 하는데 그치지 말고, 식민지배의 불법성 인정이나 과거사에 대한 사과와 반성의 의미를 좀 더 담기를 바란다. 그 토대 위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의 역사적인 ‘신 한일 공동선언’도 만들 수 있다.”
—필요하다면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까.
“1998년의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한일관계에 그치지 않고 동아시아 전체에서 평화적이고 공동체적인 질서를 만들고 대북 화해를 이뤄내는 매우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 ‘신 한일 공동선언’을 만든다면, 성숙한 한일관계를 지향하는 것에 더해, 동북아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적 구도가 고착화되지 않고록 하고, 글로벌한 과제에도 한일이 함께 대응하려는 포괄적인 내용을 담아야 한다.”
—일본 보수에서 이재명 대통령에 대해 `친중, 반일’이라는 비난과 의구심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미 여러차례 과거사를 직시하고 원칙적으로 해결해 나가면서 동시에 경제 문화, 인적 교류 안보까지 협력을 강화·발전시켜 나가겠다는 기조를 밝혔고, 또 실제로도 그런 방향으로 잘 나아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시바 총리와 정상통화를 하면서 ‘상호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견고하고 성숙한 한일관계를 만들자’고 하셨는데, 거기에 이재명 정부의 대일 외교의 큰 틀이 다 담겨 있다. 그런데도 일본에서 계속 ‘반일’ 아니냐고 의구심을 가지는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일본 정부와 전문가들은 한국 새 대통령의 제안에 일본이 어떻게 호응할 것인지, 어떻게 손뼉을 마주쳐서 좋은 결과로 이어나갈 것인지 일본의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 좋은 한일 관계는 어느 한쪽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국민들도 지금 좋은 한일관계를 응원하고 있지만, 일본이 계속 못믿겠다고 하고 우리의 일방적 양보만 요구하면 분위기가 한순간에 바뀔 수 있다.”
―국내 보수 진영에서도 이 대통령에 대해 그런 비판을 하고 있다.
“보수 정부는 한일관계를 잘 하고 민주당 정부가 반일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심각한 ‘착시현상’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2011년 12월 노다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는 동안 90% 이상 ‘위안부 피해 문제’ 얘기만 했고, 다음해에는 독도를 방문했다. 이게 한일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위안부 문제에 합의하지 않으면 아베 총리와 만나지도 않겠다고 버티다가 미국이 나서자 국민 동의도 받지 않고 ‘12·29 위안부 합의’를 했다. 반면 김대중 대통령은 대단한 대일 외교를 펼쳤고, 노무현 대통령도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등에는 비판적이었지만 한일관계를 잘 관리하고 진전시켰다. 이번에 이재명 대통령이 한일관계를 잘 발전시키는 것이 외교에서도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일 정책은 과거사 원칙을 지키면서 필요한 협력은 하는 `투트랙’의 복원이다. 그것이 가능할까.
“이재명 대통령이 투트랙 기조를 복원하겠다는 의지가 강하고 초기 대응을 잘 펼쳐나가고 있기 때문에 복원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특히 이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강제동원 문제에서 ‘제3자 변제’ 방안을 유지할 것인지라는 질문을 받고 ‘정책의 일관성이 중요하다’고 밝힌 데 주목해야 한다. 이 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맥시멈을 매우 전향적으로 내놓은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화답하는 입장을 내놔야 한다. 이렇게 되어야 지속가능하고, 견고하고, 성숙한 한일관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한일의 군사적 협력에 대해서는 여러 우려도 존재한다. 한국이 마지노선으로 여겨야할 원칙은 무엇일까.
“지금 상황에서 한일 간의 안보 협력은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수준까지 갈 것인가가 중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일·한미일 안보 협력도 유지·발전시켜 나간다는 입장이다. 동시에 중국과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복원해야 한다. 미-중 경쟁 속에서 우리가 전략적 자율성의 공간을 마련해야, 균형을 잡는 역할도 할 수 있고 중재 역할도 할 수 있다. 한국이 전략적 자율성의 공간을 확보하려면 미국과 중국중 어느 한쪽에 과도하게 치우치면 안된다. 윤석열 정부는 너무 한쪽으로 가버렸기 때문에 이웃국가와 거의 단절되었다. 지금 동북아 지역에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 구도가 형성되는 중인데 이게 더 굳어지면 한반도 평화에 큰 문제가 된다. 우리는 한반도 평화를 빌드업해 나가면서 동북아 질서도 대결과 충돌의 방향이 아니라 협력을 향하게 하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대만문제를 둘러싼 미-중 갈등이 고조되고, 미국과 일본은 대만에 대한 한국의 더욱 분명한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중국의 대만 침공을 너무 기정사실화하지 말고, 양안관계의 현상을 평화적으로 유지하고, 여건이 되었을 때 양쪽이 합의에 의해 통일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야 한다.”
―한미일 협력과 한중일 협력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것이 가능할까.
“윤석열 정부는 한미일 협력에 너무 치우쳐서 한중일 협력은 우선 순위 밖으로 밀어버렸다. 한중일 3국 협력을 다시 강화하고 무게 중심을 둘 필요가 있다. 한중일 정상회의를 매년 거르지 않고 여는 게 중요하다. 한중일 정상들이 정기적으로 만나면 그 아래서 회담과 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된다. 한미일 협력과 한중일 협력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둘다 이미 협력사무국이 있고 제도화되어 있기 때문에 병행해서 발전시킬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방일은 언제 어떤 형식으로 추진하면 바람직할까.
“한국의 대통령이 일본 국빈 방문을 안 한 지 22년이 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한 지 석 달 만인 2003년 6월에 일본을 국빈방문해서 일본 의회에서 연설하고 아키히토 당시 일왕을 만났고 일본 티브이(TV)에도 출연했다. 그 이후 보수 정부의 박근혜·이명박·윤석열 대통령도 한번도 일본 국민방문을 하지 못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과거사 해결 노력을 잘 하면서도 미래지향적 협력을 진전시키고 셔틀외교도 활발히 하면서 임기 내에 국빈방문도 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것이 성사되면 일왕의 역사상 첫 방한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 2017~2018년 주일 한국대사로 있으면서 일왕 부부를 몇차례 만나 방한을 타진하기도 했는데 당시에는 여건이 맞지 않았다. 한국의 지도자가 오랜만에 국빈방문을 하고 일왕 부부의 답방도 맞물리면 견고하고 성숙한 한일 관계가 궤도에 오를 수 있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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