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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코리안 6/21] ④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_뉴질랜드의 헬렌 켈러와 설리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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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오후, 은은한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는 작업실.

마치 숨결을 불어넣듯 화폭에 코를 가까이 대고 한 획, 한 획 조심스럽게 덧칠하는 청년이 있습니다.

그래픽 펜으로 세밀하게 그려낸 뒤 수채화로 생동감을 더해 색을 입히는 과정.

한 작품을 위해 누구보다 오랜 시간을 몰두하는 최다원 작가입니다.

사실 다원 씨만의 이런 특별한 작업에는 숨겨진 사연이 있습니다.

[최다원 / 순수미술 작가 : 저는 청각 장애와 시각 장애가 있지만, 작품을 통해 세상과 소통합니다.]


다원 씨는 보청기를 해도 잘 들리지 않는 청각 장애인이자, 저시력증 진단을 받은 시각장애인이기도 합니다.

아들이 서너 살 됐을 무렵에야 장애 사실을 알았다는 부모님은 처음엔 현실을 부정하기도 했는데요.

[최승관·김미정 / 최다원 씨 부모 : 현대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그걸 받아들이기 좀 어려웠지만, 이 장애가 삶에 불편하기는 하지만 자기 삶을 완성해 나가는데 불가능한 건 아니다 (생각했어요) 언어가 안 되니까 그림으로 소통을 하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보니까 다른 애들은 2D로 그리는데 얘는 4D로 그리는 거예요. 아 얘가 그림에 상당히 소질이 있구나….]


어린 다원 씨에게 그림은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였습니다.

하지만 사춘기 시절 우울증이 겹치면서 온전히 미술을 즐기기 힘든 순간도 있었는데요.

그때 다원 씨의 손을 꽉 잡아준 사람은 바로 미술 교사, 김민 씨였습니다.


[김 민 / 최다원 씨 스승 : 참 믿기 어려울 정도로 이 친구가 정말 청각, 시각 장애인이 맞나요? 하고 생각이 들 정도로 원근법이 들어 있는 그림을 그린 거예요. 뭔가를 가지고 있는 친구라서 좀 욕심도 나고 호기심도 나고 해서 (가르치기) 시작했죠.]

재능도, 열정도 부족함이 없었지만 정식으로 그림을 배우는 일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화가의 섬세한 조절이 필요한 명암 표현은 특히 어려운 작업이었는데요.

김 씨는 10년 동안 묵묵히 제자의 손목을 붙들고 압력을 조절해가면서 명암 표현을 가르쳤습니다.

수어를 못하는 만큼 손짓, 발짓으로 소통하고 더 자세히 대화하고 싶을 땐 IT 기술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스승과 제자의 끈기는 마치 헬렌 켈러와 설리번 선생의 모습과도 같았습니다.

[김 민 / 최다원 씨 스승 : 이 친구가 만져보거나 보지 않았을 물건을 한번 그려보게 하고 싶어서 (드릴을 주고) 네가 어디까지 이 물건을 잡아낼 수 있는지 표현할 수 있는지 보고 싶다고 했더니 1시간 정도를 그 물건을 들고 황당해 하더라고요. 그리고 놀라웠던 건 냄새를 맡고 만져보고 이해를 하는 거예요. 어떤 불평도 안 하고 끙끙거리고 이해를 한 다음에는 (왼손잡이니까) 오른손으로는 그걸 만져가면서 왼손으로 그리기 시작하더라고요. 머리카락이 서는 걸 느꼈어요. 아 정말 한계가 없구나….]

[모린 카터 / 동료 화가 : 장애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리고 김민 씨는 수년간 다원 씨와 함께하면서 정말 훌륭한 역할을 해줬어요. 서로가 엄청난 인내심을 갖고 대해 왔어요. 참 잘 맞아요.]

그렇게 남보다 더 오랜 시간 공들여 쌓은 다원 씨의 예술성은 조금씩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지난 2024년, 파리 패럴림픽에는 뉴질랜드를 대표해 다른 27개국 예술가들과 함께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모린 디버그 / 구매자 : 시각장애가 있는데도 그런 작업을 해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웠고, 정말 사랑스러운 사람이에요.]

최근에는 오클랜드 한인들이 크라이스트처치에 사는 다원 씨를 초청해 작은 전시회를 마련했는데요.

장애의 한계를 뛰어넘는 다원 씨의 행보는 뉴질랜드 동포사회에도 많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장명애 / 오클랜드 전시회 주최측 관계자 : (장애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견디고 참고 이기면서 이 자기의 모든 생각과 삶을 그림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것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고요. 1.5세대나 2세대들에게는 큰 비전과 도전이 될 수 있겠다….]

[이예빈 / 뉴질랜드 동포 : 너무 대단해요. 저는 상상도 못 하죠. 어떻게 하는지도. 제가 그런 상황에 있으면 이렇게까지 못할 것 같아요. 진짜 대단하고 정말 멋있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눈으로 볼 수도, 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라는 헬렌 켈러의 말에서 영감을 느꼈다는 다원 씨.

캔버스에 펼쳐진 작가의 그림이 유난히 더 아름다운 이유입니다.

[최다원 / 순수미술 작가 : 장애는 한계가 아니라 강점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제 예술은 힘과 회복력의 목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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