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원 작품 읽으며 걷는 문학산책길/바닷가 마을 사람들 애환 서린 소등섬/피톤치드 샤워하는 천관산자연휴양림/마음 건강해지는 보림사 청태전/더운 여름 지친 기운 북돋우는 장흥삼합·갯장어 샤브샤브
발끝으로 전해지는 부드러운 흙길의 촉감. 고요한 숲 사이를 흐르는 바람의 노래. 비강으로 파고드는 피톤치드 가득한 삼나무 숨결. 가끔 고개를 들면 울창한 숲을 비집고 들어오는 한 줄기 햇살까지. 먼 길이지만 오길 잘했다. 숨을 들이쉬는 것만으로도 힐링할 수 있다니. 남도 끝자락, 장흥 국립천관산자연휴양림 속에서 천천히 거닐다 잃어버린 나 자신을 마주한다.
◆작가들이 사랑한 장흥
“성장한다는 것은/ 여덟 개의 발로 디디고 있는 무른 갯벌에 묻은/ 칙칙한 자기 어둠 먹어치우기/ 그 어둠을 빛으로 토해내기/ 자기 껍질 벗어던지고/ 별에게로 달에게로 해에게로 날아가기/ 맨살 되어/ 사랑하며/ 꿈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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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천관산자연휴양림. |
발끝으로 전해지는 부드러운 흙길의 촉감. 고요한 숲 사이를 흐르는 바람의 노래. 비강으로 파고드는 피톤치드 가득한 삼나무 숨결. 가끔 고개를 들면 울창한 숲을 비집고 들어오는 한 줄기 햇살까지. 먼 길이지만 오길 잘했다. 숨을 들이쉬는 것만으로도 힐링할 수 있다니. 남도 끝자락, 장흥 국립천관산자연휴양림 속에서 천천히 거닐다 잃어버린 나 자신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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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여행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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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여행면. |
◆작가들이 사랑한 장흥
“성장한다는 것은/ 여덟 개의 발로 디디고 있는 무른 갯벌에 묻은/ 칙칙한 자기 어둠 먹어치우기/ 그 어둠을 빛으로 토해내기/ 자기 껍질 벗어던지고/ 별에게로 달에게로 해에게로 날아가기/ 맨살 되어/ 사랑하며/ 꿈꾸기”
전남 장흥군 안양면 한승원문학산책길로 들어서자 작가의 대표작 ‘꽃게’가 적힌 시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래, 고통 없는 성장이 어디 있을까. 짧은 시 한 줄에 방황하던 청년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시인이자 소설가 한승원은 담백하지만 깊이 있는 문체로 우리의 삶과 문화를 그린 대표 작가. 요즘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부친으로 더 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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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문학산책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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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문학산책길과 여다지 해변. |
이곳에 한승원의 이름을 딴 문학산책길이 있는 건 장흥은 그가 나고 자란 곳이기 때문이다.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가증스런 바다’가 당선돼 문단에 오른 소설가 한승원은 ‘포구의 달’(1983), ‘불의 딸’(1983), ‘아제아제 바라아제’(1985), ‘해산 가는 길’(1997) 등으로 잘 알려졌다. 토속적인 인간의 삶과 원초적인 생명력, 한(恨)의 공간으로서 자연을 그려낸 작가는 “앞엔 바다, 뒤에는 산을 둔 언덕에 토굴을 지어 살고 싶다”는 소망대로 여다지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안양면 율산마을 ‘해산토굴’에 살면서 글을 쓴다. 한강도 시간이 날 때마다 부친의 고향인 장흥을 찾는다.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이뤄진 한승원문학산책로는 여다지 해변 모래 언덕을 따라 600m가량 이어진다. 산책로 좌우에 20m 간격으로 여다지 바다와 마을 사람들의 정겨운 모습을 그린 한승원의 시비 20여개가 세워져 있어 작품들을 감상하며 걷기 좋다. 장흥군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산책로를 대대적으로 꾸며 문학도시 장흥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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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등섬 포토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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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등섬. |
한승원문학산책로에서 차로 5분 거리 남포마을에선 아주 작은 무인도 소등섬을 만난다. 마침 썰물 때라 바다에 잠긴 소등섬 풍경은 더 외롭고 쓸쓸했다. 고기잡이로 생계를 이어가던 바닷가 마을 사람들의 애환이 서린 곳으로 아버지가 고기잡이를 나갈 때마다 가족들은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며 이 섬에 작은 등불을 켰다. 소등섬은 하루에 두 차례 썰물 때면, 바닷물이 빠지면서 섬으로 이어진 길이 모습을 드러낸다. 왕복 10여분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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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등섬. |
소등섬으로 들어서자 정화수 앞에서 무릎 꿇고 눈을 감은 채 두 손 모아 비는 당 할머니 조각상이 여행자를 맞는다. 남포마을은 약 1000년 전 만들어졌는데 500년 전부터 소등섬을 신성하게 여겨 이곳에 제단을 쌓고 매년 정월대보름 마을의 안녕과 평화, 무병장수,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다. 소등섬과 남포마을은 1996년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95번째 영화 ‘축제’와 같은 해 출간된 이청준의 장편 소설 ‘축제’의 무대다. 노모가 세상을 떠나고 장례식이 진행되면서 가족 간의 해묵은 갈등이 해소되는 스토리를 축제로 묘사했다. 남포마을 해안을 따라 남파랑길 79코스 소등섬 둘레길 2.28㎞가 조성돼 소등섬 풍경과 쪽빛바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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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천관산자연휴양림. |
◆천관산자연휴양림 거닐며 힐링해볼까
소등섬에서 남서쪽으로 약 50분을 차로 달리면 국립천관산자연휴양림에 닿는다. 오솔길로 들어서자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솟아오른 삼나무들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다. 한낮에도 서늘하니 뜨거운 여름에 여행하기 안성맞춤이다. 깊은 숲이라 아주 고요하다.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쉬자 나무들이 쏟아내는 피톤치드가 폐 속 깊은 곳까지 전달되며 한 줌 남은 스트레스 찌꺼기까지 모두 사라지는 기분이다.
휴양림에는 소나무, 편백나무, 노각나무, 동참나무류(상수리, 굴참나무 등), 난대상록활엽수 등 다양한 수종의 침·활엽수류가 고루 분포한다. 특히 휴양림 진입로에는 미래를 위해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지정된 동백숲과 비자나무숲도 조성돼 있다. 또 숲속의 집, 야영장 등 숙박시설과 자연관찰원, 잔디광장, 어린이놀이터, 물놀이터, 체력단련시설, 캠프파이어장 등 다양한 시설도 마련돼 휴가를 보내기 좋다. 휴양림 안에 산책로 1.7㎞가 마련돼 있고 왕복 3시간이 걸리는 천관산 등산로도 이어진다. 정상에 오르면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광과 천관산의 기암괴석이 어우러지는 풍경을 파노라마로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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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126도타워 조형물 ‘율려(律呂)―어울림의 시작’. |
휴양림에서 차로 40분 거리 관산읍 바닷가에는 지상 10층, 높이 약 46m의 거대한 ‘장흥126도타워’가 우뚝 서 있다. 서울 광화문을 기점으로 경도상 정남쪽에 장흥이 있어 정남진 전망대로 불렸는데 최근 정남 경도 126도를 강조하는 새 이름 ‘장흥126도타워’를 얻었다. 1층 라운지에서 승강기를 타고 10층 전망대에 오르자 득량도, 소록도, 연홍도, 거금도, 금당도 등 남해안에 흩어진 섬들이 수묵화처럼 펼쳐지는 풍경에 감탄이 쏟아진다. 9층 카페에서는 시원한 통창으로 장흥 바다를 즐기며 커피 한잔 할 수 있다. 타워 앞마당에 설치된 지름 7m 원형 조형물은 바다와 사람이 원 안에 담기는 인기 높은 포토존으로 작품 이름은 ‘율려(律呂)―어울림의 시작’. 율려는 가락과 조화를 뜻하며 국악 용어로 전망대, 바다, 사람의 융합을 상징한다. 스틸 소재로 만든 작품 안쪽에 원을 따라 달려가는 지구촌 어린이들을 조각해 하나 되는 세계를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