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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문역 그 육회… “양이 많다”던 어머니가 한 그릇을 비웠다

조선일보 정동현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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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정동현의 pick] 육회
대학교 때 수유리 사는 친구가 있었다. 한창 서로 놀리기 좋아하던 스무 살 남짓 우리들은 서울에도 ‘리(里)’가 있냐며 웃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나 같은 이들에게 서울은 아직 낯선 곳이었다. 엠티를 수유리로 오면서 가까이 북한산이 보이는 이 동네를 처음 와봤다.

그 후로 꽤 오랜만이었다. 수유를 넘어 쌍문역 근처로 오자 길이 좁아지고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산이 보였다. 쌍문역 뒤편 좁은 길 사이에 작은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중 하얀 바탕에 가는 획으로 쓴 이름이 ‘쌍문육회’였다. 예전에는 육회를 드물게 먹었다. 이 또한 옛날이야기지만 유통이 지금 같지 않아서 도축장 근처가 육회로 유명했고 혹은 아예 얼린 고기를 썰어 내는 경우도 많았다.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오래된 집에서는 여전히 살짝 얼린 고기를 육회로 내놓기도 한다. 보통 그런 집들은 정육점도 겸했던 경우가 많아 가게가 작지 않다. 그러나 이 집은 동네 분식집만 한 크기였다.

쌍문육회의 육회 비빔밥. 매일 마장동에서 받아온다는 한우가 올라간다.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쌍문육회의 육회 비빔밥. 매일 마장동에서 받아온다는 한우가 올라간다.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이른 점심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첫 손님이었다. 혼자 가게를 보는 주인장은 깔끔하게 조리복을 차려입고 있었다. 방금 밥을 짓기 시작해서 음식 나오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설명을 들었다. 어차피 휴가를 낸 날이라 급할 게 없었다. 주방에 들어간 주인장이 바빠졌다. 가게에는 이런저런 문구와 장식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낚싯대도 한쪽에 걸려 있고 까맣게 탄 주인장 얼굴을 보아하니 낚시 취미도 있는 모양이었다.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다니던 낚시 생각이 났다.

부산 영도 동삼중리로 아버지가 낚시를 가는 날이면 동생과 나는 아이스박스를 메고 따라나섰다. 낚시가 잘 안 되는 날이면 아버지는 우리가 떠들어서 고기가 안 온 것이라며 투덜거렸다. 크고 나서는 “붕어 낚시도 아닌 바다낚시에서 그런 핑계가 될 일인가”라고 가족끼리 모여서 웃기도 했다.

그런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식사를 한 지도 3년이 넘었다. “아직도 아빠 생각이 그렇게 난다.” 어머니는 매일 그런 말을 하며 말라갔다. 그래서 어머니와 식사를 할 때면 이것저것 한가득 시켜 놓고 한 숟가락이라도 더 드시길 바라게 된다. 그 덕분에 주인장은 더 바빠졌다.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들렸다. 온전히 우리를 위한 것이었기에 그 소리가 더 반갑게 느껴졌다. 곧 음식이 상 위에 깔렸다. “다 먹을 수 있겠니?” 어머니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것이 나의 얕은 수임을 말하지 않았다.

먼저 육전에 손이 갔다. 유기 접시 위에 올라간 육전은 한우 부챗살을 얇게 잘라 노란 달걀물을 곱게 입혀 부쳐냈다. 입에 넣자 갓 딴 과일을 먹는 것처럼 신선한 기운이 느껴졌다. 전은 역시 즉석에서 부쳐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이 몰리는 식당에서는 그 뻔한 비결을 지키지 못하는 곳이 허다하다. 아니면 비싼 값을 내고 굳이 눈앞에서 부쳐주는 육전을 먹는 방법도 있다. 이 집에서 먹는 육전은 솜씨 좋은 이가 무게 잡지 않고 빠르게 훌훌 부쳐준 산뜻한 맛이었다.


전이 식을까 다급했던 마음은 곧 면이 불을까 하는 걱정으로 이어졌다. 여름 메뉴인 육회 비빔냉면을 오래 가만둘 수는 없었다. 큼지막한 배 하나를 자르던 주인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채 썬 배가 여기 한 움큼, 하얀 마블링이 긴 투플러스 한우가 중앙에 또 한 움큼, 오이채와 절인 무가 또 자리를 잡고 젓가락질을 기다리고 있었다. 살짝 얼린 육수를 깐 덕분에 그릇 밑에는 자박하게 양념이 고였다. 덕분에 맛이 과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넉넉히 올라간 채소와 과일, 그리고 육회가 면과 어울리니 마치 샐러드를 먹는 것 같기도 했다.

버섯과 죽순, 채소와 김 가루를 올린 육회 비빔밥도 맛에 과장이 없었다. 씹으면 갓 지은 밥알과 선홍빛 육회가 촉촉한 양념과 차분히 어울렸다. 입안에 감도는 신선한 육향과 채소의 아삭한 식감이 시냇물을 손으로 떠서 마신 것처럼 상쾌했다. 매일 아침 마장동에서 받아온다는 한우의 맛에 어릴 적 약수를 길어 오던 어른들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그 투명하고 맑은 맛 덕분이었을까, 어머니는 비빔밥 한 그릇을 말끔히 비웠다. 어머니가 식사하는 모습만으로도 안심이 됐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성북동 고갯길을 돌고 돌았다. 어머니는 “이런 고갯길이 다 있네”라며 놀라워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다 알 수 없는 서울이었다. 그 서울의 산에도, 골목에도 바람이 불면 초록 잎이 재잘거리듯 흔들리는 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어머니의 남은 시간도 무성한 여름과 같기를, 그 마음이 큰 욕심은 아니길 바랐다.

#쌍문육회: 육전 2만5000원, 육회 비빔밥 1만원, 육회 비빔냉면 1만원

[정동현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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