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은 빨리 할 수 있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릴 뿐" [송지현의 자.독.추]

김소영 에세이 '어린이라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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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경쟁을 버텨내는 청년들에게 문학도 하나의 쉼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작품 중 빛나는 하나를 골라내기란 어렵지요. 소설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으로 제55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송지현 작가가 청년들의 '자연스러운 독서 자세 추구'를 지지하는 마음을 담아 <한국일보>를 통해 책을 추천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내 생계의 주 수입원은 강의다. 그리고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직업의 특성상 나보다 어린 사람들을 학생으로 만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예전부터 나보다 어린 사람들을 대하는 게 늘 어려웠다.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성숙하고 부끄러운 줄 모르고 부끄러운 일을 저지르던 시절. 나는 그 시절의 기억들이 모두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며, 학생들에게서 그 시절의 나를 겹쳐 보았다.

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는 독서교실을 운영하는 작가가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대화하며 발견한 세계를 기록한 생활 에세이다. 이렇게 말하니 어린이를 주제로 한 여타의 책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어린이를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순수함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을 가려버리거나, 혹은 어린이를 계몽할 대상으로 여기는 그런 책들. 그러나 이 책은 어린이를 '아직 덜 자란 어른'으로 여기지 않는다. 어린이는 이미 완성된 세계를 가진,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개별적 존재라는 걸 깨닫게 한다.

또 이 책은 우리가 모두 한때는 어린이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나는 이 책의 모든 챕터를 좋아하지만, 특히 맨 처음에 있는 '시간이 걸릴 뿐이에요'라는 에피소드를 각별히 아낀다. 이 챕터에는 이제 막 신발 끈 묶는 법을 배운 어린이가 등장한다. 선생님은 신발 끈 묶기를 어려워하는 어린이에게 "어른이 되면서 신발 끈 묶는 일도 차차 쉬워질 거야"라고 말하고 어린이는 "그것도 맞는데, 지금도 묶을 수 있어요. 어른은 빨리 할 수 있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만 달라요"라고 대답한다.

"어느 쪽이 오른쪽 신발일까 골똘히 생각하면서 우리는 어른이 되었다. 신발 뒤축이 구겨지지 않게 손가락으로 당기며 발을 넣었다가 손가락이 안 빠져서 끙끙대면서 어른이 되었다. (중략) 그때도 우리는 우리였다. 지금보다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어린이라는 세계·김소영 지음·사계절 발행·260쪽·1만5,000원

처음 고등학교 수업을 나갈 때 상당히 위축됐던 기억이 난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고등학생인 나'와 마주했기 때문이다. 불안하고, 복잡하고, 뾰족하며 모든 걸 냉소하던 과거의 나, 나에게서 분리하고 싶은 내가 있었다.

그런데 막상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조금씩 알게 되었다. 불안하고, 복잡하고, 뾰족한 세계가 온전히 존재하는 시절이 있다는걸.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과거는 분명히 내가 가졌던 세계, 다만 이제는 떠나와 종종 낯설게 느껴지는 세계일 뿐이었다.

예술을 전공한 친구들끼리 예술활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수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한탄할 때가 많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예술을 전공한 사람 대부분은 교육자로 살아가는 것 같다고. 맞는 말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동의는 아니다.

오히려 나는 예전엔 생각도 못 했던, 남을 가르치는 일을 경험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잊어버렸던 나의 세계를 다시 마주하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사람은 많이 없으니까.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단순히 지식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세계를 잠시 건너가 보는 일인 것 같다. 그리고 타인의 세계에서 언제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이 놀랍다.

송지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