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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시골 땅값 5배 뛰고 짝퉁숍 문 닫고… "트럼프 때문" [아세안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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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트럼프 관세 '나비효과'

편집자주

2023년 2월 한국일보의 세 번째 베트남 특파원으로 부임한 허경주 특파원이 ‘아세안 속으로’를 통해 혼자 알고 넘어가기 아까운 동남아시아 각국 사회·생활상을 소개합니다. 거리는 가깝지만 의외로 잘 몰랐던 아세안 10개국 이야기, 격주 금요일마다 함께하세요!


2일 베트남 하노이 풍쾅 시장에 미처 정리하지 못한 해외 유명 브랜드 모조품(짝퉁) 가방들이 널브러져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2일 베트남 하노이 풍쾅 시장에 미처 정리하지 못한 해외 유명 브랜드 모조품(짝퉁) 가방들이 널브러져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작년 이맘때만 해도 100㎡ 주택용 토지 가격이 10억 동(약 5,200만 원)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50억 동(약 2억6,200만 원)까지 올랐어요.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을 정도로 경쟁도 치열하죠. 왜냐고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때문이죠.”

지난 5일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남동쪽으로 약 42㎞ 떨어진 흥옌성(省) 꽈이쩌우현(縣)의 한 마을.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랐다는 농민 도반훙(57)은 마치 믿기지 않는 일이라도 겪은 듯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홍강 삼각주에 자리한 이 작은 마을은 그간 묘목 재배·판매로 생계를 이어온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다. 10년 전 산업단지 하나가 들어섰지만, 주민 대부분은 여전히 논밭을 일구며 산다. 도반훙 부부 역시 평생 묘목을 키우며 살아왔다. 조용하던 마을은 지난해 하반기 이곳에서 ‘트럼프’라는 이름이 들리기 시작하며 180도 바뀌었다.

지난 5일 베트남 흥옌성 꽈이쩌우현에서 주민 도반훙이 트럼프 가족 기업 '트럼프 오가니제이션'의 대규모 리조트 단지 개발 결정 이후 바뀐 지역 부동산 시장 분위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흥옌=허경주 특파원

지난 5일 베트남 흥옌성 꽈이쩌우현에서 주민 도반훙이 트럼프 가족 기업 '트럼프 오가니제이션'의 대규모 리조트 단지 개발 결정 이후 바뀐 지역 부동산 시장 분위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흥옌=허경주 특파원


트럼프 대통령의 가족 기업 ‘트럼프 오가니제이션’이 베트남 부동산 개발사 낀박시티와 손잡고 이곳에 대규모 리조트 단지 ‘트럼프 인터내셔널 흥옌’을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9.9㎢ 이상의 부지에 18홀 골프장 3개와 5성급 호텔, 고급 주거단지,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선다. 2029년 완공 목표로, 단지는 꽈이쩌우현 7개 마을에 걸쳐 조성된다.

개발 기대감에 지역은 순식간에 투기 광풍에 휩싸였다. 베트남 대표 부동산 플랫폼 밧동산닷컴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꽈이쩌우 지역 토지 가격은 1년 전보다 평균 102% 상승해 ㎡당 2,970만 동(약 157만 원)에 이르렀다. 주요 도로변 인근 필지는 ㎡당 5,000만~6,000만 동(약 265만~318만 원)까지 치솟았다.

지난 5일 도널드 트럼프 가족 기업 '트럼프 오가니제이션'이 대규모 리조트 단지를 개발하기로 한 베트남 흥옌성 꽈이쩌우현의 한 마을 모습. 단지는 현 내 7개 마을에 걸쳐 조성된다. 흥옌=허경주 특파원

지난 5일 도널드 트럼프 가족 기업 '트럼프 오가니제이션'이 대규모 리조트 단지를 개발하기로 한 베트남 흥옌성 꽈이쩌우현의 한 마을 모습. 단지는 현 내 7개 마을에 걸쳐 조성된다. 흥옌=허경주 특파원


또 다른 마을 주민은 “외부인이 몰려들며 목 좋은 곳에 위치한 주택은 5개월 사이 집주인이 네 번이나 바뀌었다”며 “매도 의사를 페이스북에 올린 지 한 시간도 안 돼 수십 명이 집도 안 보고 구매 의사를 밝혔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귀띔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자신을 꽈이쩌우 인근 필리엣 리엔 마을 출신이라고 밝힌 이용자가 “흥옌 땅값이 완전히 미쳤다. 원래 2억5,000만 동(약 1,325만 원)이던 땅이 1년 만에 22억5,000만 동(약 1억1,925만 원)으로 뛰었다”며 “부동산 업자들이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는 것 같다”는 글도 올라왔다. ‘트럼프 효과’에 미국에서 1만3,000㎞ 떨어진 베트남 시골 마을까지 출렁이는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9월 플로리다에서 열린 트럼프 오가니제이션과 베트남 부동산 개발사 낀박시티와의 부동산 개발사업 협약식에서 에릭 트럼프(왼쪽) 트럼프 오가니제이션 부사장, 당딴탐(오른쪽) 낀박시티 회장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낀박시티 제공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9월 플로리다에서 열린 트럼프 오가니제이션과 베트남 부동산 개발사 낀박시티와의 부동산 개발사업 협약식에서 에릭 트럼프(왼쪽) 트럼프 오가니제이션 부사장, 당딴탐(오른쪽) 낀박시티 회장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낀박시티 제공


트럼프 위한 ‘초법적 특혜’


이런 분위기에 쐐기를 박은 건 베트남의 공식 발표였다. 현지 정부는 지난달 16일 트럼프 재단의 제안을 승인했고, 닷새 뒤에는 예정 부지에서 대규모 착공식이 열렸다. 행사장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차남이자 트럼프 오가니제이션 수석 부사장인 에릭 트럼프를 비롯해 팜민찐 베트남 총리, 정·재계 유력 인사가 총출동했다. 단순한 외자 유치가 아니라, 베트남 정부가 이 사업에 거는 정치·외교적 기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땅값 폭등만큼 관심을 끌었던 것은 베트남 정부의 인허가 ‘속도’였다. 통상 2~4년 걸리는 절차가 불과 3개월 만에 끝났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베트남 정부가 △부지 확보 △자금 조달 △환경 영향 평가 등 법적으로 요구되는 최소 6단계의 행정 절차도 생략하고 초고속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건설 인허가를 위한 첫 단계인 각 지역 단위 독립 심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고, 공개 의견 수렴 절차, 도시 계획 관련 법규도 건너뛰었다는 것이다. 사실상 ‘초법적 특혜’였다. 베트남 정부가 국내 법까지 무시하면서 트럼프에게 길을 터줬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달 21일 베트남 흥옌성에서 열린 트럼프 오가니제이션의 고급 리조트 단지 착공식에서 팜민찐(왼쪽 세 번째) 베트남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차남인 에릭 트럼프(맨 오른쪽) 트럼프 오가니제이션 부사장 등 참석자들이 착공 버튼을 누르고 있다. 흥옌=EPA 연합뉴스

지난달 21일 베트남 흥옌성에서 열린 트럼프 오가니제이션의 고급 리조트 단지 착공식에서 팜민찐(왼쪽 세 번째) 베트남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차남인 에릭 트럼프(맨 오른쪽) 트럼프 오가니제이션 부사장 등 참석자들이 착공 버튼을 누르고 있다. 흥옌=EPA 연합뉴스


무리수를 쓴 데는 이유가 있다. 베트남이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관세 좀 낮춰달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베트남에 최대 46%의 상호관세 부과 방침을 밝혔다. 현지 당국은 이를 20%대로 낮추기 위해 각종 ‘당근책’을 꺼내 들고 있다.

지난 4월에는 트럼프 정부 ‘실세’로 꼽히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위성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 베트남 사업을 허가했고, 미국산 농산물과 자동차, 액화천연가스(LNG)도 대거 구매하기로 했다. 이번 골프장 초고속 인허가 역시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베트남 정부의 절박함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2일 베트남 하노이 풍쾅 시장에 유명 브랜드 모조품(짝퉁) 운동화가 전시돼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2일 베트남 하노이 풍쾅 시장에 유명 브랜드 모조품(짝퉁) 운동화가 전시돼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줄줄이 문 닫은 ‘짝퉁 시장’


트럼프발(發) ‘나비효과’는 부동산에 그치지 않는다. 모조품(짝퉁) 생태계도 직격탄을 맞았다. 그간 베트남에서는 나이키·아디다스·MLB 등 스포츠 브랜드부터, 샤넬·루이뷔통·구찌·프라다·에르메스에 이르기까지 각종 해외 유명 명품 브랜드 가품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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