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대전 중구 서대전농협 공공비축미 보관창고에 쌓여 있는 벼./신현종 기자 |
“고고고미(古古古米·아주 오래된 쌀, 정부 비축미)는 닭‘씨’가 가장 많이 먹고 있어요. 인간‘님’은 먹지 않아요.”
지난 8일 일본 입헌민주당 소속 하라구치 가즈히로 전 총무상이 일본 정부의 비축미 방출 정책을 비판하면서 한 말이다. 작년 5월부터 오르기 시작한 쌀값이 1년간 두 배로 뛰자, 일본 정부는 공공 비축미를 직접 반값에 풀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쌀값 잡겠다고 사료용 쌀을 풀어도 먹을 사람이 없다고 지적한 것이다. 정작 반값 비축미가 풀리자 일본 대형마트마다 소비자들이 ‘오픈런’을 불사하며 장사진을 이뤘다. 비싼 쌀값을 견디다 못해 비축미에 몰려드는 국민들을 오히려 ‘닭’으로 매도하는 발언이 되고 만 것이다.
하라구치 전 총무상이 지키고자 한 건 국민 건강이 아니라, 일본판 농협인 전국농업협동조합연합회(JA전농)의 이해였을 가능성이 크다. 쌀값이 오를수록 JA전농의 이익이 커지고, 정치인은 그 표심을 등에 업는다. 일본 정부가 비축미 방출을 미루다 쌀값을 잡지 못한 배경엔 이런 정치적 유착이 있다.
정부가 쌀을 비축했다가 푸는 정책은 정치적 계산이 개입되면서 적기를 놓치기 일쑤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작년 수확기 쌀값이 내려앉자 정부는 쌀 20만톤을 시장에 풀지 않고 사들였다. 작년 쌀 초과 생산량(5만6000톤)의 3.5배 규모다.
그런데 봄철 지나 저장해둔 쌀이 동나기 시작하는 ‘단경기(端境期)’가 되자 민간 쌀 재고가 떨어지면서 가격이 무섭게 오르고 있다. 지난 17일 기준 쌀 20㎏ 소매 가격은 5만8386원으로 평년(직전 3년간 최댓값과 최솟값을 제외한 평균치)과 비교하면 12%나 뛰어올랐다. 수확기에 농민들이 싸게 판 쌀을 소비자들은 비싸게 사는 것이다.
쌀값이 계속 오를 경우 가장 신속한 대책은 정부가 시장에서 격리했던 비축미를 푸는 것이다. 그러나 수확기를 앞두고 정부가 비축미를 풀겠다고 하면 농민단체들은 쌀값 떨어진다며 반발할 테고, 정부는 눈치 보느라 제때 방출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이익을 보는 건 수확기에 쌀을 저장해뒀다가 단경기에 푸는 유통업체뿐이다.
이재명 정부가 내건 쌀값 관리 방안인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이 같은 쌀 물량 조절 대책의 ‘끝판왕’ 격이다. 쌀값이 대폭 떨어질 것으로 우려되면 정부가 쌀이 남는 만큼 의무적으로 매입하고, 반대로 쌀값이 폭등하면 정부 비축미를 판다. 농가들은 정부가 쌀이 남는 족족 사주니 생산량을 줄일 필요가 없어진다. 수확기 쌀값은 늘 하락하게 되고, 정부는 혈세를 들여 쌀을 사들여야 한다. 혹시 흉작 등으로 쌀값이 올라도 비축미를 풀기까지는 농민단체 등의 반발로 오랜 시간이 걸린다. 소비자들은 ‘닭이 먹는 쌀’을 향해 오픈런을 벌여야 하는 상황까지 맞닥뜨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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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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