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도서전 참석차 자신의 데뷔 소설을 들고, 자신이 리드 보컬로 활동하는 밴드와 첫 방한한 대만 작가 장자샹(32). 민음사 제공 |
“그 공연 못 봤지? 안됐다. 정말 환상적이었거든. 그 밴드, 천쓰홍(‘귀신들의 땅’ 작가)이랑도 공연할 거래. 확인해봐.”
알고 지내던 대만국제도서전 관계자가 지난 18일 저녁 ‘왓츠앱’으로 알려왔다.
문재인 전 대통령 등 명사들 출현에 이목이 쏠렸던 18일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일에도 신스틸러들은 존재했다. 그 가운데, 개막 공연을 달군 장자샹(32)이 있다. 도서전의 주빈으로 참여한 대만(타이완)이 대동한 작가다. 서울도서전이든, 주빈 대만에든 1석2조였다. 강렬한 비트로 흥을 돋운 인디밴드 좡카런의 공연에 더불어, 밴드 보컬 장자샹은 자신의 첫 소설로 한국 대중과 만났다.
장자샹은 2022년 장편소설 ‘야관순장’(한국에서는 '밤의 신이 내려온다'로 번역 출간)으로 그해 대만을 대표하는 문학상인 금전상을 수상했다. 소설에 앞서 2021년 같은 제목의 앨범을 발표했고, 그해 대만 최고 음악상인 금곡장 최우수 신인상 후보에 올랐다. “가사의 확장이 소설”이란 말대로, 같은 주제와 예술관으로 소설과 음악을 병행 창작한다.
젊은 예술인의 소설과 음악적 활약도 뉴스이거니와, 양안 관계에서 ‘확고한 독립’을 주장하고 설파하는 신세대란 점에서, 그의 존재는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에 초청된 23명의 대만 창작자 중에서도 두드러진다. “‘중화민국’이란 국가명부터가 대만의 식민 상태”라고 명토박는 엠지(MZ) 작가 장자샹을 19일 오전 서울 오크우드 코엑스에서 만났다.
소설의 원제 ‘야관순장’은 야관(밤의 신)의 강림을 말한다. 작가 이력이 반영된 ‘나’의 고향 마을에서 야관이 돌보는 보잘것없는 민중들의 이야기가 한바탕 펼쳐진다. 죽은 자들이 되살아 현시되는 까닭이 있다. 작가의 말마따나 “대만은 어디서 왔는지, 우리는 누구이고 무엇이 다른지, 대만의, 대만 문학의 정체성을 찾아 나서도록 한 사건”의 희생자들이기 때문이다. 1947년 중국 대륙에서 대만 섬으로 패퇴한 국민당 정부가 당시 폭압에 봉기한 본성인(원주민)을 학살한, “너무나 고통스러워 가정에서도 거의 얘기하지 않았던, 그래서 젊은 세대에겐 한동안 낯설었”던 ‘2·28 사건’을 말한다.
소설과 음악을 동시에 창작하는 장자샹. 민음사 제공 |
―소설의 몸통을 구성하는 귀신들의 의미는?
“2·28 사건은 대만에서 매우 중요하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거의 얘기되지 않았다. 대학에 가서나 조금 배웠다. 2·28 사건 때 죽어 무덤도 없이 묻힌 정치 피해자들을 지키는 신이 바로 소설 속 야관이다. 내가 어려서 본 귀신, 환각이 그들이고, 그들을 ‘신이 지키고 있었구나’ 생각했다. 소외계층의 집결체가 소설이다.”
―소설도, 노래도 대만어로 쓰이고 불린다. 정체성의 표명인가?
“대만에선 중국어에 원주민 언어, 이민자들 언어로 다양한데, 교육을 받을수록 각기 모국어를 상실한다. 책을 읽을수록 ‘고향’과 멀어지는 거다. 근본과 멀어지면 주변과도 멀어진다. 우리 정체성을 찾아가고, 존재함을 보여주려는 게 나의 문학이고 음악이다.”
대만 문학의 정체성이 ‘새삼’ 비등하는 데엔 2018년 대만 최초로 부커상 국제부문 후보에 오른 우밍이 작가(‘도둑맞은 자전거’)에 이어, 지난해 대만인 최초로 전미도서상(번역 부문)을 받은 양솽쯔 작가(‘대만 만유록’)가 크게 기여했다.
―대중성 없는 정체성은 구호에 그칠 수도 있을텐데.
“대만 사람 모두가 역사에 관심 갖진 않는다. 아니, 별로 없다. 나 역시 사명감이 아니라,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갖고 답을 찾고자 할 뿐이다. 이렇게 쓰고 노래해봤자 누가 읽고 들을까 고민도 한다. 다만 나는 내가 사는 이 땅, 이 시대와 대화하고 싶을 뿐이다. 대화를 통해 정체성을 더 알고 싶다.”
―소설과 음악에 대한 젊은 세대들 반응은 어떤가?
“주로 대학생이나 학식층이 호응한다. 그래도 음악이 소설보단 생계에 더 도움이 됐다. 하하”
소설과 음악 창작에 있어 “70%는 자료 조사와 공부”라고 말하는 장자샹은 우이밍 작가가 가르치는 둥화대학에서 공부했고, 대만사범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소설과 음악과 연구가 그의 직업이 된 셈이다. ‘2·28 사건’을 대학 역사 수업 때 ‘광주 5·18 민주화 운동’과 결부 지어 배웠듯, 그에겐 ‘한국’이 하나의 모델이다.
“대만 밴드들의 종점은 ‘케이팝’이라고들 해요. 대단합니다. 들으면 딱 한국적이구나 다가오면서 세계가 인정해요. 대만은 ‘대만 것이네’라고는 해도 세계 진출은 안 되고 있죠. 자신감이 부족한 건 정체성이 모호하기도 해서입니다. 혼합과 다양성이 대만 정체성의 일부이겠지만, 여전히 모호하니까 계속 찾고 있어요.”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