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이 17일 평양을 방문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를 만나 북러 조약 1주년과 북한의 파병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중동의 긴장이 극도로 높아진 상황에서 북한과 러시아가 동맹조약 체결 1주년을 맞았다. 북러 밀착은 중동의 전운과 맞물려 한반도에도 무거운 나비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는 비핵화 협상 재개를 비롯한 긴장 완화의 공간이 더 좁아지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 가속화 우려는 커졌다.
북한은 19일 노동신문을 통해 1년 전 체결된 북러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이 “조로(북러) 친선 관계의 새로운 장”이었다며 양국 지도자의 “선견지명”을 칭송했다. 신문은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온 세계가 주목했다면서 “조약의 가장 모범적인 실천”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해 6월1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한 뒤 체결한 북러조약 4조에는 ‘전쟁 상태에 처하면 지체 없이 상호 군사적 원조를 제공한다’고 규정되어 있어, 북러 동맹관계를 확립했다.
조약 1주년을 이틀 앞둔 지난 17일에는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가 평양을 방문했다. 쇼이구 서기는 지난 3월21일과 6월4일에 이어 이날까지 석달간 세차례나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과 만났다. 이번 쇼이구 서기 방북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러시아에 대한 3차 파병을 결정했다. 지난해 10월 북한군 1만1천여명을 러시아로 파병한 데 이어 올해 1~2월 약 3천명 추가 파병, 그리고 이번에는 지뢰 제거 인원을 비롯한 공병 6천명 파병이다.
이와 맞물린 국제 정세가 공교롭다. 지난 13일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시설과 군 지휘부, 핵 과학자들을 겨냥해 선제공격을 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가세하면서 미국이 개입하는 이란-이스라엘 전면전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특히 미국과 협상 중이던 이란이 이스라엘로부터 선제공격을 당하고 미국이 가세하는 상황을 북한은 어떻게 보는지, 이것이 한반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중요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맞물린 북한 문제가 이젠 중동 상황과도 맞물리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우선 이번 사태가 북한의 위기 의식을 높일 것이고 러시아와의 밀착을 더 강화하게 만들 것이라고 전망한다. 두진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유라시아연구센터장은 “미국이 이란 핵 시설을 타격한다면 미국의 북한에 대한 태도는 더이상 유화 제스처가 아니라 강압으로 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김정은의 위기 의식도 높아졌지만, 동시에 러시아가 확실한 안전 보장이 된다는 점에서 북러 밀착을 더 강화하려 할 것”이라며 “쇼이구 서기의 이번 방북 목적 중 하나도 북한이 위협받을 경우 러시아가 군사적 개입 등으로 안전보장을 하겠다고 재확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위협을 보며 김정은 위원장이 안보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 쇼이구 서기는 3개월 만에 세번째로 평양을 방문해 러시아의 확실한 안전보장을 강조했고, 북한은 3차 파병 결정을 내놨다. 김 위원장은 이란이 가지지 못한 러시아라는 핵심 동맹, 그리고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크게 안도했을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이란과 가까운 사이이기는 하지만, 이번 사태에 개입하지 않고 관망 중이다. 하지만 북한은 유일하게 우크라이나전쟁에서 러시아를 지원해 3차례나 파병을 했고 동맹 조약까지 체결했다는 점에서 상황이 다르다.
이스라엘의 지난 13일 폭격으로 이란 나탄즈 핵 시설이 일부 파괴된 것을 보여주는 15일 촬영된 위성사진 Maxar Technologies 제공, 로이터 연합뉴스 |
두번째로, 북한은 핵 개발을 해왔지만 핵무기까지는 만들지 않은 이란이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큰 타격을 입는 것을 보면서 핵무기 능력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확신을 강화하고 실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로부터 전략무기와 관련한 첨단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밀당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두진호 센터장은 “김정은 위원장은 핵무기의 기하급수적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다짐했을 것”이라며 “러시아가 전략자산과 관련한 첨단 군사기술은 어떤 동맹에도 제공한 적이 없기 때문에 신중하겠지만, 김정은은 러시아가 제대로 지원하지 않으면 북한군을 철수할 수 있다는 식으로 ‘밀당’도 하면서 계속 첨단기술을 제공받으려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러시아도 최근 북한의 파병에 파격적인 감사를 표하는 등 북한의 요구에 발을 맞추는 데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4월 북한군 파병에 감사하다는 성명을 발표했고, 5월9일 전승절 열병식이 열린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북한군 군 장성들을 포옹하는 모습도 공개했다. 쇼이구 서기가 3개월 사이 3번이나 평양을 방문한 것도 파격적이다. 두 센터장은 “북한이 갑, 러시아가 을로 갑을 관계가 바뀐 모습”이라며, 쿠르스크에 북한군 희생자 위령비도 설치되고 있는 것을 고려할 때 김정은이 올해 모스크바와 쿠르스크를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18일 뉴욕에서 시위대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사진 위대 ‘이란과의 전쟁 반대’라고 쓰인 깃발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
세번째로,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은 당분간 매우 낮아지고, 오히려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이 있다.
조성렬 경남대 군사학과 초빙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중국 견제를 강화하고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해 러시아를 중국과 떼어내고 이란, 북한과도 협상을 하려는 전략을 가지고 이란과 먼저 협상을 했다. 그런데 협상 진행 중 이스라엘이 선제공격을 했다”며 “북한 입장에서 보면, 북미대화를 시작하면 일본이나 한국 내 강경파들이 도발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중동 사태로 북한이 트럼프와 대화에 응할 이유가 사라졌다”며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자, 이란과의 협상을 말하던 트럼프가 태도를 확바꿔서 이번 기회에 레짐 체인지(정권 교체)를 하겠다고 나섰다. 그 모습을 본 북한은 트럼프를 더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두진호 센터장도 “이번 중동 사태 이후 트럼프와 김정은이 ‘친서 주고 받기’라는 유화적 방법으로 대화를 재개할 가능성은 당분간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다만 미국이 대북 압박을 강화해 매우 위태롭게 긴장을 고조시킨 뒤 긴장 완화로 가면서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은 있다. 재개가 되더라도 위험한 시기를 지나야하고 시간이 걸리게 됐다”고 전망했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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