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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광장] 지속가능한 패션은 정말 지속가능한가

헤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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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지속가능 패션’이라는 말은 패션업계의 미래와 같은 수식어였다. 2019년 가로수길에 매장을 열고 대대적인 홍보를 하며 주목을 받은 친환경 신발 브랜드 올버즈는 그 서막 같았다. ‘양털 스니커즈’라는 독특한 콘셉트에 유명 할리우드 배우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투자한 브랜드라는 사실이 힘을 실었다. 환경을 생각하면서 멋도 챙기는 소비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각 있는 멋쟁이들이 신는 아이템으로 인기가 치솟았다. 또 다른 브랜드는 프랑스의 베자다. 투명한 생산과 윤리적인 공급을 내세우며 신뢰와 감도를 동시에 잡는 브랜드로 자신을 알렸다. 한정된 생산 수량과 미학은 윤리적 럭셔리로 묘사됐고, 이 두 브랜드를 입고 쓰는 사람은 마치 지속가능한 패션에 동참하며 시대정신을 입는 상징 같았다.

이 두 브랜드의 현재는 어떠한가. 새로운 메가 스니커즈 브랜드의 탄생을 기대했던 올버즈는 최근 몇 년 사이 매출과 주가 모두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2024년 1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30% 가까이 줄었고, 분기 손실도 2000만 달러를 넘겼다. 나스닥 상장 이후 주가는 1달러 아래로 떨어졌고 미국 내 매장도 줄줄이 문을 닫았다. 베자의 경우 매출은 유지되고 있지만,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지난 트렌드’처럼 여겨지고 있다. 두 브랜드 모두 ‘지속 가능성’이라는 명분만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꾸준히 끌어내기 어려웠다는 한계가 드러난 사례다.

왜였을까. 사실 친환경이라는 메시지는 분명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제품의 스타일이나 기능, 착용감, 디자인에서 확실한 우위를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비건 레더 같은 소재는 동물복지 측면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지만, 실사용에서는 쉽게 마모되거나 변형되는 경우가 많았다. 소재는 착하지만, 제품은 아쉬웠던 셈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원재료의 높은 가격을 감수할 만큼의 품질적인 만족감이 필요했다. 결국 지속가능하다는 건 알겠는데, 이걸 왜 더 비싼 값을 주고 사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 앞에 설득력을 잃었다.

게다가 요즘 소비자들은 브랜드의 메시지보다는 제품의 실질적인 가치에 더 민감하다. 그린워싱, ESG 마케팅이 난무하면서 진짜 친환경인지, 그저 그렇게 보이도록 만든 건 아닌지를 경계하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비건 레더의 다수가 석유 기반 합성소재로 만들어지고, 염색 과정에서 환경에 더 큰 부담을 주기도 한다. 또 아무리 유기농 면이나 리사이클 원단을 사용하더라도, 생산량이 지나치게 많아 재고가 쌓이고 폐기되는 구조라면 지속가능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소비자들은 점점 덜 사더라도,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더 주목하고 있다.

결국 지속가능한 패션의 미래는 ‘이야기’보다 ‘경험’에 달려 있다. 좋은 제품을 오래 입는 것, 고쳐 입는 것, 다시 순환시키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진짜 지속가능성이다. 리세일 시장의 성장, 브랜드의 수선 서비스 확대도 같은 맥락이다. 브랜드는 마케팅보다 제품 구조를, 소비자는 유행보다 실사용의 가치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지속가능이라는 말이 공허한 수식어가 아니라 진짜 실천으로 이어지기 위해서 말이다.

지승렬 패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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