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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
서울의 아파트 시장이 다시 들썩이고 있다.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 지정으로 잠시 주춤했던 강남·서초구를 중심으로 신고가 거래가 다시 이루어지고 있고 서울의 아파트가격은 2024년 상반기부터 꾸준히 오르고 있다.
그 결과 윤석열 정부 초기 만들어졌던 하락장이 끝나고, 집값 상승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공교롭게도, 정말 공교롭게도 이런 시점에 이재명 정부는 출범했다. 재집권한 민주당에게는 ‘부동산 트라우마’가 깊이 새겨져 있다. 노무현·문재인 정부 모두 부동산 가격 안정화에 실패하며 정권을 잃은 아픈 경험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 또한 20대 대선 당시 국토보유세와 기본주택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실패한 부동산 정책에 대한 보복투표라는 역풍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이에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를 의도적으로 피하는 ‘침묵 전략’을 구사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된 이상 이런 회피는 더 이상 지속가능한 해법이 될 수 없다. 시장의 움직임은 침묵만으로는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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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교훈과 한계
출범 2주를 맞는 이재명 정부가 8년 전 문재인 정부와 유사한 상황에 직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필자의 연구에 따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서울 아파트 시장의 하락세는 박근혜 정부 말기인 2016년 7월 상승세로 전환됐다. 문재인 정부는 바로 이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 국면 초입에 출범했으며 자연스럽게 부동산 시장 안정화가 현안으로 떠올랐다. 당시 청와대는 가격 상승을 강남 재건축 중심의 일시적 현상으로 보고, 다주택자들의 투기 수요를 주요 원인으로 진단했다. 이에 따라 공급 확대 대신 강력한 금융 규제와 세제 정책을 통해 수요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했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세, 종합부동산세 강화, 대출 규제 강화 등이 대표적이다.
경제 이론상 이런 강력한 수요 억제책의 도입은 거래량 감소와 함께 가격 하락으로 이어져야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거래량은 줄었음에도 가격은 오히려 급등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정책 발표 후 거래량은 4분의 1토막 났는데 되려 가격은 5%나 오른 적도 있었다. 효과의 지속성도 문제였다. 초기에는 가격 안정화 효과가 있는 듯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강도가 약화되었다. 예컨대 집권 3년차인 2020년 발표했던 6·17 대책 이후 거래량 감소폭은 그 이전 정책발표 직후 상황과 유사했으나 가격 상승률은 그 이전보다 높았다. 시장이 규제 회피 방안을 학습하면서 내성을 갖게 된 결과다.
왜 규제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시장은 불안정했을까? 시장 참여자들의 공급 부족에 대한 불안감이 정책 효과를 무력화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패닉바잉이 시작되면 강한 규제는 오히려 구매자의 매수 심리를 자극한다. 이를 간파한 매도자들은 매물을 회수하며 가격을 더 끌어올린다. 문재인 정부의 여러 규제는 대체로 이런 방식으로 무력화됐다. 예를 들어, 15억 원 이상 주택 대출 금지 정책은 14억 원 이하 주택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 강남·송파·서초 지역의 거래 허가제는 인근 반포 아파트 가격을 끌어올렸고, 재건축 규제 역시 주변 단지 가격 상승을 유발했다.
특히 거래량 급감의 핵심 원인은 신규 매물의 시장 유입 중단이었다. 2020년 6·17 대책 이후 서울 아파트 매매량은 약 6% 감소했는데, 이 감소분의 99.9%는 신규 매물 감소에서 비롯됐다. 이는 이전 시기 비중 92.5%를 크게 웃도는 수치로, 다주택자 규제가 매물 유도가 아닌 거래 경색을 초래했음을 보여준다. 높은 양도소득세 부담과 더 높은 가격을 기대하는 매도자들의 관망세가 주요 원인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사례는 부동산 정책의 성공이 규제 강도뿐 아니라 시장 참여자의 기대 관리에 달려 있음을 분명히 드러낸다
현 단계 서울 부동산 시장: 진단과 우려
현재 서울 아파트 시장은 어떤 단계에 있는 것일까? 가격이 오르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의 가격 상승은 거래량 감소와 동반되지 않고 오히려 거래량 증가와 함께 나타나고 있다. 이는 2020년의 패닉바잉과 다른 상황임을 시사한다. 또한 전세시장의 상황도 나쁘지 않다. 가격 상승은 관측되나 거래량은 일정량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우려스러운 점도 있다. 윤석열 정부 초기 하락장으로 보였던 시장 상황은 실제로 하락 국면으로 전환된 것은 아니었다. 즉 2020년~2021년 상승장에서 형성되었던 거품이 충분히 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일차적 원인은 윤석열 정부가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을 명목으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정리를 소극적으로 다룬 데 있다. 이는 마치 박근혜 정부의 택지개발촉진법 폐지가 문재인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처럼, 이재명 정부에도 계속해서 제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무엇이 지금 시장의 가격 상승을 견인하고 있는 것일까? 오세훈 서울시장의 토지거래허가제 완화가 단기적 방아쇠 역할을 했지만, 근본 원인은 2024년부터 본격화된 주택담보대출 금리 하락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저금리 기조가 시장에 풍부한 유동성을 공급하며 가격 상승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여기에 주택경기 침체를 우려한 윤석열 정부가 특례보금자리론이나 생애 최초 주택자금대출 등을 대폭 확대한 것도 상승세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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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정책의 성패 여부가 집권초 개혁동력 좌우할 것
이재명 정부는 시장 안정화를 위해 문재인 정부보다 제한적인 정책 수단을 가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양도세 중과나 보유세 인상 같은 민주당이 전통적으로 선호하던 방식을 배제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은행의 추가 금리 인하 전망은 아파트 가격 상승 기대를 더욱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코스피 5000’ 전략이 유동성을 주식시장으로 분산시켜 부동산 가격 상승 압력을 완화할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저금리의 파급 효과는 곧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시장 전반으로 확산될 것이다. 여기에 확장적 재정정책과 원화 강세도 서울 아파트 시장에 상방 압력을 가중할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현 정부가 시급하게 우선하여 추진해야 할 부동산 대책은 가계부채 규제를 통해 부동산 시장의 상승 압력을 억제하는 것이다. 곧 시행될 3단계 스트레스 DSR의 철저한 실행과 전세자금대출, 보금자리론 같은 정책 금융 대출의 관리가 중요하다. 주택 가격 상승기에 신용 공급을 자동 조절하는 안정장치 도입도 필수적이다.
동시에, 가계대출 규제로 인한 민주당 핵심 지지층인 40~50대의 반발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한 정치적 과제다. 가계대출 규제는 정교하게 설계하더라도 실수요자의 자금 접근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 특히 지방선거를 앞두고 추격 매수 상황이 발생하면 유권자 저항이 강해질 수 있다. 정치권이 이를 외면하기 어려운 만큼 정책 불협화음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 새 정부 경제수석이 된 하준경 교수는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 ‘정권 명운 걸린 소득과 집값의 경주’라는 칼럼에서 “주택의 가격이 서민과 중산층의 소득보다 빠르게 올랐던 시기의 정권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경고는 집권 초에도 유효하다. 부동산 정책은 새 정부의 정치적 명운을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