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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빠져라"…산업정책 실종, 빛과 그림자

머니투데이 세종=김사무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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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新산업책략]<1>②

[편집자주] 산업정책의 시대가 돌아왔다. 기술패권 시대의 새로운 현상이다. 산업정책의 부활은 선진국이 주도한다. 한국의 설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산업 혁신은 사라졌고, 미래 먹거리에 대한 고민만 늘었다. 정부 주도 산업정책으로의 전환, 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경기 과천시 과천국립과학관 미래상상SF관에서 관람객들이 반도체 관련 전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스1

경기 과천시 과천국립과학관 미래상상SF관에서 관람객들이 반도체 관련 전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스1


우리나라 산업정책은 1990년대 후반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전후로 큰 전환점을 맞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의 산업은 국가 주도의 계획 경제 틀 안에 있었다. 하지만 위기 이후 산업 주도권은 시장과 기업으로 넘어갔다.

이 변화는 기업의 자율과 창의를 자극했다. 반도체, 자동차 등 핵심 제조업이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동력이 됐다

그러나 그 대가도 있었다. 산업 간 불균형, 시너지 저하 같은 구조적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수십년간 이어진 산업정책 부재의 결과였다. 주요국들이 앞다퉈 첨단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지금, 우리도 다시 강력한 산업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산업화, 정부 주도에서 시장 주도로

외환위기는 산업정책의 분기점이었다. 그러나 세계는 이미 1980년대부터 시장 중심 체제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1929년 대공황 이후 유행한 케인즈주의는 오일쇼크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흔들렸다. 그 자리를 시장 중심의 신자유주의가 채웠다. 시장 실패로 등장했던 케인즈주의는 정부실패를 낳았고 다시 시장 중심으로 돌아가자는 신자유주의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작은 정부와 시장의 자유다. 시장의 비효율을 발생시키는 정부의 개입은 최소화하고 시장의 자율성을 최대한 확보하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경제가 성장하게 된다는 논리다.

때마침 진행된 우루과이 라운드와 자유무역 확대 바람은 신자유주의 흐름을 보다 강화시켰다. 산업보호를 위한 보조금, 관세, 조세 정책은 무역장벽으로 간주됐다. 정부의 산업정책도 자연스레 뒷전으로 밀렸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1990년대 들어 신자유주의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는데 외환위기는 이를 가속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후 산업정책의 키워드는 △시장 중심 △경쟁력 강화 △구조조정 등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과 FTA(자유무역협정)가 확산되며 정부 주도 정책은 더 설 자리를 잃었다. 자유무역 질서에서 산업정책은 비관세 장벽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변화는 일부 기업엔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에 집중 투자하며 세계 메모리 시장 1위에 올랐다. 현대차도 해외 진출을 확대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은 2007년 보고서에서 "외환위기를 계기로 한국은 생산 방식의 구조적 전환을 겪었다"고 분석했다. 투자 비중이 자본에서 R&D(연구개발)로 이동하면서 독자 기술 축적이 가능해졌고 IT(정보 기술) 붐과 맞물려 새로운 산업도 등장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시장 주도의 그림자…양극화·쏠림 현상 심각

시장 주도형 산업화의 부작용도 적잖았다. 대표적인 것이 양극화와 산업 간 단절이다. 시장은 효율을 추구한다. 그 결과 자본이 수익이 높은 산업에 몰리는 쏠림현상이 생겼다. 균형발전을 위한 장기 투자, 리스크가 큰 분야에 대한 투자 등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정부의 재정정책이 소득 재분배를 목표로 한다면 산업정책은 산업간 자원 재배분을 지향한다. 당장 수익은 없어도 미래 성장성이 있는 산업에 정부가 투자하며 균형을 맞춰야 한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정부 개입은 비효율로 치부됐다. 산업정책은 오랫동안 뒷전으로 밀려났다.

결국 잘되는 산업과 기업만 더 잘되며 나머지는 소외되는 구조가 고착됐다.

2019년 한일 무역분쟁은 이런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일본은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을 제한했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강국이었지만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생태계는 취약했다.

정부는 소부장 육성책을 내놨지만, 중장기 투자 없이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 현재도 반도체 공급망 자립률은 30% 수준에 머문다.

양극화는 주식시장에서도 확인된다. 2000년대 이후 시가총액 코스피 1위는 줄곧 삼성전자였다. 2004년 주요 시총 상위 종목은 포스코, 현대차, KB금융, SK텔레콤, LG전자 등으로 지금과 큰 차이가 없다. 그나마 배터리·바이오 산업이 추가됐을 뿐이다.


◇ 산업 간 단절…시너지 없는 구조




산업 간 단절도 심각한 문제다.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산업정책이 사라지면서 융합과 협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각 기업은 개별 경쟁에 집중한다.

특히 최근에는 고부가가치 첨단산업이 산업 간 융합의 결과물로 나타나면서 산업정책의 필요성은 더 커진다. 미국 엔비디아의 경우 그래픽처리장치(GPU)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개발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융합을 통한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지만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중심에 머물러 있다.

반도체 산업의 고부가가치 전환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시스템 반도체, AI(인공지능) 반도체로의 확장이 그 방향이다. 그러나 이 전환에는 막대한 자원과 인프라가 필요하다. 삼성이 아무리 글로벌 대기업이라도 혼자선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자동차 산업도 비슷하다. 글로벌 흐름은 하드웨어 중심에서 자율주행, 차량용 OS 등 '서비스로서의 모빌리티(MaaS)'로 넘어가고 있다. 한국은 하드웨어는 강하지만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약하다.

2023년 기준, 한국의 R&D 투자액은 119조740억 원. GDP 대비 비율은 4.96%로,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다. 그러나 기술 수준은 미국의 88%에 그친다. 유럽연합(93.7%), 일본(92.9%)보다 낮고, 중국(83%)의 추격도 거세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은 "GDP 대비 R&D 투자 비중은 높지만 투자 효율성에는 의문이 따른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 혁신 비전을 정립하고, 부처 간 협력으로 임무 지향적 산업 전략을 유기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김사무엘 기자 samue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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