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
빛이 새 나는
그 손의 반딧불이
받아왔어요
光洩(ひかりも)るその手(て)の螢貰(ほたるもら)ひけり
아마도 그때가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이리라. 반딧불이를 보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내가 이십 대였던 어느 날, 도쿄에서 문학을 공부할 때다. 같은 유학생 신분이던 우크라이나인 코필드가 자기 기숙사 근처 오래된 호텔 뜰에 반딧불이가 많이 날아다닌다니까 같이 보러 가자고 했다.
그때 중국인 홍홍까지 우리 셋은 대학원 석사 시험 준비를 위해 거의 매일 만나 같이 책을 읽고 토론했다. 형설지공(螢雪之功)이란 옛말이 있지만, 반딧불(螢)과 눈(雪)의 빛까지는 아니어도 도서관 형광등(螢光燈) 신세는 많이 졌다. 우리는 책 읽다 지친 눈을 숲으로 돌려 셋이 같이 반딧불을 찾으러 갔다. 계절은 분명 이즈음이었다.
자줏빛 노을이 멀리 하늘 끝으로 물러갈 즈음, 우리는 간다강 다리를 건너 수백 년 된 굵은 나무들이 짙푸른 호텔의 뜰로 들어갔다. 좁고 높다란 돌계단을 올랐다. 걸을 때마다 무성한 여름 풀이 발치에 닿았다. 조금씩 어둠이 내리면서 푸르렀던 신록이 컴컴해졌다. 뜰이라기보다는 깊은 숲속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넓고 가파른 골짜기에 계곡물까지 졸졸 흘렀다. 밤이 내려 시야가 좁아지니 여름날 초록 향이 더욱 진하게 다가왔다. 목덜미를 타고 주르륵 땀방울이 흘렀을 때다. 눈앞에 나타난 작고 하늘하늘한 불빛.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더니 골짜기 다리 위에 다다랐을 때 이윽고 반딧불 무리의 장관이 눈앞에 나타났다. “와….” 우리는 모두 할 말을 잃었다. 가슴을 조이는 아름다움 앞에서는 말이 필요 없다는 걸 그때 알았다. 수다쟁이 코필드도 그때는 조용히 걷기만 했다. 우크라이나가 전화(戰火)에 휩싸였을 때, 나는 제일 먼저 반딧불이를 보고 감격하던 순수한 친구의 옆모습을 떠올렸다. 반딧불이가 우리들 사이에 꿈처럼 날아다니던 그 밤, 그 숲을.
하이쿠 시인 나카무라 데이조(中村汀女, 1900~1988)는 친구의 손에서 반딧불이를 받아오며 이 시를 썼을까. 손가락 사이로 빛이 새어 나왔을 광경을 상상하니 가슴이 두근두근해진다. 그 빛을 받아 들고 어디로 향했을까. 서재로 갔을까, 목욕탕으로 갔을까, 골목길로 나섰을까. 이제 인간의 터전에서 반딧불을 거의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이런 시 한 편으로도 마음속에서 새어 나오는 빛줄기를 보는 기분이 든다. 아무도 모르게, 남몰래 간직한, 빛나는 꿈 같은 것. 사라져 가는 것이 많은 세상이니만큼 지금 우리는, 내 마음의 반딧불 한 마리쯤 키워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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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윤 작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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