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맑음 / -3.9 °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이응준의 과거에서 보내는 엽서] [19] 소설 ‘인간 실격’

조선일보 이응준 시인·소설가
원문보기
나는 1948년 6월 19일 도쿄 서점가를 서성인다. 다음 달 25일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 실격’이 출간돼 진열될 그 거리를. 오늘은 다자이에게 특별한 날이다. 그의 생일이자 그의 시신이 다마가와 상수로(玉川上水)에서 발견된 날이니까. 그가 내연녀와 함께 물속으로 몸을 던진 건 6월 13일이었다. 1909년생인 그는 군국주의 일본 제국이 망하고 연합군 점령 하에서 3년을 더 사는데, 이게 그의 전성기이긴 하나 죽음 ‘직후부터가’ 진짜 전성기다. 신조사(新潮社) 문고판 초판 ‘인간 실격’이 600만부 이상 팔렸다니까. 전쟁으로 패망해 자존감이 바닥난 사회 분위기가 저 어두운 소설이 메가히트하는 데 일조했겠지만, 일본 고유의 탐미주의와도 연관이 있다.

일본 근대소설의 한 형식인 ‘사소설(私小說)’은 자신의 삶과 사회를 폭로한다. 내용적으로는 사소설의 요소가 다분한 ‘인간 실격’은 ‘인간’이라는 것의 허무를 폭로한다. 주인공 오오바 요조는 병약하고 예민하며 극단적 내향인이다. 이런 그가 선택한 자기방어라는 게 익살, 연극하기, 일탈, 자학, 방황에 미달하는 ‘표류’ 같은 것이다. 요컨대 요조는 자신의 ‘캐릭터(character)’ 때문에 망한다. 이게 이 소설이 현대소설로서 훌륭한 점이다. 자신의 캐릭터 때문에 잘되거나 망하는 건 ‘현대성(modernity)’의 중요한 요소다. 개인이거나 국가이거나 제 캐릭터를 온전히 파악해 장점은 조정(調整)하고 단점은 제거하는 게 성장과 성숙함, 곧 ‘살길’이다.

나는 다자이의 작품들 속 문장 가운데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태어난 것이다”보다는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라는 대목이 더 좋다. 그리고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제가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그것뿐입니다” 하는 고백에 공감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들이 쓰라린 달콤함처럼 아름다운 건, 그게 인간의 외로운 일면이고 평소 우리가 감추고 살아가는 허무한 속 모습이기 때문이다.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5분 칼럼' 구독하기

[이응준 시인·소설가]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뉴진스 다니엘 퇴출 심경
    뉴진스 다니엘 퇴출 심경
  2. 2염경환 짠한형 비하인드
    염경환 짠한형 비하인드
  3. 3우리은행 신한은행 여자농구
    우리은행 신한은행 여자농구
  4. 4맨유 임시 감독 캐릭
    맨유 임시 감독 캐릭
  5. 5송교창 KCC 소노전
    송교창 KCC 소노전

조선일보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