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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각] 자퇴생 양산하는 ‘문과 침공’

조선일보 표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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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인문계열 학과들은 학생들의 ‘충성도’가 높은 편이었다. 의약계통 진학을 노리는 반수생이 많은 이공계열 학과보다 중도에 학업을 그만두는 비율이 크게 낮았다. 나름 적성에 맞는 학과를 선택해 만족하는 학생이 많았단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분위기가 최근 3년 사이 크게 바뀌고 있다. SKY 대학 인문계열만 하더라도 중도 탈락자가 2019년 450명에서 2023년 763명으로 70% 늘었다.

왜 그럴까. 입시에서 유리한 이과생들이 간판을 우선시해 상위권 대학 인문계열 학과로 대거 진학한 탓이 크다. 실제 올해 수도권 주요 대학 17곳의 인문계열 학과 340곳에 정시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 가운데 55.6%가 이과생이었다. 연세대 아동가족학과를 비롯해 입학생 전원이 이과생인 학과도 21곳에 달했다.

수능은 문재인 정부 때 개편안에 따라 2022학년도부터 문·이과 통합형으로 치러지고 있다. 그러나 교육 현장에선 수능 수학에서 ‘미적분’ 또는 ‘기하’를 고르면 이과생, ‘확률과 통계’를 고르면 문과생으로 구분한다. 여기서 학벌을 우선시하는 풍토가 부작용을 만들어내고 있다. 수능은 원점수 대신 과목 난도를 반영한 표준점수를 매긴다. 이에 따라 문·이과생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2024학년도의 경우 미적분(이과)이 확률과 통계(문과)보다 표준점수 최고점이 11점이나 높았다. 표준점수가 높은 이과생들이 입시에서 크게 유리해졌고, 적성보단 대학 간판을 보고 인문계열 학과로 진학하는 ‘문과 침공’이란 기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연세대 이공계열 진학이 어렵다면 인문계열로 진학해 대학 이름이라도 챙기자는 식이다.

적성에 안 맞는 전공을 택한 이과생은 결국 반수·전과로 빠져나가고, 원하는 대학에 진학 못한 문과생도 반수·재수를 택하고 있다. 작년 N수생 규모는 16만1784명으로 21년 만에 최다를 기록했다. 한 사립대 총장은 “학교도 자퇴생 증가로 재정 손실을 보고 학업 분위기가 흐려지는 등 모두가 손해”라고 했다. 대학을 다시 가겠다는 학생들이 늘어나 재수학원을 비롯한 사교육 시장만 호황이라는 비판도 쏟아진다.

윤석열 정부가 이런 문제점을 바로잡겠다며 2028학년도부터 문·이과 선택 과목을 없애는 ‘통합형 수능’을 실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교육계에선 대학 간판에 집착하는 ‘진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공염불이란 얘기가 많다. 되레 고교 때 적성을 탐구하는 문·이과 구분이 아예 없어지며, 점수 맞춰 대학 간판을 고르는 현상만 더 심화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재명 정부는 아직 구체적으로 수능과 관련한 제도 개선안을 내놓고 있지는 않지만, 역대 정부들이 그랬듯 어떤 식으로든 입시 개혁안을 내놓으리란 예측이 많다. ‘적성 무시, 간판 우선’으로 요약되는 폐단을 키우는 지금의 입시 제도를 시정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했으면 한다.

[표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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