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터널을 지나 내면의 빛을 만나다"... 빛의 거장 '제임스 터렐'전

한국서 17년 만 개인전 '더 리턴'
설치 ‘웨지워크’ 등 25점 선보여
페이스갤러리에서 9월 27일까지

서울 용산구 한남동 페이스갤러리에 설치된 '웨지워크'. 페이스갤러리 제공

어두컴컴한 전시 공간에 드리운 빛은 순식간에 면과 부피를 만들어낸다. 빛이 비스듬하게 움직이는 사이 눈앞에는 찰나의 '벽'과 '공간'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작품 사이를 걸어 그 변화를 마주하는 관람객은 혼란에 휩싸인다. 벽에 걸린 작품은 실재인가, 상상인가.

최근 서울 용산구 한남동 페이스갤러리에서 막을 연 미국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82)의 전시 '더 리턴(The Return)'의 한 장면이다. 지난 2008년 이후 17년 만에 국내에서 열리는 개인전이다. 반세기 동안 빛을 매개로 감각을 확장시키는 작업에 매진해온 거장의 대표작이 판화, 조각, 사진까지 20여 점 모였다. 발광다이오드(LED)를 활용한 장소 특정적 몰입형 설치 연작 '웨지워크(Wedgework)'의 '더 웨지(The Wedge)'와 '글라스워크(Glassworks)' 연작 4점 등 대형 설치작품도 포함됐다. '지각 예술' 선구자의 진면목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다.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열린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의 개인전 '더 리턴(The Return)'의 모습. 연합뉴스

터렐 "빛 자체를 다루는 예술하고파"

개인전 개막을 위해 방한한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이 11일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터렐은 1960년대 중반부터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진행된 '빛과 공간 미술운동'의 대표 작가다. 대학에서 인지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1960년대 초 평면 작업을 통해 빛과 색, 공간에 대한 지각 작업을 선보였다. 이후 빛을 매개로 한 다양한 설치 작품을 발표했다. 최근에는 '스카이스페이스(Skyspaces)' 연작과 '간츠펠트(Ganzfelds)' 연작 등 LED와 컴퓨터 제어를 활용한 몰입형 설치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강원 원주 뮤지엄 산에 그의 상설 전시관이 있다.

그의 작품은 조형적이고 감각적인 형태다. 진정한 묘미는 단순히 감각적인 작품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 감상자 본인의 상태를 인식하는 데 있다. 이를테면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웨지워크'에서 관람객은 20분 동안 암전 된 터널을 걸으며 다채로운 빛이 벽에 투사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빛이 만드는 가상의 장벽과 허공을 지나가면서 인식으로 만든 허구의 공간과 물리적인 공간이 뒤섞이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된다. 생경하고 강렬한 감각에 구토를 하거나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새로운 영감을 얻었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시시각각 생몰하는 감각에 온전히 집중함으로써 해탈에 이르는 종교적 체험과 비슷하다.

제임스 터렐의 개인전 '더 리턴(The Return)'의 한 장면. 연합뉴스

이는 작가가 의도한 바다. 이번 개인전을 위해 내한한 터렐은 "빛의 진정한 힘은 빛이라는 물리적 실체 그 자체에 있다"며 " 우리는 다른 것을 드러내는 도구로서 빛을 사용하지만 내가 작업을 통해 보여주려는 것은 사람들에게 빛 자체로 새로운 지각 경험을 일깨우는 것"이라고 밝혔다.

터렐이 미국 애리조나 사화산 분화구에 조성 중인 '로든 크레이터(Roden crater)' 프로젝트에 관한 작품도 흥미롭다. 로든 크레이터는 24개 관측 공간과 6개 터널에서 육안으로 천체를 관측할 수 있도록 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1970년대 시작해 여전히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기록한 판화, 사진, 조각에서 "세상에 한 조각 빛을 전하고 싶다"는 작가의 집요한 창작열이 도드라져 보인다. 전시는 9월 27일까지. 무료지만 예약제다.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