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맑음 / -3.9 °
한국일보 언론사 이미지

혐오에 맞서는 사랑의 축제에서 [36.5˚C]

한국일보
원문보기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2025 서울 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이 14일 서울 종로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 뉴스1

2025 서울 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이 14일 서울 종로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 뉴스1


믿음 소망 사랑 중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사랑이다. 사랑은 불신을 이기고, 절망에 맞설 용기와 지혜를 준다. 지구촌 곳곳이 전쟁과 폭력으로 난리인 6월, '성소수자 자긍심의 달'을 맞아 올해도 세계 각국에서 열린 퀴어 퍼레이드는 그런 사랑의 축제였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폭정 저항 1번지’인 로스앤젤레스에는 지난 8일 약 10만 명이 군집했다. 러시아의 자폭 드론이 쏟아지는 우크라이나 키이우에도 14일 1,500명이 모였다. 극우성향 총리가 동성애 불법화를 추진 중인 헝가리는 28일 개최가 예정됐으며 주최 측은 작년처럼 3만 명 집결을 예상하고 있다. 불법 계엄과 조기 대선을 거쳐 등장한 ‘진보 정권’의 국무총리 후보자가 과거 성소수자 혐오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한국 역시 14일 3만 명이 서울에 모였다.

어디 하나 쉬운 곳이 없었다. 미국에서는 공화당 우위 지역에서 퀴어 퍼레이드 후원금이 대폭 줄었다. 성소수자 혐오로 극우 결집 효과를 누리는 트럼프의 공세에 기업과 공공기관이 눈치를 본 결과다. 퀴어 퍼레이드가 불법화된 헝가리에서는 수도 부다페스트의 시장이 행정력을 총동원해 중앙정부에 맞서고 있다. 반면 서울에선 2022년 7월 오세훈 시장 취임 뒤 '서울광장 개최'가 사실상 막혔고, 올해도 주요 행사 무대가 종각역 일대로 밀려났다. 지난 13일로 예정됐던 이스라엘 축제는 같은 날 이스라엘군이 이란 핵시설을 전격 공격한 뒤 취소됐다.

이런 세태는 당혹스러운 구석이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각 대륙에서 성소수자 법제가 진화하는 ‘무지갯빛 타이드’ 물결이 뚜렷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초유의 이란 핵시설 타격을 감행하고 트럼프발 관세전쟁 기사가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현재, 성소수자 인권 증진을 내거는 정부를 찾아보기 어렵다. 국제정세가 이렇게 엄중한데 성소수자 문제를 혐오하는 세력의 반발이 불보듯 뻔한 '소란'을 일으켜선 이로울 게 없다는 판단이 깔린 것 같다.

이 와중에 지난 14일 서울 퀴어 퍼레이드의 밝은 분위기는 놀라웠다. 성소수자 자녀의 부모가 가족에게 커밍아웃 하지 못한 젊은이들을 껴안고, 성소수자 세례를 이유로 징계받은 목사가 스님과 함께 웃었다. 참가자들은 직접 만든 꽃다발과 형형색색 깃발을 흔들며 연대했다. "사랑을 이기는 증오는 없다"며 "우리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란 구호가 그들의 희망이었다.

행사장 주변을 쩌렁쩌렁 울리는 반대 시위에도 이들이 웃을 수 있었던 건, 혐오와 폭력에 맞서는 사랑의 편에 자신들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일 터다. 소수자에 무관심한 현실, 전쟁과 극단주의로 얼어붙은 세계의 한복판에서 ‘마음껏 사랑할 권리’를 외치는 이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이재명 정부와 거대 여당은 지금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트럼프 한화오션 협력
    트럼프 한화오션 협력
  2. 2윤정수 결혼식
    윤정수 결혼식
  3. 3정선희 4인용식탁
    정선희 4인용식탁
  4. 4차현승 백혈병 완치
    차현승 백혈병 완치
  5. 5통일교 특검 수용
    통일교 특검 수용

한국일보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