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SBS 귀궁 |
[스포츠투데이 김태형 기자] SBS 금토드라마 '귀궁'이 시청자들의 뜨거운 성원을 받으며 지난 7일 종영했다.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11%라는 높은 시청률로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에는 배우들의 열연만큼이나 빛난 윤성식 감독과 윤수정 작가의 노력이 있었다. 극본을 맡은 윤수정 작가에게 작품을 마친 소감과 함께 작품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어봤다.
윤수정 작가는 '귀궁' 종영 소감에 대해 "앞서 방영됐던 SBS 금토드라마들이 모두 높은 시청률과 함께 큰 성공을 했었기에, 혹여나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어쩌나 많은 걱정을 했었다"며 "첫방 전 일주일 내내 악몽을 꿀 정도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믿기지 않는 높은 첫방 시청률이 나왔고 그 이후 쟁쟁한 경쟁작들이 있었음에도 높은 시청률로 마무리되어 감사한 마음뿐"이라며 "제게 '귀궁'은 정말 오랜만에 방송되는 작품이기도 하고, 단막극이었던 데뷔작을 제외하고 첫 단독 집필에 대본에 대한 주도권을 처음으로 온전히 가져봤던 작품이기에 더욱 기쁘고 감사했다"고 벅찬 마음을 드러냈다.
'귀궁'의 인기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자, 윤 작가는 "누구나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무섭지 않은 오컬트 장르에 로코와 액션, 미스터리, 사극 등을 버무린 혼합 장르가 시청자들의 다양한 입맛을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부족한 대본을 넘치게 채워주신 훌륭하신 감독님들, 배우님들, 스태프분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귀궁' 집필에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 윤 작가는 "우선 다양한 장르의 밸런스를 끝까지 잘 유지하고자 공을 들였다. 또 '귀궁'은 크게 보면 인간을 증오하던 악신 강철이가 인간들을 구하고자 스스로 희생하는 선택을 하는 비극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인데, 강철이의 그 선택에 대해 시청자들을 잘 설득시키는 것이 저의 가장 큰 숙제였고 또 가장 많은 고민을 했던 부분이기도 하다"라고 집필을 하며 신경 썼던 부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귀궁'은 육성재, 김지연, 김지훈 등 여러 배우들의 합이 빛난 작품이었다. 윤 작가는 "세 배우님들 모두 이전 작품에서 연기로 좋은 평가를 받았던 분들이시고, '귀궁'에서도 좋은 연기를 해주셨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귀궁'이라는 작품과 각자 맡은 캐릭터에 엄청난 애정을 갖고 최선을 다해주셨다. 정말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귀궁'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일까. 윤 작가는 자신의 전작인 '왕의 얼굴'을 언급하며 "'왕의 얼굴'을 준비하며 읽었던 자료가 '귀궁'의 첫 시작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임진왜란이 터지자 왕이 도성을 버리고 도망치는 내용이었는데, 그렇게 버림받은 경복궁이 모두 불에 타서 폐허가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버림 받아 불에 타버린 궁의 이미지가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남아있었다. 그 과정에서 죽임 당한 사람들도 많았을테고 황폐하게 변한 궐에 한많은 귀신들이 많았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윤 작가는 작중 최대 빌런인 팔척귀의 탄생에 대한 비하인드를 들려줬다. 그는 "그러다 5년 전쯤 '어우야담'을 읽다가 조선시대 궐 안에 존재했다던 '팔척귀'에 대해 알게 됐고 오래 묵혀두었던 짧막한 아이디어, '궐 안의 한 많은 귀신'과 연결되어 그렇게 '귀궁'의 최대 빌런 팔척귀가 탄생하게 됐다"며 "선조대의 문신 유몽인이 쓴 수필집 '어우야담' 종교편을 살펴보면 '귀신이 많은 승정원'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밤중 승정원에서 한 승지가 창밖에 키가 8, 9척 되는 귀신이 다른 작은 귀신들에 둘러싸인 채 서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내용인데 '귀궁'의 팔척귀는 이 이야기를 모티브로 탄생했다"고 밝혔다.
다만 '팔척귀'라는 일본의 동명 귀신이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고. 윤 작가는 "저도 저희 아이도 '신비아파트'라는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아서 같은 이름의 일본 귀신이 있다는 것을 방영 후 댓글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팔척귀를 "국가로부터 사죄 받아야 하는 모든 비극적인 죽음들을 의미한다"고 설명하며 "그런 슬픈 죽음들은 먼 오래전 역사속에서도, 가까운 과거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국가를 상징하는 왕 이정은 팔척귀에게 당한 가장 큰 피해자이자 동시에 팔척귀를 탄생시킨 업보를 가진 가해자이고, 강철이는 이 모든 비극적인 굴레를 끊어내고 모두를 구해낼 구원자였으며, 여리는 왕과 팔척귀를 구원자 강철이와 연결시켜주는 매개자이자 이야기를 열고 닫을 화자였다.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인지라 대중적으로 다가서기 위해선 전략적으로 로맨스와 코미디, 미스테리, 액션 등의 당의정을 입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극 중 팔척귀가 강철이(육성재)에게 '왕가의 핏줄 때문에 승천을 못한 것'이라고 언급한 부분과, 팔척귀가 오랑캐들이 쳐들어와서 죽임을 당한 것인데 왕실에 원한을 품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윤 작가는 "왕은 단순히 한 개인이 아니기에, 국가의 위기 상황시 제 백성을 최선을 다해 지키는 것을 당연한 책무로 알아야 하는 이"라며 "왕의 권력은 그 책무를 무겁게 받아들일 때 당연시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조선이란 나라를 조선 후기의 망국의 이미지로만 기억하는데, 조선은 애초에 민본주의 즉, '백성이 국가의 근본이다'라는 철학이념으로 세워진 나라였다. 그런데 임금인 연종은 제 백성을 지키기는커녕 용담골 사람들을 방패 삼아 자신의 살길만 도모했으므로 큰 원한을 사고도 남는 일이라 생각했다. 사극이 단순히 과거를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와 맞닿아 있는 현실을 그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시청자분들께서도 팔척귀의 원한에 납득해주시리라 믿었다"고 말했다.
이어 "100년 전 외적의 습격이 없었다면 강철이는 무사히 승천했을 것이다.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어둡고 깊은 밤으로 신중히 골랐으니까"라며 "그러나 도망친 연종을 대신하여 용담골이 공격당하고 그 바람에 마을 전체에 불길이 타오르면서 강철이 역시 사람의 눈에 띄어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애초에 원인을 제공한 것이 연종이기에 팔척귀는 왕가의 핏줄이 강철이의 원수가 되기도 한다 말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쉽지 않은 제작 여건이었기에 선택지가 많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도파민 터지는 장르적 쾌감을 줄 수 있는 스토리에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덧붙였다.
또한 윤 작가는 "판타지 드라마라 많은 상상력이 필요했을 것이라 흔히들 생각하는데 저는 무척 고지식한 사람인지라 자료의 근거가 없는 소재를 쓰는 것은 힘들더라"라며 "강철이와 팔척귀, 비비(영노), 외다리귀, 야광귀는 물론 경귀석과 골담초(선비화) 같은 소품들까지 모두 설화와 야담 등에서 찾아내 캐릭터로 만들고 이야기로 엮어나간 것들이다"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무속에 대한 공부는 민속학과 국문학, 인류학 관련 학술서와 논문들, 다큐멘터리 등을 참고했다. 직접 무속인들을 만나 취재하는 것은 전체 이야기의 얼개를 만들어나가는 초기 기획 단계에서는 가급적 지양했다"며 "현대의 무당을 리얼하게 재현하는 것이 목표인 드라마도 아닌데다가 무속의 관점에서 보면 몸주신과 제자의 사랑이라는 다소 황당한 부분이 있는 설정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다 김금화 만신님의 제자분께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보다가 '우리 무속에는 퇴마라는 것이 없다'는 말씀을 듣게 됐다"며 "그 얘기에 지금까지 공부했던 모든 것들이 한궤로 쫙 꿰어지는 느낌이 들면서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더 분명해지는 것 같았다"고 밝혔다.
편성이 결정된 후 회사에서 섭외해준 무속자문팀에게 이 부분을 한번 더 물어봤다며 "'조선에는 악귀가 없다'는 말씀을 하시더라. 같은 맥락으로 저는 이해했는데, 즉 무속 세계 속 귀신들은 선악이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지지 않고 원한귀만 존재한다는 것.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도록 그 원한귀의 한을 달래주고 풀어주는 것이 무당의 몫이었던 것이다"라고 전했다.
윤 작가는 "좋든 싫든 불과 백년 전까지만 해도 무속이 일반 백성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던 것을 생각할 때, 우리 선조들은 인간의 선한 의지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며 "색다른 귀신들이었다고 평가 해주셨던 '귀궁' 속 K귀신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또한 "편성 이후로 본격적인 대본 작업이 시작되면서는 제가 무속자문팀을 정말 자주 괴롭혀드렸다. 무속적으로도 신박하고 그림적으로도 재미났던 좋은 아이디어들을 많이 주셔서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윤성식 감독과는 드라마 '왕의 얼굴' 이후 10년 만의 재회였다. 윤 작가는 "편성이 결정되고 나서도 몇 달간 연출자가 정해지지 않아 많이 초조했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러다 때마침 윤성식 감독님께서 연출을 맡아주시기로 하셨고 제가 공동집필로 참여했던 작품이었던 '왕의 얼굴'을 통해 감독님의 내공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잘되었다고 생각했다"며 "함께 합을 맞춰나가는 과정은 순조로웠고 감독님께서 제가 가고자 했던 이야기의 방향성을 존중해주셨다. 또, 회의와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더 완성도 있는 대본을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귀궁'은 귀신들의 이야기 외에도 강철이(육성재)와 여리(김지연)의 사랑 이야기가 주된 서사로 작용한다. 여리는 강철이를 돕고, 여리가 위험에 빠지면 강철이가 나타나 구해주는 모습은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때로는 여리가 홀로 나서다 강철이 역시 위기에 빠지는 모습이 그려져 일부 시청자들로부터 '민폐 여주'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에 대해 윤 작가는 "강철이의 모든 고생과 고난은 여리를 사랑하는 강철이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됐기 때문에, 여리를 원망하는 말씀을 하셨던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귀궁'은 육성재, 김지연 등 비교적 젊은 배우들을 주연으로 내세우며 큰 성공을 거뒀다. TV 시청 연령대를 생각하면 눈에 띄는 성과다. 이에 대해 윤 작가는 "젊은 배우들을 캐스팅했을 때 아무래도 중장년층 시청자분들에겐 인지도 측면에서 불리한 지점들은 있을 것 같다"며 "그러나 동시에 신선하게 다가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주연 배우들의 연기가 시청자들을 설득하지 못했다면 이 정도로 드라마가 사랑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스포츠투데이 김태형 기자 ent@sto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