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작품 ‘삼손과 데릴라(Samson and Delilah)'. /내셔널갤러리 |
영국 내셔널갤러리가 소장한 그림 ‘삼손과 델릴라’(Samson and Delilah)가 또다시 위작 논란에 휩싸였다.
이 작품은 17세기 바로크를 대표하는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가 그린 유화다. 구약 성경의 삼손과 델릴라 이야기를 담았는데, 델릴라가 삼손을 배신하는 순간을 강렬한 색채와 명암 속에 표현하고 있다. 크기는 가로 205㎝·세로 185㎝이며 1609~1610년쯤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18일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내셔널갤러리는 이 작품을 1980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250만 파운드에 구매했다. 현재 화폐 가치로 따지면 1000만 파운드(약 185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내셔널갤러리가 작품을 내건 이후 위작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삼손과 델릴라’는 1690년대 대중에서 사라졌다가 1929년 세상에 다시 등장했다. 이때 그림을 루벤스 작품으로 기록한 사람은 독일 미술사학자 루트비히 부르하르트인데, 1960년 사망 후 그가 생전 상업적 목적으로 여러 작품을 잘못 기록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삼손과 델릴라’도 의심받게 됐다.
작품 자체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됐다. 붓 터치가 조악하고 델릴라의 드레스 채색이 거칠며 삼손의 등 근육이 해부학적으로 부정확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20세기에 만들어진 모작일 것이라는 의혹이었다. 2021년엔 인공지능(AI)를 통한 분석 결과 91% 확률로 위작이라는 판정까지 나왔다.
작품 뒷면에 현대식 합판이 덧대어진 탓에 원작 관련 정보가 가려졌다는 점도 이상했다. 내셔널갤러리가 뒷면 합판에 대해 처음 공개 언급한 건 구매 2년 후인 1982년 이사회와 그 이듬해인 1983년 기술 보고서에서였다. 1990년대 전시 도록에선 “1980년 갤러리가 구매 전 새로운 합판에 고정됐다”는 설명이 담겼다.
하지만 내셔널갤러리 큐레이터 출신인 크리스토퍼 브라운은 최근 가디언과의 통화에서 “뒷면 합판을 붙인 건 내셔널갤러리였다”고 말했다. 그러다 가디언이 내셔널갤러리 측에 의견을 요청하자, 브라운은 “나는 내셔널갤러리를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말을 바꿨다.
계속된 혼란에 여러 전문가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위작을 주장한 폴란드 출신 루벤스 전문가 카타지나 크시자구르스카 피사레크는 “그들(내셔널갤러리)은 토론을 원하지 않는다”며 “우리가 답변 불가능한 논지를 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내셔널갤러리 측은 “‘삼손과 델릴라’는 오랫동안 루벤스 걸작으로 인정받아 왔고 가짜를 의심하는 전문가는 단 한 명도 없었다”며 의혹을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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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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