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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미국이 불타고 있다”

조선일보 실리콘밸리=오로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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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불타고 있다(America’s on fire).”

지난 9일 늦은 저녁 로스앤젤레스(LA) 다운타운은 경찰과 시위대의 격한 충돌로 전쟁터와 같았다. 도로에서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활활 타고 있는 자동차를 바라보던 존 브라운(71)씨는 “나는 인권 시위, 반전 시위가 잦았던 격동의 70년대를 몸소 겪은 ‘히피족’ 출신”이라며 “살면서 이렇게나 나라가 양쪽으로 분열되는 경우를 또 보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펑, 펑’거리며 고무탄을 쏴댔다. 기자의 부축을 받고 안전한 곳으로 피신한 존씨는 “이런 난리가 나는 건 다 미국이 약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벌어진 일련의 극적인 사태에 대해 ‘미국이 약해졌기 때문’이라는 한탄을 하는 미국인은 한둘이 아니다. 트럼프 정부는 불과 수개월 사이에 글로벌 석학이 모여 있는 하버드 등 아카데미 엘리트 집단을 공격했고, 이민자와 외국 유학생을 추방했으며, 소수자에 대한 포용과 다양성 정책을 중단시켰다. 모두 ‘진짜 미국인’과 그렇지 않은 외부인을 구별하기 위한 문화 전쟁의 일환이다. 사람이든 국가든 여유가 없을수록 피아 식별에 집착하게 된다. 유한한 자원을 ‘우리’끼리만 나눠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수많은 미국인 눈에는 지금의 미국이 딱 그 꼴이다.

실제로 트럼프 정부가 내놓은 일련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은 경제·산업·사회를 막론하고 짙은 불안감이 기저에 깔려 있다. 이토록 노골적으로 미국을 우선시하지 않아도 저절로 군사력·경제력·기술력 우위를 누렸던 좋은 날은 이제 가고 없다는 것이다. 정책은 지켜야 할 것이 많고 퇴로가 없을수록 더 강경해진다. 올해 미국 GDP 성장률은 지난해 2.8%에서 1.8%로 둔화될 것으로 전망되며, 민주주의 평판 지수의 순인식 점수도 지난해 22%에서 –5%로 추락해 14%인 중국보다 낮았다.

LA 시위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시위자는 “미국이 안고 있는 경제 쇠퇴, 글로벌 영향력 하락 등 문제에서 관심을 돌리려고 이민자들을 희생양 삼고 있다”고 분노했다. 시위 참가자 패티 레이씨는 “대형 철물점이나 옷 가게에서 일하는 이민자의 신분 문제가 정말 당장 내전 같은 갈등을 겪어야 할 만큼 미국이 마주한 시급한 문제인가”라며 “숨기고 싶은 게 많은 정부의 정치적 선택일 뿐”이라고 했다.

세계 1위 강대국의 불안과 예민함은 그 그림자 아래 선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재명 대통령 앞에는 강경한 미국과의 관세 협상,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 등 일련의 숙제가 놓여 있다. 국가 간 협상은 언제나 어렵지만 내우외환을 겪으며 말 그대로 ‘불타고 있는’ 지금의 미국이 특히나 다루기 까다로운 상대인 것은 분명하다. 부디 냉철하고 강단 있는 외교 전략으로 리스크를 이겨내길 소망한다.

[실리콘밸리=오로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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