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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잠을 자듯이 종이책이 꼭 필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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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릴 예정인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인근의 호텔에서 빨간 안경과 빨간 전기휠체어를 탄 하오밍이 출판그룹 다콰이문화 대표를 만났다.

15일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릴 예정인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인근의 호텔에서 빨간 안경과 빨간 전기휠체어를 탄 하오밍이 출판그룹 다콰이문화 대표를 만났다. 


“올게(올해) 대만 출판인이 300명이나 오거든요.”



대만(타이완)에서 5일 서울에 도착한 하오밍이(69·郝明義) 출판그룹 다콰이문화(大塊文化·로커스) 대표는 부산 사투리가 역력하다. 부산 화교 출신인 그는 고등학교까지 한국에서 마치고 국립대만대학교로 유학 간 이후 대만에 정착했다. 매해 6월이면 베이징도서전이 열리지만, 그는 언제나 서울국제도서전행을 선택했다. 올해는 그에게 더 특별하다. 서울국제도서전의 올해 주빈이 대만인데다, 그가 한국어로 먼저 쓴 자서전 ‘찬란한 불편’(섬드레출판사)도 출간되기 때문이다.



“한국말이 서투른데, 잘 알아들으시겠어요?” 하면서 한국말을 능숙하게 하는 그를 지난 15일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릴 예정인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인근 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빨간 안경과 빨간 전기 휠체어를 타고 나타났다.



‘찬란한 불편’은 소아마비를 앓은 뒤 치료, 아버지의 사업 실패, 어머니의 죽음, 화교 학교의 친구들, 독립운동가 지청천 딸인 지복영 선생님과의 만남 등 한국 생활 내용과 취직에 실패했다가 번역가로 출판일을 시작하게 된 대만 생활로 나눠 구성됐다. 그는 자신을 “운 좋은 방랑자”라고 말한다. 32살에 스바오그룹 대형출판사 사장직을 맡고,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 최초로 대만관을 마련하고, 2005년 타이베이도서전재단을 공동 창립해 초대 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굵직굵직한 업적에 비하면 해탈한 듯한 표현이다. 현재는 1996년에 만든 다콰이문화의 회장으로 일하면서 타이베이도서전의 이사장도 겸하고 있다. 다콰이는 이태백의 시구 ‘대괴가 나에게 문장을 빌려준다(大塊假我以文章)’에서 나온 이름이다.



“별 재미가 없을 법한 데서 재미를 보는 게 (내가 느끼는) 재미죠.”



그의 출판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이큐(EQ) 감성지능’(대니얼 골먼)을 펴내 대만 전체에 ‘EQ 책 출판 붐’을 일으켰지만, 이후 관련 책을 내지 않았다. 영미 소설이 대세일 때 일본 무라카미 하루키와 이탈리아 이탈로 칼비노 소설을 소개한 다음 다른 이들이 그런 소설을 기대할 때는 다른 ‘방향’으로 갔다. 그랬더니 폴란드의 올가 토카르추크, 영국 이시구로 가즈오, 프랑스 아니 에르노 등 노벨상 수상 소설가의 작품을 ‘운 좋게’ 번역 출간했다. 베이징에서의 출판 도전이나 미국 뉴욕에서의 중국어 학습 소프트웨어 사업은 실패하기도 했다.



이렇게 변화를 즐겨온 그이지만, 종이책에 대한 믿음은 거두지 않는다. “디지털의 특성은 낮, 종이책의 특성은 밤과 비슷하다. 인간이 반드시 잠을 자야 하고 밤이 필요하듯이, 종이책은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생리적으로 건강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종이책 출판사의 생존법에 관해서도 그는 이렇게 말한다. “첫째, 존재 가치를 믿어야 한다. 왜 이것은 오디오북, 게임, 전시회가 아니라 종이책으로 나와야 하느냐 답해야 한다. 그렇게 믿으면 이런저런 도전이 실패하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방법을 찾아 나서게 된다. 둘째, 책을 잘 만들어야 한다. 종이책이어야 하는 이유에 답하는 제일 좋은 모양으로 내놓아야 한다. 종이책을 보는 독자 수는 줄었지만, 읽고 있는 독자들은 책에 대한 취향의 수준이 높고 애정이 깊다. 이런 독자를 만족시켜야 한다.” 이런 면에서 그는 1년에 120권 가량 내는 다콰이보다, 작은 출판사가 독자의 취향을 맞춰가는 데 유리하다고 봤다.



그는 ‘반서무운동의 첫 총성을 울린 사람’으로 불린다. 마잉주 총통의 국정 고문으로 있던 2013년 6월, 그는 ‘양안서비스무역협정(서무협정)’ 관련 뉴스를 접했다. 그는 협정 내용이 출판업계에 불리한 것을 직감하고 당시 야당인 민주진보당과 논의해 협정에 반대하는 성명문을 발표했다. 협정안은 다음해 국회 통과 뒤 대학생의 국회 점거 투쟁인 ‘해바라기 운동’으로 이어졌고, 결국 협정 발효를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교포이자 장애인이라는 이중의 굴레를 벗고 국정 고문이란 자리까지 맡았던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대만이라는 곳이 얼마나 개방적이고, 자유롭고, 포용력 있는 곳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지요.”



한국의 포용성에 관해 묻자, 그는 장애인으로서 느낀 이야기만 들려주었다. “한국은 신기하게도 인천공항 등의 공공건물에서는 장애인 시설이 국제 표준에 부합하거나 더 높아요. 그런데 그런 곳을 벗어나면 장애인이 갈 만한 곳이 없습니다. 코엑스 주변에 식당이 몇백개 있지만 제가 갈 수 있는 곳은 다섯 군데도 안 됩니다. 문 앞에 계단이 있고 문턱이 없는 곳이 거의 없어요. 도서전에서도 휠체어를 탄 사람을 만나기 힘들어요.”



그는 책에서 대만의 육지 문화가 해양 문화를 억압해 온 것으로 대만의 역사를 해석한다. 한국은 해양 문화의 특질이 잘 나타나는 곳이란다. “한국은 케이팝, 영화, 드라마까지 세계로 뻗어 나가는 기운이 강합니다. 변화가 많은 시대에는 해양의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는 자신의 책을 이런 ‘해양의 정신’을 가진 사람이 꼭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더 좋은 자신을 믿고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싶은 사람에게 길잡이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는 올 초 세부 바다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그의 도전은 계속된다.



글·사진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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