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포함해 다른 언어로 번역된 한강 작가의 소설들. 노벨상위원회 |
권영민 | 서울대 명예교수
인공지능 발전으로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직군으로 ‘통번역’ 업계를 지목하지만, 최근 통계는 예상 밖 반전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5월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통번역 업체 수와 종사자 수는 오히려 증가했고, 인공지능을 활용한 스타트업 창업도 활발하다. 인공지능은 표면적인 언어를 옮기는 데 강점을 보이지만, 여전히 문화적 맥락, 감정의 뉘앙스, 상황 이해 등 인간만이 수행할 수 있는 해석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는 특히 문학번역 분야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부커상을 비롯한 여러 해외 국제상이 번역가와 작가에게 동시 시상하는 것은 문학에서 번역이 단순한 전달을 넘어 공동 창작행위로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말을 옮기는’ 수준을 넘어 작품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라는 것이다. 지난가을, 우리 국민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던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작가 개인의 문학적 역량이 바탕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지만, 그 작품이 정제된 번역을 통해 해외에 소개되었다는 점 역시 수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은 분명하다.
한국의 문화예술은 한국인의 정서와 고유한 언어인 한국어를 기반으로 그 정체성을 형성해왔다. 하지만 이를 세계로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이질적인 외국 문화 속으로 진입해 충돌과 조화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외국어로의 번역은 필수적이며, 단순한 언어의 변환을 넘어 문화적 해석과 수용의 복잡한 과정을 수반한다. 설령 언어적 장벽을 넘었다 하더라도, 외국 독자의 취향과 문화적 맥락에 따라 작품이 받아들여질지 여부는 여전히 유동적이다. 결국, 한국 문화예술이 세계 독자와 온전히 만나기 위해선 이러한 문화적 충돌과 긴장을 섬세하게 조율할 수 있는 번역의 힘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국 문화의 세계화 논의에서 번역은 언제나 핵심 과제로 자리해 왔다. 그렇기에 문화예술 전반에서 창의적이며 융합적 역량을 갖춘 번역 전문가의 양성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듯, 국회는 오랫동안 계류 중이던 문학진흥법을 개정하여 번역대학원대학교 설립이 가능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번역대학원대학교의 주관기관이 될 한국문학번역원은 2008년부터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번역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연수 과정을 수료한 사람 가운데에는 영어, 불어, 독어, 스페인어, 일본어, 러시아어, 중국어 등 7개 언어권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국제 문학상과 번역상을 받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 자체가 비학위 과정이라는 제도적 한계를 가지고 있어서 자체 내 우수한 교수진을 확보하기도 어렵고 한국의 문화 예술에 대한 높은 관심을 지닌 수준 높은 연수자를 유치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결정적인 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기존 통번역 대학원에서는 실용 위주의 통역, 기술 번역과정이 주를 이루며 문학·문화예술 번역 과정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같이 현재 운영하는 비학위 과정만으로는 오늘날 문학번역이 요구하는 복합적 사고와 창의성을 충분히 길러낼 수 없다.
근래 경제 발전과 한류 확산에 힘입어 한국에 대한 관심은 문화예술에까지 확장하고 있으며, 이 기회를 지속가능한 성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전문 번역가를 체계적으로 양성할 교육 인프라가 반드시 필요하다. 제2, 3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위해 번역대학원대학교 설립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세계문학의 중심으로 한국문학이 발돋움하기 위해 적극적인 시도를 할 적기이며, 번역 인재 양성을 위한 제도적 기반 구축이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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