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영 기자]
최근 연례 개발자 행사 'WWDC25'에서 새로운 인터페이스 디자인 '리퀴드 글래스'를 선보인 애플이 혹평에 시달리고 있다. 전 세계 테크 업계의 관심이 인공지능(AI)에 쏠려있는 가운데 홀로 디자인 철학을 내세운 애플의 행보가 뜬금없다는 지적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디자인은 애플의 최대 강점 중 하나다. 많은 사용자들이 애플의 제품 디자인을 사랑한다. 단순히 보기 좋을 뿐만 아니라, 매끄럽고 세련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최근 연례 개발자 행사 'WWDC25'에서 새로운 인터페이스 디자인 '리퀴드 글래스'를 선보인 애플이 혹평에 시달리고 있다. 전 세계 테크 업계의 관심이 인공지능(AI)에 쏠려있는 가운데 홀로 디자인 철학을 내세운 애플의 행보가 뜬금없다는 지적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디자인은 애플의 최대 강점 중 하나다. 많은 사용자들이 애플의 제품 디자인을 사랑한다. 단순히 보기 좋을 뿐만 아니라, 매끄럽고 세련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애플은 기술보단 이런 사용자 경험을 더 중요시하는 회사다. 리퀴드 글래스는 단순한 미적 변화가 아니라 미래 AI 시대 새로운 디바이스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일 가능성이 크다. 굳이 모두가 AI만 바라보는 현 시점에 홀로 UI를 투명하게 만드는 데 집착하고 있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AI로 세상을 비추는 창
애플의 리퀴드 글래스 디자인은 '비전OS'의 깊이감과 입체감을 아이폰을 비롯한 여타 애플 기기에 접목시킨 게 특징이다. 버튼, 스위치, 슬라이더 등 모든 디자인 요소들이 반투명하고 실제 유리처럼 배경을 반영하는 게 특징이다. 색상은 주변 콘텐츠에 따라 달라지며, 밝거나 어두운 환경에도 곧바로 적응한다. 실시간 렌더링을 사용해 거울 반사 효과로 움직임에 동적으로 반응한다.
이는 애플이 현재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진 '글래스 윙(Glass Wing)' 프로젝트와 맞물려 중요한 의미를 갖을 것으로 보인다. 애플이 2027년 아이폰 20주년을 맞이해 선보일 것으로 알려진 글래스 윙은 아이폰의 전면 베젤을 완전히 제거해 디스플레이가 기기 전체를 감싸는 디자인을 목표로 한다. 디스플레이와 현실 세계의 '경계면'을 없애는 게 목표로, 리퀴드 글래스 디자인과 맞물려 새로운 잠재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두 기술이 결합된 아이폰은 사용자가 손에 든 기기를 통해 현실 세계를 바라보면서도, 그 위에 자연스럽게 AI가 제공하는 정보와 그래픽이 겹쳐 보이는 경험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길을 걸으며 아이폰으로 특정 건물을 비추면, 리퀴드 글래스 디자인이 적용된 화면 위에 건물의 정보, 영업시간, 사용자 후기 등이 실시간으로 떠오르는 식이다. 지금도 이런 서비스는 가능하다. 다만 리퀴드 글래스와 글래스 윙을 통해 통해 사용자들은 디지털 정보가 현실 세계를 어색하게 가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슬처럼 자연스럽게 맺혀 있는 것처럼 느낄 것이다.
'공간 컴퓨팅' 비전을 향한 포석
현재 구글, 삼성, 메타 등 다양한 빅테크 기업들이 '스마트 글래스'를 유력한 AI 시대 디바이스로 지목하고 제품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안경 형태의 디바이스는 현실 세계에 AI가 제공하는 정보를 덧씌우기에 최적의 형태로 평가받고 있다. 친숙한 착용 형태일 뿐만 아니라, 양손이 자유롭고 음성 인식에도 적합하기 때문이다.
다만 스마트 글래스가 독립된 디바이스로 스마트폰을 곧바로 대체하기 보단, 당분간은 보조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프로세서 성능이 발열, 배터리 용량 등 물리적 한계가 아직 뚜렷하기 때문이다. 전혀 새로운 사용자 경험에 익숙해져 한다는 점도 도전 과제다.
애플은 '투명한 아이폰'을 통해 이 간극을 노릴 가능성이 크다. 애플은 비전프로를 가상현실(VR) 헤드셋이 아닌 '공간 컴퓨팅' 디바이스로 정의한 바 있다. 현실 세계에 디지털 정보를 덧씌워 새로운 컴퓨팅 차원을 제공하는 게 애플의 목적이다. 애플 역시 스마트 글래스 형태의 디바이스를 준비 중이지만, 아직까지 기술적 한계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비전프로 같은 장비가 완벽한 착용감을 갖기 전까지 사용자들에게 친숙한 스마트폰을 AI 세계를 비추는 창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며, 이를 위한 사전 준비 단계가 리퀴드 글래스 디자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실 세계에 씌워진 디지털 공간이 시야에 어색하지 않고 몰입감을 해치지 않은 형태로 매끄럽게 제공될 수 있도록 사용자 경험을 향상시키기 위한 디자인이다.
애플이 iOS, ipadOS, visionOS 등의 버전을 연도로 통일한 것 역시 향후 다양한 디바이스에서 제공되는 정보들이 일관성 있게 사용자 경험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준비 중인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용자는 아이폰에서 경험하던 AI 인터페이스를 비전 프로, 혹은 미래의 다른 애플 기기에서도 일관되게 이어가며, 현실과 가상 공간의 경계를 허무는 끊김 없는 상호작용을 하게 될 것이다.
'AI 폰'을 향한 새로운 접근법
현재 스마트폰 업계는 'AI 폰'을 화두로 내세우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온디바이스 AI를 통한 실시간 통역, 사진 편집 등의 기능은 아직 소비자들의 경험을 획기적으로 바꾸지 못했으며, 판매량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실제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애플의 1분기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작년과 동일한 20%를 유지하고 있다. 전분기보다 4%p 증가한 수치다.
애플의 AI 전략이 경쟁사보다 늦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사용자의 맥락을 깊이 이해하고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차세대 시리(Siri)의 개발이 지연되고 있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하지만 AI 폰이 스마트폰 시장 구도를 크게 흔들지 못하고 있는 현재 상황으로 비취보면 애플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다. 애플은 분명 현재 AI 폰이란 패러다임을 앞서거나 선도하고 있지는 않지만, 오픈AI 등 파트너들의 힘을 빌어 트렌드를 따라가고 있다.
애플이 기대하는 건 'AI 폰', 혹은 'AI 디바이스'의 개념 자체를 자신들이 새롭게 정의하는 일이 될 것이다. 애플은 역사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가장 먼저 선보이기보다는, 가장 완성도 높은 사용자 경험으로 시장의 표준을 만들어왔다. 아이팟, 아이폰, 애플워치가 모두 그러한 성공 사례다. 따라서 현재의 더딘 행보를 애플의 AI 전략 실패로 규정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 애플은 리퀴드 글래스와 같은 디자인 혁신을 통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기존 AI 폰과는 차원이 다른 사용자 경험을 준비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애플이 직면한 실존적 위기는 AI 전략의 지연이 아니라, 중국 시장에서의 부진과 미중 무역 분쟁,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집권 시 가시화되었던 리쇼어링(생산기지 본국 회귀) 압박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에 있다. 애국 소비 성향이 강해진 중국 시장에서 애플의 아이폰 판매량은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으며, 이는 회사 전체 매출에 상당한 타격을 주고 있다. 또한 미중 갈등이 심화될 경우, 생산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 의존하는 애플의 공급망은 언제든 위협받을 수 있다.
갈림길에 선 애플
애플의 리퀴드 글래스 디자인은 다가오는 AI 시대를 대비한 치밀한 설계의 일부로 해석할 수 있다. 단기적인 기능 경쟁에 매몰되기보다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유기적인 결합을 통해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애플다운' 사용자 경험을 창조하고, 이를 통해 모바일을 넘어 공간 컴퓨팅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장기적인 비전이 담겨 있다는 해석이다.
애플의 진정한 저력은 AI 기술의 속도가 아닌, 그들이 그려나갈 미래 사용자 경험의 완성도에 달려있을 것이다. 분명 애플은 AI 시대를 향해 뛰고 있지만, 그 방향성은 경쟁 업체들과는 전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과연 누가 옳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지는 향후 2~3년 안에 결판이 날 것이다.
다만 그 사이 전혀 새로운 경쟁자, 애플의 디자인 황금기를 이끌었던 조너선 아이브와 손잡은 오픈AI 같은 이들이 나타나 아이폰을 구식처럼 보이게 만들어버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새로운 혁신의 바람이 보수적인 거인을 쓰러뜨린 사례는 IT 업계에 얼마든지 있다. 애플이 그들이 무너뜨린 노키아, 모토토라와 같은 신세가 되지 말란 법도 없다는 얘기다.
남도영 기자 hyun@ted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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