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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라지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6411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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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산행 중 야생 뽕나무 열매 오디를 따고 있다. 필자 제공

필자가 산행 중 야생 뽕나무 열매 오디를 따고 있다. 필자 제공




송무학 | 심마니·두물머리산삼 운영



나는 심마니다. 산에서 산삼과 약초, 버섯 등을 캐어 경기도 양평의 작은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연 속을 누비는 삶과 직업에 일종의 동경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심마니라고 인사하면 다들 경치 좋은 산에 다니고 운동도 하고 돈도 벌고 좋은 것도 많이 먹을 테니 부럽다고 한다. 자신도 심마니가 되고 싶다며 산삼, 약초 캐는 것을 가르쳐 달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현실의 심마니는 낭만적인 ‘자연인’의 삶과 거리가 있다. 길 없는 산비탈을 고되게 산행하다 몸이 망가지기 일쑤고 돈 벌기도 힘든 직업이다.



티브이(TV)는 심마니 여러 명이 경치 좋고 물 좋은 계곡에 앉아 싸온 밥이며 뜯은 산나물로 배불리 먹고 다니는 장면을 연출하곤 한다. 그러나 현실의 심마니들은 혼자나 둘이서 외로이 다니며 짐이 조금이라도 무거워질까 봐 떡 한덩이나 빵, 혹은 김밥 한줄만 가방에 넣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배고플 때면 아무 곳이나 잠시 앉거나 서서 허기를 면하고 곧바로 산을 탄다. 산삼이나 귀한 버섯을 찾으려고 애쓰다 보면 돈 안 되는 나물에는 시간을 허비하기가 어렵다.



요즘은 마음대로 산을 다닐 수도 없다. 전통적으로 심마니는 우리 민족의 삶과 함께하던 직업이지만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개인 소유 개념이 강화하면서 현재의 법체계에서는 함부로 산에 들어가 산삼이나 약초를 캘 수 없게 되었다. 개인 산은 남의 산이어서, 국유림은 국가 산이어서 들어갈 수 없다. 현실에는 산삼과 약초를 캐서 살아가는 심마니가 분명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없어진 셈이다. 누구보다 산을 좋아하고 산림 자원을 보호하는 데 진심이지만 산불 감시원과 산림청 직원들의 단속을 피해 눈치 보며 다녀야 한다. 드러낼 수 없는 노동이다.



약초를 채취하는 것이 직업인 심마니는 필연적으로 자연을 훼손할 수밖에 없다. 전문적인 심마니들은 자연이 인간의 손을 최대한 타지 않은 채 재생할 수 있도록 돌본다. 나 또한 최소한의 훼손을 위해 노력한다. 어린것은 채취하지 않고, 잔가지만을 자르며, 필요한 만큼만 채취하여 자연과 공생하려 애쓴다. 그러나 온라인에 회원이 몇만명이나 되는 약초 채집 동아리와 카페들이 생겨나면서 산에는 남아나는 게 없다. 내가 아무리 어린 약초를 남겨두며 조심해서 산을 다녀도 산삼이나 약초를 만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옛날에는 걸어서 며칠은 가야 했던 깊은 산이었지만 지금은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들이 들어선 경우도 많다. 산삼이 자라기 좋은, 물 좋고 아늑한 산자락은 대형 개발로 깎여나가고 곳곳에는 번지르르한 집들이 들어선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며 다양한 약초와 동물들이 살던 자연림은 ‘산 가꾸기’와 ‘조림’이라는 명분으로 간벌과 벌목으로 파괴되기 일쑤다. 매년 산삼을 캐던 산이 민둥산으로 변해 있을 때 마음이 착잡해진다.



자연산 약초는 여러 연구를 통해 효과가 입증되어 세계적으로도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비교적 최근에 천연물을 이용한 신약 연구개발과 산업화를 촉진하여 국민 건강 증진과 경제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목적으로 ‘천연물신약 연구개발 촉진법’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자연산 약초를 캐는 심마니와 자연산 약초는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품질 관리를 위해 한의원에 약재를 공급하는 것은 허가받은 제약회사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형 제약회사들은 소량으로 채취하는 자연산 대신 재배 약초와 수입산 약초를 유통시킨다. 안정적인 물량 확보를 위해서라지만 국내산 자연산 약초는 설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자연산 약초가 빠지니 효능은 떨어지고 한의학과 약초에 대한 신뢰도 무너지고 있다.



한번은 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산삼 감정을 의뢰해 왔다. 슬쩍 봐도 저가 중국 삼이었다. 의견서를 써줬더니 자신들도 사기 판매를 의심하여 단속했는데, 판매된 산삼에서 농약도 검출되었다고 한다. 선물받았다거나 사려고 한다면서 수시로 감정을 부탁해 오는 산삼의 대부분은 가짜다. 목전의 이익에 눈이 멀어 사람을 속이는 가짜 심마니들과 나쁜 장사꾼들이 가득하니 정직하게 캐는 산삼이 살아남기는 쉽지 않다.



‘자연과 사람이 모두 건강한 세상을 꿈꾸며’, 15년 전 전업 심마니로 일을 시작하면서 명함에 적어 넣은 문구다. 지금도 사용하는 명함이지만, 자연과 사람이 모두 건강한 세상은 현실에서는 보지 못하고 영원히 꿈으로만 그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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