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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낙인]① 게임은 질병인가? 6년째 평행선 달리는 논쟁

디지털데일리 이학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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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게임은 국내 콘텐츠 수출의 중심이자 문화예술의 한 갈래로 인정받고 있지만, 여전히 중독과 질병이라는 낙인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세계보건기구가 게임이용장애를 국제질병분류에 포함시키면서, 게임산업 위축과 이용자 낙인이라는 우려 속에서 제도 도입의 타당성과 사회적 파장을 둘러싼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이에 <디지털데일리>는 국내 게임 질병코드 도입 논의의 경과를 되짚고, 학술자료 분석과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낙인 효과의 실체를 점검한다. 이를 통해 게임산업과 사회 전반이 공감할 수 있는 합의의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이학범기자] 게임산업이 낙인의 기로에 서있다.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규정한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ICD-11)이 발표된지 벌써 6년이 지났지만, 산업계와 의학계의 입장차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다.

WHO는 지난 2019년 ICD-11을 발표해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코드 6C51로, 도박장애(6C50)와 나란히 분류했다. 진단 기준은 게임이용에 대한 통제력 상실, 게임을 우선시하는 행위의 반복, 부정적 결과에도 12개월 이상 게임이용을 지속하는 경우 등이다. 다시 말해 통제력을 상실한 채 1년 이상 게임을 반복해서 즐긴다면, 치료가 필요한 장애로 간주한다는 의미다.

국내 게임업계와 이용자들은 즉각 반발했다. 게임이 질병으로 분류될 경우 '중독'이라는 낙인이 산업 전체에 씌워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특히 게임산업이 국내 콘텐츠 수출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산업이라는 점에서, 질병코드 분류가 산업적·문화적 타격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정부는 이후 국무조정실 주도로 민관협의체를 구성하고, ICD-11의 국내 도입 여부를 논의하도록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ICD-11을 반영한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 10차 개정안은 2027년 고시되며, 시범 적용을 거쳐 2031년부터 공식 시행될 예정이다. 다만 지난해까지 민관협의체에서 총 12차례의 공식 회의와 4건의 연구용역이 진행됐음에도 민관 간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 산업계 "과학적 근거 부족해…산업에 낙인 우려"


산업계는 게임이용장애의 질병 분류에 대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게임이용장애가 독립적인 질환인지, 기존 정신질환의 결과인지에 대한 연구가 아직 일관된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게임이 2022년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을 통해 문하로 공식 인정된 만큼, 질병코드 드입은 정부의 문화진흥 정책과 충돌할 수도 있다.

게임이용장애에 대한 임상 기준이 명확히 정립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2024 게임 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10~69세 인구의 약 60%가 게임을 즐기고 있다. 기준이 불명확한 상황에서 이들을 잠재적 환자로 간주한다면 사회적 낙인을 찍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나아가 진단 기준이 모호한 상태에서 등재가 이뤄질 경우 불필요한 임상 실험 및 재정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 민관협의체가 지난 2019년 실시한 연구용역에 따르면 게임이 국내 질병코드에 등재될 경우 2년 동안 약 8조원을 넘어서는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예측이 제시됐다.


국제 학계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해 열린 게임이용장애 국제세미나에서 마띠 부오레 네덜란드 틸뷔르흐대학교 교수는 "질병코드를 부여받게 되면 게임하는 이들에게 장애가 있는 것 처럼 낙인이 찍힐 수 있다"며 지적했고, 조문석 한성대학교 교수는 "4년간의 연구 결과, 게임이용장애를 독립된 질환으로 볼 수 있는 명확한 근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사회·심리·환경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 의학계 "실제 피해자 있어지원 위해선 도입 필요해"

반면 의학계는 진료 현장에서 게임이용장애로 일상에 지장을 받는 환자들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강조한다. 이들에게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질병코드 등재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게임이용장애의 질병코드 등재를 통해 문제 해결의 실질적 접근이 가능해질 것이라 보고 있다. 명확한 진단 체계가 없어 치료와 개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질병코드가 등재되면 정식 의료 서비스의 적용이 가능해지고 보험청구·연구지원·의료 인프라 구축 등 체계적인 치료 기반 마련에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열린 'WHO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문제 공청회'에서 한림대학교 이상규 교수는 "17개국 53개의 신경학적 연구 결과 일반 인구 내 유병률이 3.05%였다"며, "핵심은 심리적 의존, 통제력 손상, 갈등 경험이다. 내적 취향성이나 환경 영향으로 문제를 겪을 수 있어, 이들에게 적절한 도움이 제공돼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다만 최근 게임과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주요 게임산업 국가인 미국 일본, 중국, 독일, 프랑스, 인도 등 12개국 중 현재까지 게임이용장애를 자국 질병분류체계에 등재한 국가는 없다. 독자적 분류 기준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정신의학협회 역시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메뉴얼(DSM-5)에 추가 연구가 필요한 항목으로 등재한 채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 통계청 "WHO 라이선스 계약으로 게임이용장애 제외 반영 불가능해"

논의가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통계청은 최근 WHO와의 'ICD-11 사용 조건 및 라이선스 계약'을 근거로 게임이용장애를 KCD에 제외하고 반영할 수 없다는 새로운 견해를 내놨다.

WHO 라이선스 계약은 ICD의 국가별 도입에 있어 체결하는 일종의 저작권 계약이다. 더불어민주당 강유정 의원실에 따르면 통계청은 최근 민관협의체 논의에서 ICD-11을 임의로 개작하는 것은 계약 위반에 해당된다며, 반대 입장을 내세웠다.

이는 과거 민관협의체에서 "국내 실정 반영 가능성을 검토하겠다"라고 했던 입장과 상충된다. 이를 두고 강유정 의원은 "협의 과정을 무력화한 채 국제 계약을 핑계로 일방적 결정을 추진하는 것은 국민적 동의 없이 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나아가 국내 법률 전문가들은 WHO 라이선스로 인한 ICD-11의 국내 반영이 필수적인 사항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지난 5월 개최된 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 학술대회에서 법무법인 태평양 강태욱 변호사는 해당 계약을 살펴본 결과 수정 및 배포를 금하는 조항은 있어도 개별 코드를 삭제하는 것을 막는 규정은 없다고 밝혔다.

강태욱 변호사는 "국내에 ICD-11의 일부를 수정해 기재해도 라이선스 기준 위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게임이용장애를 제외한 ICD-11의 국내 질병코드 반영이 가능하다"라는 견해를 내놨다. 법무법인 광장의 윤종수 변호사도 "WHO 라이선스를 수정하면 안된다는 이유라면 ICD를 번역해 반영하는 것도 저작권상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강 변호사의 의견에 힘을 싣었다.

한편, 통계청은 "민관협의체의 결정을 토대로 정한다는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다"며, "ICD-11 라이선스 관련 언급은 질병코드 도입 여부와 무관하다"라고 입장을 전했다.

◆ 한번 찍힌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게임이용장애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의학적 진단 기준의 문제가 아니다. 게임을 질병으로 분류한다는 선언은 그 자체로 이용자 전체를 잠재적 환자로 보는 사회적 시선을 강화할 수 있으며, 이는 산업과 문화 전반에 구조적인 낙인을 남길 수 있다.

특히 다층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문제를 단일 질병코드로 환원하는 접근은 실제 원인을 가리는 동시에 청소년과 보호자에게 불필요한 공포를 야기할 우려도 크다.

물론 실질적인 어려움을 겪는 소수의 사례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무시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를 위한 해법이 질병분류라는 데는 합의가 필요해 보인다. 문제는 낙인이며, 낙인은 법령보다 오래 남는다.

ICD-11의 국내 도입까지는 아직 몇 년의 시간이 남아 있다. 그 안에 산업·이용자·보건 영역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합의 지점을 찾기 위해 다양한 맥락에서의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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