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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창] ‘한국인의 밥상’, 다음 한 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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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택 연필뮤지엄 관장
우리는 매일같이 수많은 음식 프로그램을 본다. 요란한 먹방, 날카로운 품평, 극적인 서사. 그러나 이 모든 ‘맛있는 콘텐츠’ 사이에서, ‘한국인의 밥상’은 다르게 기억된다. 조용하지만 우직하게, 오랫동안 제 갈 길을 걸어온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토속 음식을 소개하고, 그 속에 담긴 사람살이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극보다 진정성으로 시청자와 소통해왔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최불암이 있었다. 그는 때론 아버지 같고, 이웃 같으며, 한 시대를 지켜본 증인 같았다. 따뜻하고 차분한 목소리, 정제된 말투, 늘 사람을 향한 시선은 이 프로그램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시청자는 그의 해설을 통해 음식 이상의 무언가를 느꼈다. 한 끼의 밥상 너머로 삶의 지혜와 공동체의 온기를 마주하는 듯한 감동이었다.

최근 진행자가 최수종으로 교체되었다. 세대교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방송 환경은 달라졌고, 시청자 층도 변했다. 최수종 역시 성실하고 친근한 배우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밥상’이라는 상징성과의 연결고리를 생각하면 어딘지 약간의 거리감이 느껴진다.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꼭 그 자리에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문득, 다른 가능성을 상상해보았다. ‘한국인의 밥상’이 기존 명성의 연장이 아니라 시즌 2의 새로운 기획이라면 전혀 다른 색채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이를테면 드라마 ‘대장금’의 주연 이영애가 진행을 맡았으면 어땠을까? 대장금은 음식과 약을 통해 사람들과 교감하고 자신의 입지를 구축한 인물이다. 약식동원(藥食同源)의 정신은 지금도 유효하며, 그 상징성을 가장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는 단아하면서도 세련된 이미지를 지녔다. 전통적인 프로그램의 정서와는 다를 수 있지만, 바로 그 ‘차이’가 새로운 가능성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예컨대 깊은 산속에서 채취한 약용 식재료를 소개하며 시작되는 한 끼, 또는 궁중 음식의 유래를 따라가며 현대 식탁과 연결 짓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전통 음식에 대한 여성의 시선과 현대적 재조명, 세계 속 한식의 확장성, 이영애라면 이러한 주제들을 설득력 있게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밥상’이라는 단어에 담긴 정서적 풍경을 넓히고 깊이를 더하는 데 그녀만큼 적합한 인물도 찾기 힘들다.

‘한국인의 밥상’은 오랫동안 여성의 손끝에서 차려진 음식들을 남성의 시선으로 풀어내 왔다. 만약 이영애가 진행을 맡는다면, 이는 진행자가 단지 여성으로 바뀌었다는 의미를 넘어, 현대 여성의 시각으로 전통을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는 이미 잘 알려진 한류 배우이기에, 이 이야기를 한국 안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세계의 밥상으로 이끌 수 있는 힘도 지니고 있다.


물론 새 진행자가 방송을 진행하고 있고, 제작 여건 또한 고려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아쉬움을 글로 남겨두고 싶은 이유는 하나다. ‘한국인의 밥상’이 지금까지의 시청률에 기대지 않고, 다음 시대의 감성과 호흡하며 도약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건 과거의 정취를 재현하는 복원이 아니라, 그 전통이 오늘의 삶과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를 묻는 태도다. ‘한국인의 밥상’이 다음 한 끼를 어떻게 차릴지는 방송 편성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은 전통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이며,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우리의 문화적 선언일 수 있다.

우리는 그저 다음 한 끼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담길 이야기와 감각, 그리고 또 다른 ‘공감’을 기대하고 있다.

[이투데이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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