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시진핑(오른쪽 사진)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시 주석 사진은 작년 11월 우주정거장에 머물던 중국인 우주비행사들과 통화하는 모습. /대통령실·중국CCTV |
이재명 대통령은 10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첫 통화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위한 중국의 역할을 당부하고, 오는 11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시 주석을 초청했다. 대통령실은 “이 대통령이 오전 11시 30분부터 시 주석과 30분간 통화했다”면서 “시 주석은 이 대통령의 대선 승리를 축하하면서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발전을 위해 협력해 나가자고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시 주석의 축하에 사의를 표하고, 양국이 호혜 평등의 정신하에 경제·안보·문화·인적 교류 등 다방면에서 활발한 교류와 협력을 추진해 나가자고 말했다”고 밝혔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도 이날 보도에서 시 주석이 이 대통령에게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 임기 중 중국과 외교 관계 격상을 논의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중국 측 발표를 보면 한미 동맹을 견제하는 미묘한 분위기도 감지됐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혼돈에 빠진 지역과 국제 정세에 더욱 확실성을 불어넣어야 한다”면서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의 수호’ ‘산업 공급망의 안정’도 강조했다고 한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반도체 제재 등 한국에도 영향을 주는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이 패권 경쟁을 벌이는 미국을 견제하는 동시에 미국의 동맹인 한국을 끌어당기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오는 15~17일 서방 선진국 모임인 7국(G7) 정상 회의에 참석해 취임 첫 한미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가운데 ‘이재명 실용 외교’가 첫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이날 통화로 이 대통령은 취임 7일 만에 미국·일본·중국 등 핵심 우방 및 이웃 국가와의 ‘통화 외교’를 마쳤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9일에는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통화했다.
◇‘핵심 이익’ ‘자유 무역’ 강조… 시진핑, 첫 통화부터 韓외교 압박
대통령실은 이날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양국 국민의 삶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한중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공감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두 정상이 지방에서부터 정치 경력을 쌓아왔던 공통점이 있어 이날 통화가 친근하고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됐다고도 전했다. 시 주석은 푸젠(福建)성장, 저장(浙江)성장, 저장성 서기, 상하이시 서기 등을 거쳐 중앙으로 진출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통화 뒤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려 “우리에게 중국은 경제, 안보 등 모든 면에서 중요한 파트너”라고 했다.
중국 국영 CCTV와 신화통신도 양국 정상 통화 내용을 자세히 전했다. 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피차 핵심 이익과 중대한 우려를 존중해야 한다”면서 “양자 관계의 큰 방향을 확립하고 중·한 관계를 시종 정확한 궤도를 따라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과 한국은 이사할 수 없는 가까운 이웃”이라며 “수교 33년 이래 양국은 이데올로기와 사회제도의 차이를 넘어 각 영역의 교류와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상호 성취와 공동 발전을 실현했다”고 했다.
시 주석은 “혼돈에 빠진 지역과 국제 정세에 더욱 확실성을 불어넣어야 한다”면서 “한중 양자 협력과 다자 협의를 긴밀하게 하며,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을 공동으로 수호하고 세계와 지역의 산업 공급망이 안정되고 원활하도록 보장해야 한다”고도 했다.
시 주석이 ‘혼돈에 빠진 지역과 국제 정세’ ‘서로의 핵심 이익과 중대 우려 존중’을 언급한 것은 미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한국·일본 등이 곤란을 겪는 점을 부각하면서 대만 문제에서는 중국 입장을 적극 고려하라는 요구로 해석된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시 주석이 트럼프 행정부로 인한 정세 변화를 ‘혼란’으로 규정하며 중국을 통한 ‘질서 정립’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중국은 이재명 정부 초기부터 각종 유화책으로 한국과 밀착하려 할 것”이라고 했다. 시 주석이 APEC 정상 회의를 계기로 방한하고, 이에 앞서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 전면 해제 등과 같은 ‘당근’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시 주석이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을 강조한 것도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과 서방 진영 중심의 공급망 재편 움직임 등을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은 “중국은 한미 동맹을 기반으로 한 한국의 양자 중심 외교 전략을 염두에 두고 다자주의를 강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그간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 중국 주도 다자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에 동참할 것을 요구해 왔다. 김 전 실장은 “시 주석이 이 대통령에게 북미·서유럽 중심 연대에만 머물지 말고, 글로벌 사우스(비서구권 국가들)와도 연대하라는 메시지를 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신화통신은 이 대통령이 통화에서 “(시 주석 발언에) 찬성했다”면서 “시 주석의 탁월한 영도 아래 중국은 위대한 발전과 성취를 이뤄 탄복하게 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를 고도로 중시하며 중국과 함께 양자 관계 우호 관계의 발전을 심화하고, 양국 국민 사이의 감정을 개선하고 증진하며, 한중 협력이 더 많은 성과를 거두도록 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를 위해 중국이 건설적 역할을 해달라”고 했다. 이에 시 주석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은 양국의 공동 이익인 만큼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고 한다.
중국 국영 매체가 이날 통화 내용을 자세히 보도한 건 중국이 양국 관계 개선에 그만큼 관심이 크다는 의미다. 당선 직후 상견례 성격의 정상 통화에서 산업 공급망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언급을 하고 이를 세세히 공개한 것도 이례적이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한국에 미·중 가운데 양자택일할 것을 요구하는 가운데, 중국이 한국에 손을 내밀며 전략적 접근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시 주석은 2022년 3월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첫 통화에서는 한중 미래에 대해 ‘행온치원(行穩致遠·서두르지 말고 안정적으로 나아가야 멀리 갈 수 있다)’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이번엔 “올바른 궤도 위에서 앞으로 나아가자”고 했다.
이 대통령은 통화 후 소셜미디어에서 “금년(한국)과 내년(중국) APEC 의장국인 양국이 APEC을 계기로 긴밀히 협력하면서, 양 국민의 삶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함께 만들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시 주석을 올해 11월 개최하는 경주 APEC에 공식 초청했다. 시 주석이 APEC 때 한국을 방문하면 2014년 7월 박근혜 정부 시절 이후 11년 만의 방한이다.
이 대통령은 미국, 일본 정상과 통화한 다음에 중국 정상과 통화했지만 통화 시간은 시 주석이 30분으로 가장 길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는 25분, 트럼프 미 대통령과는 20분이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3국 정상과의 통화 시간에 대해선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시간 차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듯하다”고 했다.
[노석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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