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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군 투입, 계엄령의 서곡”…트럼프가 노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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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도심에서 연방정부의 이민 단속에 반대하는 시위 중, 시위 참가자가 캘리포니아주 고속도로순찰대원(CHP)들과 마주 서서 미국 국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도심에서 연방정부의 이민 단속에 반대하는 시위 중, 시위 참가자가 캘리포니아주 고속도로순찰대원(CHP)들과 마주 서서 미국 국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트럼프에게 이것은 예행연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방위군을 로스앤젤레스에 투입한 것을 두고 ‘계엄령’을 겨냥한 예행연습이라는 의혹이 일고 있다. 자신의 집권에 위협이 감지될 경우, 어떻게 군을 동원해 대응할 수 있을지 ‘시나리오’를 미리 시험해 보고 있다는 것이다.





군대는 치안 맡을 수 없는데…트럼프, 왜?





미 월간지 애틀랜틱은 8일(현지시각) 보도에서 로스앤젤레스 이민 단속 반대 시위에 주방위군을 투입한 것은 정말로 질서를 회복시키겠다는 목표가 아닌, ‘비상사태’의 명분을 쌓으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캘리포니아주는 7만5천명 이상의 경찰 인력을 보유, 실제로 치안력이 부족한 상황이 아니었다. 로스앤젤레스경찰청(LAPD)만 따져도 9천명이다. 시위 초반 돌을 던지거나 차량 통행을 방해하는 수준의 시위대는 주정부 차원에서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트럼프는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지원이 필요 없다는 데도 논란을 무릅써가며 주방위군을 2천명 투입했다. 9일에는 로스앤젤레스에 해병대까지 파견하기로 했다. 미 북부사령부가 이날 낸 성명을 보면 해병대원 약 700명이 투입돼 이미 배치된 주방위군과 함께 활동하게 된다. 전날 피트 해그세스 국방부 장관이 “폭력이 계속되면” 해병대를 투입할 태세가 갖춰졌다고 할 때만 해도 곧바로 정규군을 보내리라는 관측은 많지 않았다.



만약 정말로 시위가 격화되어 7만5천명으로는 턱도 없다면, 주정부가 먼저 연방 지원을 요청했을 것이다. 실제 올 초 대형 산불 당시 주정부는 연방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마지못한 태도를 보였다. 반면 이번엔 주정부도 로스앤젤레스시도 거부한 ‘지원’을 트럼프 행정부가 먼저, 그것도 강제로 밀어붙였다. 군 투입 소식은 오히려 “불길에 기름을 붓는”(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형국이 됐다. 사흘째 시위는 한층 규모가 커졌다.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도 군대가 국내 치안을 맡아선 안 된다. 연방군의 국내 정치 개입을 제한한 ‘포스 커미타투스 법’ 위반이 된다.



군대가 국내 치안을 맡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단 한 가지, 반란이 일어났을 때뿐이다. 반란, 폭동, 내란이 일어났을 때 행정부가 연방군 그리고 ‘연방화’된(연방군으로 편입된) 주방위군 등 군대가 경찰처럼 시위 진압, 체포 등 국내에 동원할 수 있게 예외를 두었다. 미국 연방법에선 ‘반란법(Insurrection Act)’이라고 부른다 . 한국으로 치면 ‘계엄령’과 비슷하다. 반란법 발동은 매우 드문 일이고, 정치적 ·사회적 논란이 크다.





“트럼프, 법적 한계 시험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기화로, 반란법을 발동하지 않는 선에서 얼마나 할 수 있는지 실험해 보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트럼프는 지금 반란법을 발동하지 않은 채 주방위군을 투입하는 “이례적 시도”(워싱턴포스트) 중이다. 위법 소지가 있다고 개빈 뉴섬 주지사가 지적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면 군은 시위대 체포 등 직접적인 치안 활동은 할 수 없고, 연방요원 보호 등의 제한적 임무만 수행할 수 있다. 이렇게 제한적인 일만 할 수 있는데 굳이 군을 투입한 이유에 대해, 워싱턴포스트는 법률전문가를 인용해 “반란법을 적용할 경우 생길 정치적 파장을 피하려는 의도이거나, 앞으로 반란법을 적용하려는 서곡”이라고 분석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전부터 반란법을 동원해 시위를 진압하고, 국경 경비를 강화하며, 이민자들을 추방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트럼프는 1기 집권 때인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시위 때 실제로 반란법 발동을 논의한 적도 있다. 하지만 당시 국방장관 마크 에스퍼와 합참의장 등 군 수뇌부는 물론 짐 매티스 같은 전직 국방장관까지도 “반란법 발동은 최후의 수단이며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라고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이번엔 반대할 사람도 없다. 트럼프 충성파들이 군과 국토안보부, 연방수사국(FBI) 등 요직을 장악하고 있다.



만약 이번 시위가 격화되어 충분한 명분이 선다면, 반란법을 발동할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것이 우려의 골자다. 애틀랜틱은 “트럼프 대통령 재선 뒤 집권 2기를 예의주시해 온 전문가들이 2026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특정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가 연방 권한을 이용해 시위의 불을 거세게 지핀 뒤, 혼란이 커지면 이를 비상사태로 규정해 군 동원 및 연방정부 개입의 명분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2026년 중간선거 등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연방정부의 개입을 정당화하거나, 민주당 강세 지역 투표를 방해할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 이번 사태가 선거 관리권을 연방이 장악할 ‘위험한 예행연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반란법’ 동원은 LA 폭동 진압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 당시 반란법은 실제 발동된 바 있다. 당시 로스앤젤레스 전역에서 폭동, 방화, 약탈, 총격 등 극심한 혼란이 발생하며 현지 경찰력만으로는 치안 유지가 불가능해지자,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공식 지원을 요청했고 조지 부시 대통령이 반란법을 발동했다. 캘리포니아 주방위군이 연방화되어 연방군에 들어갔고, 육군·해병대 등 연방군과 국경수비대 등 법집행인력들도 전부 로스앤젤레스로 투입됐다. 국방부가 ‘시민 소요 진압 작전’을 지휘했다.



정치권에서 트럼프의 ‘계엄령 시나리오’에 대한 우려는 끊이지 않았다. 지난 4월엔 소셜미디어에서 트럼프가 반란법을 발동해 계엄령을 선포할 것이라는 루머가 널리 번지기도 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로스앤젤레스에서 폭력 시위를 하면 트럼프의 의도에 말려들어가는 것이라며 자제를 촉구하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와 민주당 소속 주지사들도 평화적인 시위를 주문하고 있다. 뉴섬 주지사는 8일 저녁 엠에스엔비시(MSNBC)와의 인터뷰에서 “오늘 밤 여러분이 텔레비전에서 보는 상황을 만든 사람은 미국 대통령”이라고 비난하며 일부 폭력 시위에 동조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무정부주의자들이 문제를 일으키려 시위에 침투하고 있다. 트럼프의 손에 놀아나고 있는 것” “트럼프를 돕고 부추기는 방식으로 이 상황을 악용하려는 세력에 맞서야 한다”며 거듭 평화 시위를 촉구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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