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효숙 리박스쿨 대표가 ㈔역사연구원의 7차 세미나에서 소개한 ‘대한민국송’ 악보. 세미나 자료 갈무리 |
송아름 | 초등교사·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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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의 히틀러 유겐트(Hitler-Jugend)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국가 이념에 맞게 양성하기 위한 조직이었다. 히틀러 유겐트의 활동은 민족사회주의 세계관 교육과 체력단련으로 이루어졌다. 대원들은 민족사회주의 이념을 장착한 신체 건강한 청소년으로 자랐고, 전쟁 말기에는 실제 전장으로까지 내몰렸다. 자신의 생각과 의지, 판단력이 덜 여문 시기의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사상과 훈련을 주입한 결과는 개인적, 사회적 혼란으로 돌아왔다. 전후 독일 청년들의 삶을 다룬 영화나 문학에서는 공통으로 이들 내면의 상흔을 조명한다.
최근 ‘리박스쿨’이라는 단체가 윤석열 정부의 ‘늘봄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극우 역사관을 주입하고 있었다는 보도를 보고 문득 히틀러 유겐트가 떠올랐다. 너무 많이 나간 비유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내겐 공통점이 명확해 보였다. 기사가 나오기 몇개월 전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다가 처음 ‘대한민국송’을 접했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을 대체할 만한 즐겁고 새로운 노래인 줄 알았다. 그런데 가사가 이상했다. 조선 말 미국 기독교 선교사들에 대한 찬양으로 시작해서 이승만과 박정희 전 대통령 추앙으로 이어지고, 대기업 창업주들의 공로를 칭송하며 부국강병을 이룬 자랑스러운 역사라는 메시지로 끝을 맺었다. 종교의 자유가 엄연한데 기독교 선교사들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도 불편했지만 제목에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썼으면서 어디에도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근간을 이루는 저항이나 아픔, 그림자를 담은 구절이 없었다, 마치 역사적 사실의 단물만 뽑아서 만든 노래 같았다.
그때는 인터넷에 떠도는 이상한 콘텐츠라고 넘기고 말았는데, 대통령 선거 전후로 갑자기 이 노래와 관련된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뉴라이트 계열 역사교육 세미나에서 학생들에게 미디어로 역사관을 침투시킨 사례로 ‘리박스쿨’ 대표가 소개한 노래라고 했다. 이들은 뉴라이트 역사관을 주입하기 위한 기회를 모색하던 중 ‘늘봄학교’ 사업을 이용하여 학교로 들어왔다. ‘자손군’이라는 댓글부대도 운영하며 강사 자리를 미끼로 특정 후보를 공격하거나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를 띄우는 댓글을 쓰도록 했다는 정황도 있었다. 기사들을 찾아보며 정말 우리가 이렇게까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이들이 늘봄학교의 대상인 초등 1~2학년 학생들에게 편향된 주입식 역사교육을 시도했다는 점이었다. 역사에 대한 특정한 해석과 이념을 다양한 역사적 맥락과 견해를 보여주지 않고 주입하는 방식은 교육이 아니라 선전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히틀러 유겐트를 떠올렸고, 어린이를 어른들의 정치적 선전 도구로 이용한 것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기사에 달린 댓글 중에는 “사실에 기반한 걸 가르쳤는데 뭐가 문제냐”, “진보 교육계도 자기들 이념대로 가르치지 않느냐” 같은 의견도 있었다. 물론 역사에는 해석의 영역이 있고, 완벽하게 객관적인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맥락을 삭제한 채 한쪽의 신념만 유일한 진실인 양 주입하는 태도는 극단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그 시기에 교육을 통해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접하며, 스스로 역사를 판단하고 해석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특정한 이념을 ‘주입’받고 그대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과거의 역사를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를 기르고 자신의 역사적 좌표를 해석하며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개인으로 성장해야 한다. 나는 교사로서 내가 서 있는 반대편의 역사도 공정하게 다루었는지, 혹시 나의 교육이 또 다른 편향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를 끊임없이 돌아보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또한 학생들의 순수함과 배움의 욕구, 공동체에 대한 기꺼운 마음을 이용하는 이들을 경계하고 학생들을 이들로부터 지켜내야 한다는 의무감을 새로이 느꼈다. 이런 이들이 존재하는 한 우리 사회에서 또 다른 히틀러 유겐트가 탄생할 가능성은 늘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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