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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천성 이겨내고 나라를 지킨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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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갑곶리 탱자나무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


나라 위해 몸 바친 희생의 역사는 사람에게만 새겨진 것이 아니다. 말 없는 생명들도 겨레에 닥친 모진 세월을 함께 견뎌왔다. 제 본성마저 거스르며 나라 지키는 파수꾼이 된 나무가 있다.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다.

강화도는 예로부터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임금이 피난처로 선택한 천혜의 요새였다. 여러 피난 경험 끝에 조선의 조정은 강화도에 돈대와 외성 등 방어시설을 설치했다. 그러나 흙으로 쌓은 성벽은 비바람에 무너앉기 일쑤였다. 이에 영조 때에 강화유수 원경하의 제안에 따라 탱자나무 울타리를 성벽에 심기로 했다. 땅속 깊이 뻗은 뿌리가 성벽을 튼튼히 지켜낼 뿐 아니라, 날카롭고 억센 가시는 철조망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국가의 부름을 받은 탱자나무는 따뜻한 남쪽 나라를 떠나 추운 섬마을에 뿌리를 내렸다. 하지만 그때 심어졌던 탱자나무 대부분은 강화도의 혹독한 기후를 견디지 못하고 스러졌다. 갑곶돈대 언덕에 심어진 탱자나무는 모진 바닷바람 다 이겨내고 위풍당당하게 살아남았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1962년만 해도 강화도는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방한계선이라는 식물학적 의미가 컸다. 그러나 기후변화와 함께 최근에는 탱자나무의 생육 가능 지역이 북상한 것으로 알려지며 이 나무의 식물학적 가치는 희미해졌다.

이제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는 호국의 역사와 정신을 품은 문화유산으로 남았다. 400년의 세월을 지나는 동안 높이 4.2m, 뿌리 부분 둘레 2.1m의 큰 나무로 자랐다. 그의 당당한 풍채에는 국난 극복의 장한 역사가 아로새겨져 있다. 뿌리에서부터 줄기가 여럿으로 갈라져 자라는 관목 형태의 이 탱자나무는 이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탱자나무가 됐다.

강화대교 앞 비탈에 서서, 갑곶돈대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당당하게 맞으며 말없이 이 땅의 역사를 지켜온 큰 나무다. 6월의 하늘 아래, 국방의 최전선에서 한평생을 바친 ‘장한 나무’를 마주하며 호국보훈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시간이다.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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