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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없는 세상’ 외친 광장…새 정부 “나중에”는 너무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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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에서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노동자 등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가 차별의 문제를 공론화했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제공

지난해 12월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에서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노동자 등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가 차별의 문제를 공론화했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제공





매주 이 연재 글을 써온 지 1년이 넘었다. 마감이 돌아오는 주말마다 고통이었다. 글을 쓰는 것보다 뒤죽박죽된 기억을 자료를 찾아서 바로잡는 일이 더 힘들었다. 이제 몇번 남지 않은 기회에 그동안 써야 할 일을 못 쓴 대목들을 몇가지 적어보려고 한다.



먼저 생각나는 것이 ‘차별금지법 제정’ 싸움이다. 인권운동가들은 18년 동안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투쟁을 지속해왔다. 18년 동안 외쳤고, 안 해본 것 없이 다하면서 싸워왔는데도 다시 ‘나중에’로 미뤄지고 있는 과제다. 오랜 시간 싸웠는데도 안 된다면 포기해야 할까?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퇴진”을 외치면서 시민들이 광장에 모였다. 8년 만에 다시 열린 대통령 탄핵 광장이었다. 올해 4월4일 헌법재판소가 만장일치로 “대통령 윤석열의 파면”을 결정하기까지 전국의 1700여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구성한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헌법재판소 결정 이후에는 ‘내란종식·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이하 비상행동)은 주말마다, 비상한 상황이 펼쳐지던 시기에는 매일 서울 여의도와 광화문, 남태령, 한남동 등에서 집회를 이어왔다. 한겨울의 폭설과 한파를 이겨내면서 싸운 결과는 대통령을 탄핵하고, 조기 대선 국면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조기 대선에 따라 새 정부가 들어섰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회원들이 지난 2011년 1월5일 오전 서울 여의도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차별금지법은 차별받는 모든 사람을 위한 법”이라고 밝혔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회원들이 지난 2011년 1월5일 오전 서울 여의도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차별금지법은 차별받는 모든 사람을 위한 법”이라고 밝혔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사회대개혁 1순위, 차별금지법





비상행동의 온라인 공론장인 ‘천만의 연결’에서 가장 많이 나온 사회대개혁 요구는 ‘차별금지·성평등·인권·소수자권리’(25.9%)였다. “모든 사람이 차별받지 않고 존엄하게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열망이 가장 뜨겁게, 빈번하게 나타났고, 구체적으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으로 응축되었다. 그다음으로 많이 나온 과제는 ‘정치개혁과 민주주의·정치참여’(25.8%), ‘노동권과 노동환경 개선’(10%) 순이었다. 광장에 참여한 청년들의 조사에서도 ‘평등하고 다양성이 존중되는 포용사회’가 가장 먼저 꼽혔다. 광장의 무대에 오른 시민들의 발언에서도 가장 많이 언급된 요구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번 대선에서도 ‘차별금지법’은 민주노동당 권영국 대통령 후보만이 적극적으로 제정해야 한다고 했을 뿐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일 당시 ‘사회적 합의’가 안 되었다는 이유로 다시 ‘나중’의 과제로 미뤘다. 안 하겠다는 얘기로밖에 안 들렸다. 18년 동안 지긋지긋하게 들어온 말을 유력 후보에게 들어야 하니 참담한 심정이었다. 지난 2022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67.2%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동의했다. 세명 중에 두명이 찬성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미 오래전에 사회적 합의는 끝난 것이 아닌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활동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아서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안을 발표했다. 그렇지만 그 법안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한 시안에 있었던 ‘병력, 출신 국가, 언어, 가족형태 또는 가족사항, 범죄 및 보호처분의 전력, 성적 지향, 학력’ 등 주요 차별금지 사유가 삭제되어 있었다. 법무부의 이 법안에 당연히 인권단체들은 반대했다. 이를 계기로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전신인 ‘반차별공동행동’이 출범하였다. 그러다가 2013년에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했던 김한길, 최원식 의원이 보수 기독교계의 반대를 이유로 법안을 철회하였다. 19대 국회 때의 일이었다. 이런 법안 철회는 보수 기독교계에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이로부터 혐오세력의 힘이 커지기 시작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휴지기를 보내다가 2017년 3월22일 100여개 단체가 참여하면서 재출범했다. ‘박근혜 퇴진 투쟁’의 성과로 박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여 물러난 뒤였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10만 국민동의청원, 전국으로 가는 ‘평등버스’, 부산에서 서울까지 30일간의 도보 행진, 미류·이종걸 인권활동가의 장기간 단식농성, 각종 토론회, 간담회 등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이런 활동으로 전국 15곳에서 지역별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만들어졌다.



21대 국회에서는 차별금지법안 발의가 가장 활발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평등법안을 권고했고, 정의당의 장혜영 의원, 더불어민주당의 이상민·박주민·권인숙 의원이 각각 법안을 발의했다. 한차례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소위에서 공청회가 이뤄지기는 했지만, 더 이상 나아가지는 못한 채 21대 국회가 종료되었다. 22대 국회에 들어와서는 아직 법안 발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역구 의원들은 지역의 교회를 많이 의식했다. 그만큼 혐오세력의 조직적인 압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나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로 2021년 5월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로 국토종주를 하면서 자전거에 ‘차별금지법 제정 국민동의청원’ 깃발을 달았다. 노오란 금계국 꽃이 낙동강 칠백리 길을 달려가는 내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자전거 종주 마지막 날은 5월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 12주기 추모 행사가 열렸다. 같이 갔던 친구가 “노무현 대통령이 스카이(SKY) 못 나왔다고 엄청 무시당했지”라고 말했다. 대통령조차 학력 차별을 당하는 나라에서 “강남역 살인사건도, 구의역 김군 사건도 모두 5월에 일어났다. …어디 여성과 비정규직 노동자들뿐인가. 자신들이 당하는 차별을 어디에 호소도 못 하고 사라지거나 숨어버리는 수많은 존재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라고 연재 중인 언론사 칼럼에 썼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뒤로 미룰 일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었다.



10여년 전에 경희대학교에서 인권 수업을 할 때 학생들에게 물었다. “차별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아무도 손드는 사람이 없었다. 30명의 학생들이 누구도 차별을 당하지 않았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차별에 관해 설명했다. ‘직접 차별, 간접 차별, 괴롭힘, 성희롱 등’과 같은 차별을 설명하니, 그제야 학생들이 자신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지방 출신이라는 이유로, 가난하다는 이유로 억울했다는 얘기들을 풀어냈다. 그 학기가 끝났을 때 한 학생이 메일을 보내왔다. “교수님 덕분에 학교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대학에서 교수와 시간강사의 차별이 엄연한데도 학생들은 내게 교수라고 불렀다. 그 학생은 성소수자였다. 수업 시간에 손들고 성소수자로 겪은 차별을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못했다고, 성소수자를 긍정하는 교수님이 있어서 고마웠다는 메일이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인 필자가 지난 2021년 5월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로 국토종주를 했다. 자전거에 ‘차별금지법 제정 국민동의청원’ 깃발을 달고 금계국이 핀 낙동강 칠백리 길을 달렸다. 필자 제공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인 필자가 지난 2021년 5월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로 국토종주를 했다. 자전거에 ‘차별금지법 제정 국민동의청원’ 깃발을 달고 금계국이 핀 낙동강 칠백리 길을 달렸다. 필자 제공






차별에서, 혐오로, 증오범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이지만, 시민들의 차별에 대한 감수성은 한결 높아졌다. 지난번 탄핵 광장에서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이곳에 선 우리가 누군가를 향해 여자라는 이유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질병을 겪고 있다는 이유로 … 차별하거나, 혐오해서는 안 된다”고 약속했다.(비상행동, ‘평등하고 민주적인 집회를 위한 모두의 약속’ 중에서)



유엔 인권조약기구 위원회들에서는 2007년부터 인종차별철폐위원회, 사회권규약위원회,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아동권리위원회, 자유권위원회, 장애인권리위원회 등에서 정부 보고서를 심의할 때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했다. 벌써 14차례 권고를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유엔 인권이사회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 검토(UPR) 때도 벌써 4차례나 권고를 받았다. 대형교회 목사들이나 혐오세력이 주장하는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이유는 모두 인권에 반하는 것들이다.



혐오는 차별에서 나온다. 사회적 편견은 혐오표현을 낳고, 차별로 발전하고, 증오범죄와 집단학살로까지 이어진다. 지금 우리 사회는 혐오표현과 차별이 만연한 사회다. 이를 방치한다는 것은 혐오세력에 사회를 파괴할 기회를 만들어준다는 말과 같다. 혐오표현, 차별 인식을 높여줄 기준을 정해주는 법이 차별금지법이다.



광장에서는 ‘윤석열 없는 나라’와 함께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라고 쓴 깃발과 손팻말을 든 청년들이 많았다. 이제 탄핵광장의 힘으로 새 정부가 들어섰다. 새 정부는 내란을 종식하고 민주주의를 정착시켜야 한다. 마침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새 정부 국정과제로 차별금지법을 요구하는 1만인 서명을 받고 있다(https://equalityact.kr/2025gov/). ‘새로운 민주주의는 차별금지법과 함께’여야 한다.







박래군 | 36년째 인권운동가로 살고 있다. 유가협, 인권운동사랑방, 인권재단 사람을 거쳐서 현재는 4·16재단 운영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 ‘상처는 언젠가 말을 한다’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 ‘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 공저서 ‘이따위 불평등’ ‘새로고침’ ‘살아남은 아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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