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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팝만? J-콘텐츠의 진격…반일 뛰어넘은 ‘취향의 발견’

헤럴드경제 고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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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팝부터 연극, 실험적 뮤지션까지
‘취향 존중’ 시대, 확대한 소수 취향
K-컬처와 차별성…다양성의 확장
‘눈의 꽃’을 부른 J-팝 가수 나카시마 미카 [유진 엔터테인먼트 제공]

‘눈의 꽃’을 부른 J-팝 가수 나카시마 미카 [유진 엔터테인먼트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僕が死のうと思ったのは)’, 이 곡이 내 최애곡. 나 감동받아서 커버할지도 몰라.”

지난달 데뷔 24년 만에 한국에서 첫 내한 공연을 연 나카시마 미카의 공연을 관람한 K-팝 그룹 더보이즈 멤버 주학년이 최근 팬들과의 소통 플랫폼인 버블에 남긴 글이다. 나카시마 미카는 한국에선 박효신이 다시 부른 ‘눈의 꽃’으로 알려진 가수로, 이 곡이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 삽입되며 유명세를 탔다. 최근 열린 나카시마 미카의 공연에는 20여 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7500여 관객이 기립해 떼창을 하며 그의 여전한 인기를 확인했다.

#2. “일본 토요오카연극제에서 지금의 한국 정서와 시대상을 반영해 ‘S고원에서’를 올리자고 하더라고요.”

이달 말까지 이어지고 있는 서울연극제에선 일본의 연극 거장 히라타 오리자의 ‘S고원에서’를 초청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히라타 오리자는 일본의 한국 식민 통치를 비판적으로 그린 ‘서울시민’ 시리즈로 프랑스 연극계에서 반향을 일으키며 슈발리에 훈장을 받은 연출가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죽음의 시선을 담백하게 담아낸다.

그 어느 때보다 한국 문화계 전반에서 J-웨이브가 요동친다. 이미 국내 음악 시장 한쪽에 ‘J-팝 존(ZONE)’이 생겼고, 이에 힘입어 다양한 일본 음악과 인디 뮤지션이 한국에 상륙 중이다. 일본 연극 거장의 작품이 무대에 오르고, 일본 뮤지컬과 희곡도 한국 배우들을 통해 관객과 만난다.

최근 한국을 찾은 토호 엔터테인먼트의 야마자키 나호코 경영기획부 부장은 “애니메이션의 인기는 알고 있었지만 한국에서 J-팝과 인디 음악, 일본 공연까지 수요가 있는 줄은 몰랐다”며 “최근의 현상에 정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토호 엔터테인먼트는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 ‘너의 이름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명탐정 코난 시리즈’ 등의 배급사이자, ‘고질라’, ‘라돈’과 같은 메가 지적재산권(IP)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회사다.


요아소비 내한 콘서트 [리벳(LIVET), Kato Shumpei(카토 슘페이) 제공]

요아소비 내한 콘서트 [리벳(LIVET), Kato Shumpei(카토 슘페이) 제공]



실제로 올 상반기 한국 공연계는 일본 콘텐츠가 홍수를 이뤘다. 일본의 대세 싱어송라이터 아이묭(4월 19~20일, 킨텍스 공연), 요네즈 켄시(5월 22~23일, 인스파이어 아레나)가 한국을 찾았다. 유우리(5월 3~4일)는 일본 솔로 가수로는 아무로 나미에 이후 21년 만애 ‘K-팝 성지’인 KSPO 돔에 입성했다.

K-팝이 주류로 자리한 한국 음악시장에 J-팝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불과 2~3년 전의 일이다.

시작은 일본의 젠지(Gen-Z) 스타 이마세였다. 2022년 자작곡 ‘나이트 댄서’로 그 해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서 조회수 12억회를 기록하며, 멜론 톱100 차트 상위권에도 입성했다. K-팝은 물론 전 세계 팝 음악계의 성공 공식을 고스란히 따라온 이마세가 K-팝이 장악한 한국 차트에 이름을 올리며 이상 기운이 감지되기 시작한 것이다. 순위 변동이 적은 콘크리트 차트이자 팝 음악조차 진입이 어려운 멜론에 J-팝이 안착한 것은 일대 사건이었다.


일본 문화에 정통한 김성환 대중음악평론가는 “지난 몇 년 사이 일본의 젊은 음악인들 사이에서 내수 시장을 벗어나 해외 진출에 대한 갈증이 커지던 차에 유튜브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음악을 알리고 접할 수 있는 통로가 많아지며 가까운 한국을 중심으로 공략하기 시작한 것이 성취를 거두고 있다”고 봤다.

흐름은 음악계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다. 수면 아래 잠들어 있던 J-컬처에 대한 ‘소수 취향’이 팬데믹 이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애니메이션이 끌어올린 ‘취향의 발견’이다.

2021년 신카이 마코토의 영화 ‘너의 이름은’(관객 수 380만 명), 2022년 ‘스즈메의 문단속’(550만 명), 2023년 ‘더 퍼스트 슬랭덩크’(482만 명) 등이 지난 몇 년 사이 영화계에 파란을 일으키며 재패니메이션의 인기를 증명했다. 동시에 넷플릭스를 통해 ‘주술회전’, ‘귀멸의 칼날’, ‘체인소맨’ 등 애니메이션이 사랑받았고, 애니메이션의 배경 음악(OST)를 부른 가수와 밴드 인기로 이어졌다. ‘최애의 아이’ OST를 부른 일본 밴드 요아소비가 대표적이다.


J-컬처에 열광하는 세대의 구성은 10~50대 사이에서 흥미로운 분포를 보인다. 한일 관계의 정치적 지형 변화에 따라 J-컬처를 주로 향유하는 세대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일본 문화의 홍수를 누린 세대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소비 행태를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1990년대 한일 관계가 원만할 당시 일본 문화의 세례를 받은 현재의 30~40대, 더 넓게는 50대까지 흐름이 이어진다. 또 한 축은 2020년대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과 함께 성장 중인 10대~20대 초반까지의 세대가 해당 분야의 J-콘텐츠를 적극 소비한다.

김성환 평론가는 “일본 문화가 개방된 시점부터 현지 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비록 소수일지라도 늘 존재했다”며 “다만 일본 문화에 관한 관심이 지속적이지 않아 각 시대별, 세대별로 자신이 좋아한 J-팝이 모두 다르고, 어떤 경우에는 같은 J-컬처를 소비하나 서로가 좋아하는 음악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K-팝 밴드 QWER [타마고 프로덕션 제공]

K-팝 밴드 QWER [타마고 프로덕션 제공]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개봉했을 당시 연령별 예매 분포(CGV 기준)를 살펴보면 20대 18.7%, 30대 38.6%, 40대 31.8%다. 즉 30∼40대가 70.4%로 압도적이었다. 반면 영화 ‘귀멸의 칼날’은 10대 관객이 11%, 20대 관객이 54%에 달했다. 영화 ‘오늘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역시 10~20세대 관객이 47%다.

J-콘텐츠 중 자발적으로 확산해 가장 인기를 얻고 있는 장르는 J-팝이다. 1020 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는 J-팝은 애니메이션과 광고음악 형태로 유입돼 가수와 밴드 중심으로 옮겨가는 모습을 보인다.

김성환 평론가는 “각 세대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다를지라도 J-컬처에 발을 들이는 매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며 “현재의 10~20대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언어에 대한 문화적 장벽을 허물어 일본 노래까지 적극적으로 소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2023년 첫 내한 당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요아소비는 “일본어로 된 곡인데도 앨범 수록곡까지 떼창으로 따라해줘 너무나 기뻤다”고 말했다.

J-팝의 인기가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 가져온 긍정적 영향은 ‘다양성’이다. ‘개인 취향’ 존중을 앞세우는 Z세대를 중심으로 ‘자기만의 콘텐츠’를 찾으려는 음악 청취자를 공략해 K-팝 안에서도 장르 확산이 이뤄지고 있다. 천편일률적이었던 K-팝 업계에 J-밴드 스타일을 버무린 QWER, 아이들의 ‘나는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와 같은 노래가 등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공연계에서도 다양한 J-콘텐츠를 발굴하고 있다. 일본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OST를 작업한 이시바시 에이코도 최근 한국(6월 5일, 스카이아트홀)을 찾았다.

이번 내한공연을 추진한 김영혁 김밥레코즈 대표는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 보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장르를 만들어가는 뮤지션”이라며 “록, 포크, 일렉트로닉, 재즈 등 안 하는 장르가 없고, 플루트 건반 드럼 등 다루지 못하는 악기가 없다. J-팝 열풍과 무관하게 폭넓은 음악을 하는 일본 아티스트가 있다는 것을 소개하며 음악적 다양성 확산에 기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시바시 에이코 [김밥레코즈 제공]

이시바시 에이코 [김밥레코즈 제공]



한일 간 문화 교류도 예전보다 활발해졌다. 연극 ‘S고원에서’를 비롯해 일본 현대희곡 ‘타인’(6월 26일~7월 6일까지, 대학로 나온씨어터)도 무대에 오른다. 일본 문학계 최고 신인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여성 작가 이치카와 사오가 쓴 ‘헌치백’은 신유청 연출가, 극작가 김도영과 번역가 김진숙의 공동 각본 작업을 통해 연극(6월 12~15일, 국립극장)으로 무대에 올라간다. 희귀병을 앓는 중증 장애인의 성(性)에 대한 솔직한 갈망을 그린 작품이다.

변영후 서울연극협회 사무처장은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주최를 계기로 일본 연극은 꾸준히 한국에 소개되며 연극계와 관객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J-팝을 필두로 한 J-컬처에 대한 관심은 ‘소수의 취향’이 다수의 취향으로 확장할 수 있고, 서브 컬처가 틈새시장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나의 취향’은 남들과는 다르다는 차별성을 갖고 새로운 콘텐츠를 찾는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했다. 특히나 이들 세대는 이전의 반일, 혐일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문화적 취향으로 J-콘텐츠를 즐긴다.

변영후 사무처장은 “일본의 문화예술 콘텐츠에 관한 젊은 관객들의 관심과 지식이 상당하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처럼 잔잔한 일상적 표현을 담은 연극들을 한국의 젊은 관객들이 선호해 소구할 수 있는 지점이 많다고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환 평론가는 “K-팝이 대세로 자리한 음악 시장에서 J-팝은 기존 K-팝으로는 채울 수 없는 싱어송라이터나 밴드음악, 다양한 장르라는 음악적 요소는 물론 ‘오덕(특정한 취미나 관심사에 깊이 몰두하는 사람)스러움’까지 채워주고 있다”며 “굳이 홍대 인디신에 파고들지 않아도 인터넷을 통해 만날 수 있는 J-팝이 10~20대 사이에서 새로운 선택지, 별미 같은 문화로 자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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