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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말고, K독재자를 기억하라 [세계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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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25일 오후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로 열린 퇴진 촉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내란 피의자 윤석열 전 대통령을 히틀러처럼 풍자한 천을 두르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지난 1월25일 오후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로 열린 퇴진 촉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내란 피의자 윤석열 전 대통령을 히틀러처럼 풍자한 천을 두르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하네스 모슬러(강미노) |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 정치학과 교수





제21대 대통령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도 극단적인 네거티브 캠페인이 중심이 된 선거였다. 한국 정치에서 상대에 대한 비방과 음해가 정책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지만, 윤석열 정권 3년간의 권위주의적 통치와 막판 친위 쿠데타 이후, 정치적 적대는 전례 없는 수준으로 격화했다. 그중 여야를 막론하고 히틀러를 끌어낸 것이 뜻밖이었다.



대표적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자, 진보 진영은 시위 현장, 온라인, 언론에서 1930~40년대 히틀러와 나치의 폭력적 권력 장악을 연상시킨다고 주장했다. 유사한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굳이 먼 옛날 독일까지 끌어왔다. 더 놀라운 건 극우보수가 같은 수사를 썼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에서 연달아 윤 전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키자,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 권성동은 이를 히틀러의 독재와 동일시했다. 또 윤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대선 출마를 선언한 나경원 의원은 민주당이 나치 히틀러식 다수결 독재를 일삼는다고 주장했고, 출마를 선언한 홍준표 대구시장도 같은 논리로 이재명 당선을 막아야 한다며 히틀러를 언급했다. 그뿐만 아니라, 극우 성향의 세이브코리아 소속 손현보 목사, 전한길 같은 극우 운동가도 비슷한 히틀러 논조를 꺼내 들었다.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로 가까스로 선출된 김문수도 이재명 후보가 히틀러보다 더하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는데, 정작 그 자신은 당내에서 한덕수를 내세워 후보를 교체하려는 정리 시도의 대상이 된 직후였다. 이에 민주당 김민석 의원은 국민의힘이야말로 히틀러식 정치를 한다고 맞서 희비극적 지경에 이르렀다.



이처럼 히틀러는 여야 모두에 정치적 무기가 됐다. 이유는 간단하다. 히틀러는 유대인 학살과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20세기 최악의 독재자다. 그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만으로 상대에게 치명적인 낙인을 찍을 수 있다. 하지만 극우보수의 히틀러 비유는 오히려 왜곡된 역사 인식을 드러내는 계기일 뿐이다. 자꾸만 머나먼 독일의 히틀러를 등판시키는 것은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한국 내부의 독재 유산을 망각하도록 만든다. 또한 히틀러라는 낙인을 남발하여 민주주의를 파괴한 내란 행위의 심각성을 희석할 위험이 있다.



사실 한국에서 독재의 위험을 경고하고자 한다면, 굳이 외국의 예를 들 필요도 없다. 국산 ‘케이(K)독재자’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다섯번이나 비상권을 악용한 계엄의 아버지 이승만을 비롯해 박정희는 4번, 전두환은 2번 헌법을 어겨 국가긴급권을 남발하는 등 국민을 배반한 전과가 있다.



하지만 극우보수는 이들과의 단절은커녕 오히려 계승하고 찬양해왔다. 국민의힘 당사에는 여전히 박정희와 이승만의 초상화가 걸려 있으며, 이들의 과실은 눈감은 채 ‘건국의 아버지’ ‘근대화의 영웅’이라 부른다. 이러한 역사 왜곡과 미화는 윤석열 같은 인물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조건을 만들었고, 그의 명백한 헌정 파괴조차 비판받지 않게 만들었다. 이는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왼쪽 눈을 감은 정치적 신념의 결과이며 대선 때 유권자의 40% 이상이 극우 성향의 김문수 후보를 여전히 지지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에 뼈아픈 경고와 반면교사가 되어야 한다. 많은 국민은 이 정부가 한국을 더 나은 미래로 이끌기를 기대하고 있다. 더 강한 경제, 더 따듯한 복지국가, 그리고 무엇보다 진짜 자유민주주의로. 그러니 이재명 정부가 향후 권력의 유혹에 휘말려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망각하게 된다면, 독일 나치의 기억보다 훨씬 더 와닿을 한국의 독재자들을 들어 경종을 울리는 게 좋겠다. 한쪽 눈을 감지 말고 두 눈을 크게 뜨고 진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향해 나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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