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6월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무총리 후보자 등 인선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종석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이재명 대통령,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황인권 대통령경호처장.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불황과 일전을 치른다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티에프(TF)를 곧바로 지금 즉시 가동하겠습니다.”
2025년 6월4일 이재명 대통령의 ‘국민주권정부’가 출범했다. 이 대통령은 국회 취임사에서 ‘곧바로’ ‘즉시’ 등을 언급하며 ‘실용 정부’로의 빠른 돌입을 표방했다. 취임선서 수준으로 취임식을 간소화했고, 야당 대표들과 오찬을 마친 뒤 곧바로 용산 집무실로 향했다. 첫 행정명령으로 ‘비상경제대응TF’ 구성을 지시해 저녁 7시30분부터 밤 9시50분까지 용산 대통령실에서 TF 회의를 주재했다.
이날 발표된 첫 인사도 이러한 빠른 실무 장악 분위기를 반영했다. 대선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친명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의원(4선), 강훈식 의원(3선), 강유정 의원(비례·초선)이 각각 국무총리 후보자, 대통령비서실장, 대통령실 대변인에 지명됐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없는 만큼 대통령의 의중을 알고 곧바로 일에 투입할 수 있는 인물을 발탁한 것으로 보인다. ‘자기 정치’를 하는 정치적 2인자보다 실무형을 선호하는 인사 스타일이 이번에도 반영됐다는 해석이 있다.
실무형 선호하는 ‘실용 인사’
이 대통령은 취임 첫날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인선을 직접 발표하면서 ‘국민에 대한 충직함과 유능함을 둘 다 갖춘 인사’가 인선 기준이라고 밝혔다. 대선 과정에서 ‘이념을 가리지 않는 통합’을 강조해 애초 통합형 총리가 나올 것이란 예상도 있었으나 빗나갔다. 내치를 총괄하는 책임자 이미지에 가깝던 문재인 정부의 이낙연·정세균·김부겸 전 총리 등과도 결이 다르다.
계엄사태를 가장 먼저 예견해 주목받았던 김민석 총리 후보자는 당 수석최고위원을 지낸 이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을 빠르게 파악하고 내각을 통할해 국정과제 이행을 주도할 인물로 평가된다.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맡았던 운동권 출신으로, 1996년 최연소 국회의원(32살)으로 당선되는 등 주목받았으나 서울시장 선거 패배, 정몽준 국민통합21 대선 후보 캠프 합류, 불법 정치자금 유죄 판결 등으로 부침을 겪다 제21대 총선에서 당선되며 재기에 성공했다.
이번 대선에서 경선 캠프 총괄본부장과 선거대책위원회 종합상황실장을 맡았던 강훈식 의원은 첫 1970년대생 비서실장이다. 계파색이 옅은 강 비서실장에 대해 이 대통령은 “대통령실을 젊고 역동적인 공간으로 바꿀 적임자로 판단했다. 참모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고 치열하게 일하는 현장형 참모”라고 설명했다.
그 외 이 대통령을 오랜 시간 보좌한 성남시·경기도 참모들도 대통령실로 자리를 옮겼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1부속실장에 김남준 전 당대표 정무조정부실장이, 대통령실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총무비서관에는 김현지 전 보좌관이, 인사비서관에는 김용채 전 선임비서관이, 의전비서관에는 권혁기 전 당대표 정무기획실장이 내정됐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김상호 공보특보단장은 춘추관장을, 이 대통령의 법률 참모이던 이태형 변호사는 민정비서관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원외 친명계 대표적 인물인 김남국 전 의원은 국민 디지털 소통 관련 업무를 다루는 비서관 직책에 내정됐다.
외교·안보 인사도 ‘실용’에 방점이 찍혔다. 풍부한 정책 경험이 있는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로, 외교관 출신인 위성락 민주당 의원이 국가안보실장으로 발탁됐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통해 글로벌 경제·안보환경 대전환의 위기를 국익 극대화의 기회로 만들겠다” “굳건한 한-미 동맹을 토대로 한·미·일 협력을 다지고 주변국 관계도 국익과 실용의 관점에서 접근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런 의지가 표명된 인사란 평가다.
‘현대 북한의 이해’ 저자이기도 한 이종석 전 장관은 1980년대부터 북한을 연구한 학자로, 조선노동당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94년부터 세종연구소에서 활동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햇볕정책’ 설계에 기여했고, 2022년 대선 때 이 대통령의 ‘국익중심 실용외교’ 전략을 짰다.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뒤 통일부 장관에서 물러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참여정부) 엔에스시(NSC·국가안전보장회의)를 책임지며 국정원의 정보 수집 능력을 강화하고 정보 전달 체계를 혁신한 그 경험으로 통상 파고 속 국익을 지켜낼 적임자”라고 말했고, 대통령실 인선 보도자료는 이 후보자에 대해 “경색돼 있는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열 전략을 펼칠 인사”라고 설명했다. 2023년 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상황에서, 완전히 단절된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
‘공약 이행’ 책임자에 이한주 거론
국가안보실장에 임명된 위성락 의원은 북핵 협상과 4강(미국·중국·일본·러시아) 외교 경험을 두루 갖춘 전문가다. 외교부 북미국장,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주러시아 대사 등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관계에 두루 정통한 전략가란 평가를 받는다. 2024년 5월 총선에서 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고, 민주당 동북아평화협력특별위원회에서 위원장을 맡아왔다. 박원곤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장은 “굳건한 한-미 동맹을 기본으로 정책적 대외관계를 쌓고, 남북관계나 중-러 관계도 확장하겠다”는 의지로 이번 인사를 해석했다. 전 외교안보 라인 고위직 관료도 “위성락 의원은 외교 관료 출신이기 때문에 기존 외교 문법에 충실하면서도 균형감각이 있는 신중한 스타일이고, 이종석 전 장관은 노무현 정부 NSC 사무처장과 통일부 장관을 역임해 경험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북-중 접경 지역에 정례적으로 다니며 연구자로서 정보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재명 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가 없는 상황에서 공약 이행 계획을 짜기 위해 인수위와 유사한 조직인 국정기획위원회를 출범시키기로 했다. 이 대통령 최측근인 이한주 민주연구원장이 위원장으로 임명돼 정부 조직 개편과 국정 과제 정리를 맡는다. 이 원장은 가천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으로 시민사회운동을 하면서 이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고, 40여 년간 ‘정책 멘토’ 역할을 해왔다.
이 원장은 이 대통령 취임 당일 언론 인터뷰에서 빠른 공약 추진 의지를 드러냈다. 6월4일 엠비엔(MBN) ‘직격 인터뷰’에 출연해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규모와 관련해선 “지난번 추경에서 14조원 수준으로 확정됐기 때문에, 새로운 추경은 20조원을 기준으로 해서 판단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가 2025년 5월 13조8천억원 규모로 1차 추경을 편성한 상황에서, 2차 추경은 이에 약 20조원을 더해 총 추경 규모를 35조원가량으로 만들겠다는 의미다. 지역화폐 예산도 여기에 포함된다. 대선 기간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도 “30조원 추경”을 이야기한 만큼 그 필요성에는 여야가 공감한 상태이나, 세수 기반이 줄어든 상황에서 국채 발행이 불가피해 여야 갈등이 예상된다.
이 원장은 또 6월4일 문화방송(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는 ‘노란봉투법’ 등 윤석열 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던 법안들을 다시 추진할 것이냐는 질문에 “바로 할 것”이라고 답했다.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과 양곡법 등 법안들을 재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여야 갈등이 불가피하다.
김용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025년 6월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취임 기념 오찬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취임 직후 야당 대표들과 오찬하며 ‘통합’ 행보
국민의힘도 대선 과정에서 약속했던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 등 공통 공약들은 여야 의견을 모아 우선 과제로 처리할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취임식 직후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국회의장·야당 대표들과의 오찬에서 “개혁신당 천하람 대표도, 국민의힘 김용태 대표도 제가 잘 모시도록 하겠다.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타협할 것은 타협해 가급적 모두가 동의하는 정책”을 추진하자고 이야기했다. 이 대통령은 임기 이틀째인 6월5일 윤석열 정부 장관들과의 첫 국무회의에서도 “우리는 다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업무를 하는 대리인들”이라며 “우리 좀 웃으며 하자”고 말했다.
그러나 취임 첫날 두 장면에서 통합 여정이 쉽지 않은 분위기도 감지됐다. 이 대통령이 ‘모두의 대통령’을 강조한 취임선서 직후 오찬 자리에서 김용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여당이 (6월6일) 본회의에서 처리하려는 공직선거법·법원조직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은 매우 심각히 우려된다”고 말했다. 6월18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파기환송심 첫 공판을 앞두고 민주당이 사법부를 압박하는 것으로 보고 비판한 것이다. 민주당은 이날 ‘대법관 증원법’인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에서 통과시켰다. 1년에 4명씩 4년간 증원해 대법관 수를 현재 14명에서 30명으로 늘리는 안이다. 민주당은 애초 사법개혁 공약으로 국민의 상고심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대법관 증원’을 이야기했으나 시점상 사법부 압박 행보로 해석되고 있다.
취임선서 직후 곧장 향한 용산 집무실에서도 갈등이 드러났다. 이 대통령은 첫 인선 발표 브리핑에서 “지금 용산 사무실로 왔는데, 꼭 무덤 같다. 아무도 없다. 필기도구 제공해줄 직원도 없고, 컴퓨터도 없고 프린터도 없고 황당무계하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은 “취임식 첫날 대통령실은 물리적인 업무 불능 상태”라며 “업무 및 인적 인수인계는커녕 사용 가능한 인터넷망과 종이, 연필조차 책상 위에 놓여 있지 않았다”고 대통령실 상황을 설명했다. 여권에선 업무 인수인계에 필요한 자료까지 의도적으로 없앤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비롯한 국무위원 전원이 취임 첫날인 6월4일 사임 의사를 표하자, 국정 안정을 위해 박성재 법무부 장관을 제외한 나머지 국무위원의 사의는 반려했다. 이후 6월5일에는 용산 대통령실에서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내각 현안 파악에 착수했다.
이에 더해 ‘내란 종식’에 대한 진영 간 관점도 극명하게 갈린다. 보수 진영에선 윤석열 탄핵, 수사와 재판 등으로 내란은 종식됐다고 보는 한편, 진보 진영에선 탄핵에 반대한 세력이 국민의힘 안에 여전하고, 국민의힘이 극우 유튜버 등에 계속 길을 열어주는 한 내란은 끝나지 않았다고 본다.
“양 진영 모두 동의하는 정책 발굴해야”
실질적 통합은 어떻게 해나가야 할까. 비이재명계 민주당 인사는 “첫 인사에서 비명은 보이지 않는다. 대선 기간에 합리적 보수와도 함께 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만큼 인사로 통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실질적 통합은 ‘상대 후보를 찍은 국민으로부터도 박수를 받을 수 있는 어젠다’를 포용하는 것”이라며 “예를 들면 기초연금 정책은 복지를 이야기하는 진보 진영과 고령층 유권자를 신경 쓰는 보수 진영이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정책이었다. 이런 정책을 발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차재권 국립부경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전 정부에도 국민 대통합을 위한 조직이 있었지만 형식적이었다. 사실상 정책 기능을 갖고 있는 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혹은 그 이상의 위상으로 두고 정책을 만들어나가는 것과, 독일 등이 하는 것처럼 차별적인 정치적 혐오발언과 정치보복을 금지하는 내용을 포괄적으로 담은 법률을 제정하는 것도 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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