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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제조 2025’ 10년, 볼펜심에서 시작해 첨단산업 내재화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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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제조 2025’를 선포한 지 10년 만에 중국은 첨단산업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도약을 했다. 2025년 4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모터쇼에서 관람객들이 중국 전기차 기업 비야디(BYD)의 전시 공간을 둘러보고 있다. REUTERS

‘중국제조 2025’를 선포한 지 10년 만에 중국은 첨단산업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도약을 했다. 2025년 4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모터쇼에서 관람객들이 중국 전기차 기업 비야디(BYD)의 전시 공간을 둘러보고 있다.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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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은 ‘중국제조 2025’의 마지막 해이자, 중국의 5개년 경제발전 전략인 제14차 5개년 규획(2021~2025)이 끝나는 해다. 중국 국무원은 2015년 5월 ‘중국제조 2025’를 공식 선포했다. 중국 제조업 업그레이드 청사진인 이 전략은 ‘제조대국’ 중국을 ‘제조강국’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게 뼈대다.



제조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이 야심 찬 국가 전략은 사실 ‘볼펜심 사건’을 계기로 불붙었다. “항공모함도 만들고 우주선도 쏘아 올리는 중국이 왜 볼펜심 하나 못 만드느냐?” 당시 총리인 리커창은 2016년 1월 석탄·철강산업 좌담회에서 세계 철강대국인 중국이 정작 볼펜심에 들어가는 0.5㎜ 스테인리스 강구슬을 자체 생산하지 못한다고 한탄했다.



철강은 공급과잉인데도 중국은 볼펜심 자체 생산 기술이 없어 매년 볼펜심용 스테인리스 강선을 수입해야 했다. 리 총리가 던진 이 질문은 중국 전역에 큰 충격을 줬는데 ‘볼펜심 굴욕’이라 불리기까지 했다.





크지만 강하지 못했던 중국 제조업





당시 중국은 3천 개 볼펜 제조 기업이 매년 400억 개의 볼펜을 생산해 전세계 공급량의 80%를 차지했다. 그러나 핵심 기술인 볼펜심의 90%는 수입했다. 볼펜 1개의 평균 수출 단가는 0.03달러였으나, 미국 유명 메이커는 이 볼펜을 10달러 넘는 가격으로 팔았다.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제품을 생산할수록 돈을 버는 것은 중국 기업이 아니라 기술과 지식재산권을 가진 외국 기업이었다.



리 총리의 질책 이후 중국 철강업계는 총력 체제로 볼펜심 개발에 매달렸고 결국 100% 중국산 볼펜을 내놓는 데 성공했다. 이 상징적인 사례는 ‘크지만 강하지 못하다’(大而不强)는 중국 제조업의 현실, 즉 취약한 기초기술 역량을 드러냈고 ‘기술 자립’이라는 국가 차원의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다.



중국 정부는 제조강국이 되기 위해 3단계 전략을 내놨다. 1단계는 2025년까지 핵심 소재·부품 70%를 자급자족하고, 2단계는 2035년에 독일·일본을 앞지르며, 3단계는 신중국 건국 100주년인 2049년에 맞춰 미국을 추월해 세계 최강국이 되겠다는 청사진이다. ‘중국제조 2025’는 첫 번째 단계에 해당한다.



이는 단순한 산업 진흥책이 아니라 제조강국을 넘어 첨단기술 강국으로 가기 위한 전략이다. 독일의 ‘인더스트리 4.0’ 전략을 벤치마킹한 전략으로, 기술 자립과 산업구조 전환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해양 공정장비 및 하이테크 선박, 항공우주, 반도체·정보통신, 친환경차, 전력장비, 첨단철도, 신소재, 의료 바이오 및 하이테크 의료기기, 농기계, 로봇 등 10대 전략 육성 산업을 선정하고 핵심 기술의 국산화율을 2025년까지 7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목표를 세웠다.



10년이 흐른 지금, 미·중 기술 패권 구도 속에 ‘중국제조 2025’ 성과는 뚜렷하다. 조선업은 중국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분야로 성장했다. 2024년 중국 기업의 선박 수주량은 사상 최대 기록을 세우며 전세계 수주량의 70%를 차지했다.



전기차 제조기업 비야디(BYD)는 2023년 기준으로 글로벌 판매량 300만 대를 넘어서며 세계 최대 자동차 기업으로 도약했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 업체인 에스엔이(SNE)리서치에 따르면 2023년 기준으로 닝더스다이(CATL)는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점유율 37%로 1위를 차지했다.



스마트폰 분야에서는 통신설비 기업 화웨이의 운영체제 ‘훙멍’(Harmony OS)이 중국 시장에서 이미 미국 애플의 ‘iOS’를 넘어섰다. 2025년 1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딥시크의 가성비 인공지능(AI) 모델은 중국 신흥 테크 기업의 저력을 보여준다. 이 밖에 디스플레이(BOE), 드론(DJI)을 비롯해 고속철도, 우주개발 등 분야에서도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했다.



반도체 분야도 빼놓을 수 없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2014년 14%에서 2023년 23%로 상승했으며, 2027년에는 27%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신궈지(SMIC),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등이 약진하고 있으며, 특히 YMTC의 제조설비 65%와 반도체 재료 85%는 모두 중국산이다. 중국 정부는 2024년부터 3년간 3천억위안(약 60조원) 규모의 반도체 산업지원 펀드를 조성하며 강력한 정책 지원에 나섰다.



‘중국제조 2025’에 화려한 성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고정밀 장비 등 핵심부품의 국외 의존도는 여전히 높다. 또한 정부 주도의 투자로 일부 산업에서는 공급과잉과 부실기업이 나타나는 등 부작용도 있다. 그럼에도 중국이 국가 주도의 자립형 기술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는 점은 분명하다. 거대한 내수시장과 연구·개발 투자, 인재 유치 전략은 앞으로 중국이 글로벌 기술 질서에 더욱 깊숙이 개입할 것임을 예고한다.



‘중국제조 2025’ 추진에 대한 미국의 우려가 급격히 고조되면서 중국의 기술 굴기는 미국이 본격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도화선이 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1기 시절에 미국은 화웨이, 중싱통신(ZTE) 등 중국 기술기업을 제재하고 반도체 장비와 소프트웨어 수출을 제한했다. 2018년부터 본격화된 미-중 무역전쟁은 중국산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며 격화됐다. 2025년 현재,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한층 강화된 대중국 억제 정책을 내놓고 있다. 미국은 첨단기술의 대중국 수출을 사실상 차단하고 있다.





스마트제조 2025





2025년 3월 중국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살펴보면, 중국 정부는 미-중 디커플링(탈동조화) 준비를 위해 수입 제품을 자국산으로 대체하며 산업 내재화에 더욱 힘을 쏟고 있다. 특히 이번 양회의 핵심어는 ‘과학기술 혁신’이다. 정부 업무보고 자료를 보면 바이오, 양자 기술, 인공지능, 6세대 이동통신(6G) 등의 투자를 확대하고 제조업의 스마트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 국가 전략에 따라 스마트로봇도 가정과 공장에서 점점 보편화되고 있다.



‘중국제조 2025’ 추진에 대한 미국의 우려가 급격히 고조되면서 중국의 기술 굴기를 향한 미국의 견제가 본격화됐다. 미-중 무역 전쟁이 한창이던 2019년 6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일본 ‘오사카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만나 악수하고 있다. REUTERS

‘중국제조 2025’ 추진에 대한 미국의 우려가 급격히 고조되면서 중국의 기술 굴기를 향한 미국의 견제가 본격화됐다. 미-중 무역 전쟁이 한창이던 2019년 6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일본 ‘오사카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만나 악수하고 있다. REUTERS


이처럼 중국은 혁신에 중점을 두고 ‘미국 없는 중국 경제’의 산업구조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미-중 관세 전쟁을 계기로 제조업도 빠르게 국외로 이전하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 산업구조 전환은 생존과 직결된 전략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중국은 ‘중국제조 2025’의 한계를 극복하고 2035년 세계 최고 수준의 스마트제조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스마트제조 2025’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제조강국 건설전략(2021~2035)의 일환으로 기술 자립과 글로벌 표준 주도를 강조한다.



특히 인공지능, 빅데이터, 5세대 이동통신(5G) 기반의 전면적 디지털 전환을 꾀하고 있다. 즉, 전통 제조업을 자동화·디지털화하고 지능화하는 단계적 발전을 추진하는 것이다.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IoT) 기반의 스마트공장 구축, 디지털 산업단지 확산, 내수와 수출을 아우르는 복합제조 생태계 조성이 주요 뼈대다. 이는 미국 중심의 기술 블록화에 대응하는 ‘내순환 경제’와의 결합으로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중국제조 2025’는 단순한 산업정책이 아니라 산업과 기술의 국가 전략화가 어떤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볼펜심 하나에서 시작된 국가 전략이 10년 만에 전세계 공급망을 재편하고, 기술 패권 경쟁을 촉발하며, 중국 주도의 자체 공급망과 제조 패러다임을 만들어가고 있다.



중국 경제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대중국 사업도 전환기에 직면했다. 중국의 수출기지 역할은 더는 유효하지 않으며, 중국 내수시장 개척이 핵심 관건이 되고 있다. 상호보완적이던 한-중 경제 관계는 이제 경쟁 요소가 더 커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기업은 중국과의 협력과 경쟁을 병행해야 한다. 거대한 중국 내수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현지화 전략이 점점 중요해졌다.



최근 일본 자동차 기업과 중국 정보기술(IT) 기업의 협력 사례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도요타는 중국 전용 전기차를 생산하기 위해 화웨이 운영시스템(OS)을 탑재하기로 했다. 중국에서 자동차 전동화의 경쟁이 격렬한 상황에서 일본 기업은 중국의 첨단기술을 흡수해 중국 시장에서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의 위기와 기회





위협에는 기회가 함께 숨겨져 있기 마련이다. 앞으로 중국은 과학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며 관련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리라 예상된다. 이에 따라 부품 장비, 소재 등 한국 제품의 수요가 발생할 것이다. 중국 내 스마트제조 장비, 소재 수요가 증가할 것이며 중국과의 협력을 통한 제3국 시장 공동 진출도 기대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동남아시아 스마트공장 구축이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다.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는 글로벌 정세 속에 한국 기업이 생존하려면 단기 생존보다 중장기 기술 리더십 확보에 집중해야 한다. 중국과 미국의 협상을 면밀히 점검하며 새롭게 형성되는 시장의 기회를 매의 눈으로 찾아야 한다.



이제 우리도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만들고, 누구와 만들며, 어떻게 만들 것인가?” 기술 경쟁의 문제를 넘어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에 대해 정부와 기업이 한 팀이 되어 장기 비전과 전략적 리더십을 마련해야 할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김윤희 KOTRA 칭다오무역관 관장 alea@kotr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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