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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이에게 집이 있어야"... 저출생 뒷면 입양 겨눈 정보라의 SF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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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정보라 장편소설 '아이들의 집'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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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이에게 언제나 갈 곳이 있는 사회, 언제나 지낼 집이 있고 언제나 반갑게 맞이해주고 돌봐 주는 존재들이 있는 사회를 상상하고 싶었다."

정보라 작가가 그린 '아이들의 집'은 이런 모습이다. 우선 국립보육시설이다. 양육교사가 상주하며 아이를 돌본다. 아이의 식사와 돌봄, 교육은 아이의 집과 학교가 책임진다. 부모가 없어도, 부모가 다쳐도, 부모가 아파도, 부모가 가난해도, 부모가 신뢰할 수 없는 인격을 가졌거나 범죄자라도, 아이는 그런 부모와 상관없이 아이들의 집에서 자라면 된다. 시민은 누구나 한 달에 한 번씩 날을 정해 이곳에서 돌봄 의무를 다해야 한다. 돌봄을 받으며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은 모든 아이가 가진 고유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정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아이들의 집'은 "돌봄과 양육을 국가와 공동체가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상상의 사회"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공동육아가 현실이 된 근미래, 아이들의 집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됐던 어린이 '색종이'가 결국 숨진 채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정보라표 '현실 밀착형 SF, 사회비판적 호러'


공공임대주택의 주거 환경을 점검하는 조사관인 주인공 '무정형'은 우연찮게 색종이의 시신이 나온 현장을 조사했다는 이유로 사건에 휘말린다. 색종이의 집을 조사하다 싱크대 아래에서 사람 얼굴 모습의 귀신도 발견한다. 무정형은 친구이자 아이들의 집 양육교사인 '정사각형'과 함께 색종이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파헤친다.

정보라표 SF 스릴러의 핵심인 '귀신' '시체' '살인'이 다 나온다. 에두르지 않고 직진하는 속도감도 여전하다. 그의 작품 다수가 그렇듯 이번 소설도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썼다. 색종이 사망은 아동 학대 사망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친모는 색종이를 뇌에 전기 충격을 줘서 수학을 잘하게 만든다는 '뇌수학 기능 향상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클리닉에 보냈다고 털어놓는다. 효과가 없자 아이를 더 자주 클리닉에 데려가 점점 더 강한 전기 자극을 줬다. 뇌파 기계가 너무 아프다며 울먹이는 생전의 아이 모습이 담긴 영상이 퍼진다.

아동을 '전기 고문'한 클리닉의 배후에는 '기술과학의 발전을 지지하는 사람들'(기과발지)이라는 수상한 단체와 두 곳 모두와 연관된 종교단체가 있다. 기과발지는 인공 정자와 인공 난자를 인공 수정시킨 인공 자궁에서 아이를 출생시켰다고 주장하지만 이내 종교단체 교주의 아이라는 사실이 DNA 검사로 밝혀진다. 소설은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며, 현실밀착형 SF, 사회비판적 호러로 한발 더 나아간다.


아이들의 집·정보라 지음·열림원 발행·276쪽·1만7,000원

아이들의 집·정보라 지음·열림원 발행·276쪽·1만7,000원


"해외로 아이 떠넘기면서 저출생 걱정이라니"



정보라 작가. 한국일보 자료사진

정보라 작가. 한국일보 자료사진


해외 입양인 '표'와 '관'은 또 다른 이야기의 축이다. 표의 양부모는 희소병에 걸린 아이의 치료비를 감당 못 한 친부모가 입양을 보낸 것으로 들었지만 실은 거짓이었다. 게다가 국가가 아기를 책임지는 아이들의 집이 있는데 표의 친부모는 왜 표를 포기한 걸까. 아기가 희소병에 걸렸다는 거짓말을 해가면서. 의문투성이다. 자신을 낳고 버린 나라를 찾아간 표는 자신이 누군가에 의해 해외로 빼돌리듯 입양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정황상 "의도적인 유괴와 해외 입양이라는 이름의 아동 인신매매"가 의심되지만 어떤 제도도, 기관도 제대로 답해 주지 않는다. 남겨진 기록도 전무하다.

관도 5세 때 납치돼 입양됐다. 어머니가 병을 앓다 잠든 사이 혼자 집밖에 나와 거리를 배회하던 어린 관은 '어린 사람들의 행복을 지지하는 모임'이 운영하는 보호시설로 분리조치됐다. 어머니가 아동학대 혐의를 벗었을 때 관은 이미 해외 입양된 후였다. 이 사설 단체는 아동학대 피해 아동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가둬 놓고 머릿수대로 정부 지원금을 타냈다. 해외 입양은 수익률 좋은 비즈니스였다.

지금도 이뤄지고 있는 영유아 해외 입양 문제를 소설은 분명히 짚는다. 2011~2023년 행정안전부의 입양 통계에 따르면, 입양 아동이 발생한 사유는 미혼모(미혼부 포함)가 72.9%로 가장 많고, 유기 아동(23.6%), 이혼이나 부모 사망 등 가족 해체(3.5%) 순이었다. 정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부모가 결혼하지 않고 낳은 아기, 가족이 키울 수 없어 버린 아기는 국가에서 책임지지 않고 외국으로 넘겨 버리는 것"이라고 꼬집는다. "그럼에도 정부는 왜 자꾸 저출생을 걱정하며 아이를 낳으라는지 알 수 없다"면서.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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