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4일 국회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
박록삼 | 언론인
불확실과 조바심 속 대혼동의 여섯달이 끝났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손에 꼽힐 만큼 길고도 긴 시간이었다.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령 이후 많은 것들은 ‘초유’라는 수식어로 표현됐다. 현직 대통령이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 것도, 현직 대통령이 체포·구속된 것도, 한 부장판사가 해괴한 셈법으로 파면된 대통령의 구속 취소 결정을 내린 것도, 대통령 권한대행이 탄핵된 것도, 폭도들이 법원에 난입해 폭동을 일으킨 것도, 대법원이 전례 없는 방식으로 정치에 개입하려 한 것도,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에 공동 책임이 있는 정당에서 그를 옹호하는 후보자가 배출된 것도 하나같이 전례 없는 초유의 일이었다.
‘대통령 이재명’은 그렇게 많은 우여곡절과 불안, 공포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은 다수 국민의 의지로 지난 4일 오전 취임 선서를 할 수 있었다.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거듭됐음에도 대선은 생각보다 박빙으로 흘렀고, 당선자의 득표는 여전히 과반을 이루지 못했다. 이처럼 극단적으로 분열된 폐허 위가 이재명 대통령이 서 있는 자리다. 다시 국민들이 희망과 기대를 품도록 많은 것을 정돈해야 할 자리이기도 하다.
검찰 공화국, 내란 공화국을 넘어 헌정질서를 복원해야 하고 처참히 무너진 민생경제를 회복해야 한다는 당면한 과제는 말할 것도 없다. 인공지능(AI), 디지털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하고, 일극 체제를 벗어나 다극화하는 세계질서에서 한국 위상을 제고해야 한다. 이 밖에 사법·검찰 개혁, 언론개혁, 저출생과 국민연금 고갈 등의 해법 마련을 통한 복지 체계 재구축 등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다. 여기에 개헌에 대한 사회적 요구 또한 지속적으로 제기될 수밖에 없다. 자칫 집권 기간 내내 숱한 과제만 잔뜩 늘어놓다가 아무것도 매듭짓지 못한 채 흐지부지 끝나버릴 수 있다.
이재명 정부가 이러한 고차방정식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분명하게 원칙 삼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많은 국민들이 내란 혐의를 둘러싼 수사 과정과 결과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파면당한 전직 대통령 윤석열씨는 물론 정부와 대통령실, 군, 정당, 종교계 등 곳곳에 있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자, 부화수행자 등에 대한 사법적 심판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를 통해 헌정질서를 회복하고 케이(K)민주주의가 대한민국 발전의 또 다른 동력의 한 축임을 안팎에 확인시키는 것은 중차대한 일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국민의 심정적 통쾌함 위에서 쌓이는 국정 지지율에 만족해서는 안 될 일이다. 돌이켜보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시작한 문재인 정부가 그랬다. 의도했건 아니건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부정부패 수사와 사법처리 과정에 기대며 높은 국정 지지율 속에서 시작했고, 역대 어느 정부보다 높은 지지율로 마무리했다. 그럼에도 수많은 개혁 과제들은 미완 혹은 실패를 맛봐야 했고, 우리 사회의 근본적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검찰 공화국의 뿌리가 더욱 깊게 내리게 됐다는 비판만 면하기 어렵게 됐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가 시작됐던 2017년에 견줘 한국 사회 지형은 기가 막힐 정도로 급격히 변했다. 극심한 분열과 대립을 통한 대결적 구도는 사회 전반에 걸쳐 고착화되었다. 위헌·위법의 내란에 공공연히 동조하는 이들이 종교와 시민단체의 외피를 쓰고 집권 초기부터 쉼 없이 ‘부정선거’, ‘탄핵’ 등을 운운할 것이고, 보수 언론 등은 권력 감시라는 명분으로 정권 흔들기를 시도할 것이다.
국민 통합, 사회 통합은 너무도 시급한 과제지만 이는 인위적으로, 혹은 보여주기식 이미지를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설령 국정 지지율이 높게 나온다 한들 대립하고 분열된 현실이 개선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허상이며 잠시 덮어질 뿐이다. 궁극적으로 국민 개개인의 삶이 나아지고, 여러 이해집단들의 정치·경제적 조건이 개선됨으로써, 또한 외교·안보 질서 속에서 국가의 이익이 담보될 때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는 것이 국민 통합이고 사회 통합이다. 내란에 대한 단죄는 사법 시스템에 맡기고 대한민국의 미래 가치와 발전에 집중해주길 바란다. 가장 두려워할 것은 지지율이 아닌 역사의 평가다. 이재명 정부가 진짜로 반면교사 삼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 윤석열 정부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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