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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인의 읽는 클래식 듣는 문학] 시인이 상상한 모차르트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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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인 음악평론가·풍월당 이사

나성인 음악평론가·풍월당 이사

뫼리케의 단편 ‘프라하로 여행하는 모차르트’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모차르트와 콘스탄체 부부는 마차를 타고 ‘돈 조반니’의 초연이 있을 프라하로 향한다. 잠시 말을 쉬게 하려고 쉰츠베르크 백작의 성에 들른 모차르트는 그 집 정원에서 남국의 광귤 열매를 보고 호기심과 추억에 젖어 그만 열매 하나를 따버린다. 하지만, 이를 어쩌나. 그 광귤은 백작의 조카딸 오이게니의 약혼식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개수까지 뮤즈의 수 아홉 개로 맞춰 놓은 선물이었다. 백작은 낯선 손님이 깜짝 선물을 망쳐 놓았음을 알고 분해하지만, 백작 부인은 오히려 모차르트의 방문 자체가 더 큰 선물임을 알아차린다. 오이게니가 둘도 없는 모차르트의 팬이었기 때문이다.


모차르트는 결례를 행한 값으로 작은 노래를 한 곡 선물한다. 약혼자 막스는 그사이 써 두었던 축시를 재치 있게 고쳐서 약혼녀에게 낭독해준다. 아폴론(태양신이자 치유의 신)이 소생케 한 이 나무의 열매 하나를 마지막 순간 음악의 신(모차르트)이 가로채 아모르(사랑의 신)에게 나눠주었다는 것이다. 시는 이처럼 현실의 결손을 넉넉히 보상해준다. 음악·낭독·춤·술과 건배…. 18세기 말 살롱 모임의 작은 풍경이 재현된다. 모차르트는 이 따뜻한 회합에 적잖이 위로를 얻었는지 저녁때 아직 초연도 하기 전인 따끈따끈한 신작 ‘돈 조반니’를 좌중에 선사한다.

이 유일무이한 순간은(물론 허구다) 신부를 위한 진정한 선물이 되었을 테다. 그녀는 천상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신비로운 두려움을 느끼고, 천재에게 사심 없는 경탄을 바친다. 바로 이런 것이 곧 시인의 상상력이다. 시인 뫼리케는 이렇게 우리가 영영 잃어버렸을지도 모를 하루를 망각에서 되찾아온다. 천재성 너머에서 인간성을 들춰낸다. 경이로운 하루, 경탄하는 하루, 화해의 하루와 그 행복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그 하루가 허구인들 어떠랴.

나성인 음악평론가·풍월당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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