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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의 엑스레이] [73] 나는 나쁜 정치인이었다

조선일보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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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선거에 출마한 적이 있다. 이력서에 쓸 일은 아니다. 초등학교 전교 회장 선거다. 나는 마산 월영초등학교를 나왔다. 1902년 일본인 소학교로 시작한 역사 때문인지 이상한 전통이 많은 학교였다. 회장을 전 학년 직접선거로 뽑는 것도 희한했다. 요즘은 초등학교 회장도 투표로 뽑는 경우가 꽤 있다고 한다. 민주주의 교육 차원에서 모든 학생이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그거야 민주주의가 기본인 시절 이야기다. 1987년은 민주주의가 기본인 시절은 아니었다. 초등학교도 선거로 뽑는 게 거의 없었다. 교육은 권위주의적이었다. 모든 것은 교장과 교감이 결정했다. 그런 시대에 초등학생 모두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는 건 꽤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돌이켜 보니 1987년은 여러모로 기념비적이었다.

문제가 있었다. 그래봐야 초등학생은 초등학생이다. 스스로 출마를 선언할 정도의 자의식을 가진 학생은 드물다. 요즘 아이들은 조숙해서 다를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확실히 없었다. 모든 후보는 담임들이 결정했다. 내 담임은 내가 회장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동의하지 않았으나 후보가 됐다. 뭐, 후보가 된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는 역대 대통령 후보도 있으니 역사에 큰 오점은 아니었다.

심지어 연설을 해야 했다. 모든 학생을 운동장에 모아놓고 했다. 연설문은 담임이 썼다. 나는 당대 유행하던 웅변 학원 에이스였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자신이 있었다. 나는 연설문을 격렬하게 읽기 시작했다. “학교 앞 불량 식품을 없애겠습니다” 학생들 얼굴이 일그러졌다. 연설문에 그런 대목이 있는 줄도 몰랐던 내 얼굴도 일그러졌다. 초등학교 학생회장 따위가 이행할 수 있는 공약이 아니라는 건 초등학생인 내 양심도 알고 있었다.

나는 전교 회장이 됐다. 불량 식품은 없애지 못했다. 뭐, 역대 대통령 공약 이행률도 20~40% 정도니 역사에 큰 오점은 아니었다. 나는 이 글을 쓰고 투표장에 갈 예정이다. 헛된 공약 중에서 덜 헛된 공약을 선택하는 헛된 목표를 갖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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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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