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로 집을 잃은 경북지역 주민들도, 대북 접경지 주민들도 속속 투표장으로 나와 앞으로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 대통령을 뽑기 위해 소중한 한표를 행사했다.
만 18세 청소년부터 100세 넘는 고령 유권자까지 다양한 세대가 투표장을 찾아 이번 선거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보였다.
◇ 투표시작 전부터 '오픈 런'…온종일 이어진 투표 열기
'투표하는 대구시민들' |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사전투표율에도 전국 각지 투표소 앞에는 오전부터 유권자들의 대기 행렬이 이어졌다.
대구 수성구 매호초등학교에 마련된 고산3동 제6투표소 앞에는 투표 개시 전 50여 명의 유권자가 줄을 섰다.
경기 수원시 영통구 광교중학교 2층 복도에 마련된 광교1동 제9투표소에도 오전 6시 이전부터 50여 명이 대기했다.
부산 해운대구 우동의 한 아파트 단지 내 투표소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현장 사무원은 "오전 6시부터 유권자들이 투표하면서 줄이 생기기 시작한 뒤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투표 열기가 높다"고 전했다.
이곳 투표 열기는 오후에도 이어졌다.
투표소 찾은 유권자들 |
울산 월평초등학교 체육관에 설치된 신정5동 제2투표소에는 점심시간 전후로 유권자가 몰리면서 7∼8명이 줄을 서 자기 순서를 기다렸다.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투표소를 찾은 부모들, 나들이 가기 전에 다 같이 투표에 나선 가족도 있었다.
교대근무를 하는 생산직 근로자들은 퇴근길에 짬을 내 투표소를 찾거나, 출근 전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 뒤 바쁜 발걸음을 옮겼다.
전국 곳곳 투표소에서 시민들은 자녀에게 투표 방법과 민주주의에 관해 설명하기도 하고, 함께 투표 인증사진을 남기느라 투표를 마치고도 한동안 투표소 앞에서 머물렀다.
◇ 집 잃은 경북 산불 피해 주민들도, 섬마을 주민들도 '한 표'
지난 3월 말 대형 산불로 큰 피해를 본 경북북부지역 유권자들도 투표소에서 한표를 행사했다.
산불로 집이 타 영덕군 영덕읍 국립청소년해양센터에 머무는 영덕읍 석리 주민들은 이날 오전 함께 차를 타고 투표소를 찾았다.
석리 주민 김모(70)씨는 "산불 피해로 임시거처에 머물고 있지만 투표에는 당연히 참여했다"며 "마을 주민 100%가 투표했다"고 말했다.
제21대 대통령은 누구 |
산불로 집이 전소된 안동시 임하면 주민 박모(70)씨는 "아직 마음은 심란하지만 국민 권리이자 의무인 투표를 포기할 수 없어서 투표장에 나왔다"며 "재난에 잘 대처하는 후보가 당선됐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경남 통영시 한산면의 부속 섬인 죽도·호도·용초도 주민 31명은 오전 7시 첫 배를 타고 선관위가 제공한 행정선과 유람선을 이용해 면사무소가 있는 한산도로 이동했다.
죽도 정석재(64) 이장은 "섬 주민들 대부분이 고령인데, 나라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침부터 모두 함께 투표소를 향했다"고 말했다.
충남 보령시 삽시도 오천면 제4투표소에서는 바닷일을 앞두고 작업복 차림으로 투표소를 찾은 주민들이 눈에 띄었다. 태안군 가의도 주민 72명도 일찌감치 투표를 마쳤다.
'육지 속 섬마을' 강원 화천군 화천읍의 파로호 동촌1리 주민들은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10㎞ 떨어진 투표소로 이동했다.
이모(84) 씨는 "1989년부터 단 한 번도 투표를 거른 적이 없다"며 "오늘까지도 어떤 후보를 찍을지 고민하고 있었고, 투표소에서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민통선 안에 있는 파주 대성동 마을과 통일촌, 해마루촌 주민들은 장단출장소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쳤다.
◇ 투표소가 된 레슬링장과 고기 굽는 식당…이색 투표소 눈길
레슬링장에 마련된 투표소 |
이날 투표소로 변신한 부산 수영구 남천동 한 레슬링 체육관에는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려는 유권자들의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섰다.
레슬링 동호인들이 평소 땀을 흘리며 힘겨루기하던 바닥 위에 기표소가 설치됐다. 벽면에는 각종 레슬링 관련 물품과 사진 등이 전시돼 있었다.
투표함 뒤 빨간색과 파란색의 레슬링 슈트를 입은 두 선수가 뒤엉켜 힘겨루기하는 그림은 선거기간 서로를 비난하며 힘겨루기에만 몰두했던 여야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유권자의 소중한 한표가 더해지면서 스포츠 정신을 발휘해 서로 살을 맞대며 화합하는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경기 광명시 소하2동 제4투표소가 마련된 한 식당에도 투표하려 온 시민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이 식당은 건물 일부를 투표 공간으로 제공했다. 이 때문에 한쪽에선 손님들이 점심을 먹고 문으로 분리된 다른 쪽 공간에서는 유권자들이 기표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고기 굽는 냄새가 솔솔 풍기는 투표소의 모습은 말 그대로 이색 풍경이었다.
식사하러 식당을 찾은 김모 씨는 "식당에 줄을 선 줄 알았는데 가까이 와서 보니 투표하는 줄이었다"며 "식사와 투표가 동시에 진행되는 모습이 특이했다"고 말했다.
고깃집에서 대선 투표 |
수원시 팔달구 노블레스 웨딩컨벤션 2층에는 우만1동 제4투표소가 설치됐다.
1층 로비에 들어선 유권자들은 '투표소는 2층입니다'라는 안내문을 따라 엘리베이터와 계단으로 이동했고, 복도에 앉아 있던 사무원들의 안내를 받아 차례로 투표를 마쳤다.
한 30대 시민은 "이 동네에 오래 살아서 투표할 때마다 이곳 웨딩홀을 찾고 있다"며 "가깝고 시설도 깔끔해 편하게 투표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도화장난감대여소는 이날 하루 투표소로 변신했다. 장난감은 잠시 한쪽 벽면에 쌓아둔 채 기표대와 각종 집기 등이 놓였다.
오후 2시 30분께 어린 세 딸, 남편과 함께 투표소를 찾은 박상미(39)씨는 "아이들이 많이 이용했던 곳인데 오늘은 투표하러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고 말했다.
광주 동구에서는 탁구장과 신체 교정원이 투표소로 탈바꿈했고, 광산구에서는 양궁장·유치원·윤상원기념관이 투표소로 활용됐다.
◇ 만 18세 청소년부터 121세 노인까지…SNS엔 인증샷 물결
2019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선거연령이 만 18세로 낮아지면서 생애 첫 투표에 나선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투표 후 인증사진을 찍으며 투표의 순간을 기록했다.
'투표율 높였어요' |
세종시에 거주하는 고등학교 3학년 한은경(18) 양은 이날 아침 어머니와 함께 동네 투표소를 찾아 생애 첫 투표를 마쳤다.
은경 양은 "감회가 새롭다"며 "내가 직접 나라를 대표할 대통령을 뽑을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생애 첫 투표에 나선 청소년들이 있다면, 100세를 넘긴 고령 유권자도 투표소를 찾아 소중한 권리를 행사했다.
충북 옥천에서는 주민등록상 1904년생으로 기록된 이용금(청산면 삼방리) 할머니가 딸의 부축을 받아 청산면 다목적회관에 마련된 투표소를 찾았다.
이 할머니는 "생전 마지막 대통령 선거가 될 수도 있어 꼭 참여하고 싶었다"며 "훌륭한 사람이 뽑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앞서 오전 7시 30분 충주시 살미면 세성초등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투표소에선 1923년생으로 올해 102세인 서병국 할아버지가 소중한 한표를 행사했다.
가족의 부축을 받아 투표소 안으로 들어서자 다른 유권자들이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투표 마친 '주민등록 121세' 이용금 할머니 |
온라인상에서는 MZ세대(1980년대초∼2000년대초 출생)를 중심으로 '취향별 투표 인증' 게시물들이 올라왔다.
K팝 팬들은 아이돌 포토 카드와 인형 위에 도장을 찍고, 야구팬들은 좋아하는 구단의 캐릭터가 그려진 용지를 활용해 투표를 인증했다.
세븐틴 팬이라는 박모(26)씨는 연합뉴스에 "'최애' 멤버인 원우의 포토 카드를 챙겨서 인증 사진을 찍었다"며 "기표 도장을 찍은 포토 카드는 다이어리에 꽂아 보관할 것"이라고 말했다.
직접 만든 인형에 기표 도장을 찍어 인증하는 유권자도 있었다.
이주하씨는 "인형 가슴의 자동차 일러스트에 투표 도장을 핸들처럼 찍어 '이제는 멈춤을 넘어 앞으로 나아가자'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예술가로서 투표도 하나의 창작처럼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인형과 투표 인증 |
(박세진 변지철 김용태 오수희 이정훈 나보배 이영주 박병기 전창해 정다움 김상연 박영서 이주형 장지현 심민규 최재훈 기자)
wildboa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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