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미래 먹거리' 영토를 넓혀라
[5] 흔들리는 임상 강국 명성
비만약 성분 임상 절반 중국서 진행
노하우 축적되며 데이터 질도 향상
전체 임상 건수는 이미 미국 앞질러
정부 투자, 디지털화로 인프라 확장
최근 세계 제약·바이오 시장의 눈은 장에서 분비되는 한 호르몬(GLP-1)과 비슷하게 생긴 물질(GLP-1 유사체)에 쏠려 있다. '위고비'나 '마운자로' 같은 유명 비만약의 주요 성분인데, 당뇨병에 이어 뇌와 간질환 치료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경쟁적으로 임상시험이 이뤄지고 있다. 최대 격전지는 단연 중국이다. 지난해 2월 기준 세계 GLP-1 유사체 임상 289건 중 절반이 넘는 149건이 중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임상 데이터는 '못 믿는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독보적인 규모로 임상 수를 늘리고 노하우를 축적하면서 데이터의 질이 크게 향상된 지금은 글로벌 기업들이 줄을 서는 임상 강국이 됐다. 특히 중국이 임상 인프라 고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미국과 유럽 빅파마들의 전유물로 여겨져 온 블록버스터 혁신신약을 내놓을 수 있는 양적, 질적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중국 임상의 경쟁력은 규모에 있다. 수백~수천 명의 환자를 관리하고 이들에게 투여할 약을 공급하는 인프라를 갖췄다. 그 중심에 중국 최대 임상시험 수탁기업(CRO) 타이거메드가 있다. 이 회사가 운영하는 GLP-1 유사체 전용 임상 시설이 중국 내 200개에 이른다. GLP-1 유사체 전담팀도 만들어 임상 단계별 프로세스를 인공지능(AI)이 적용된 원격 시스템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5] 흔들리는 임상 강국 명성
비만약 성분 임상 절반 중국서 진행
노하우 축적되며 데이터 질도 향상
전체 임상 건수는 이미 미국 앞질러
정부 투자, 디지털화로 인프라 확장
편집자주
다음 세대의 삶을 책임질 미래 첨단 산업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추격자였던 중국이 선도국으로 변모하는 사이 한국 기술은 규제와 정쟁에 발목 잡혀 제자리걸음을 했다. '뛰는 차이나, 기로의 K산업' 2부에선 미래 산업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한 전략을 분석했다.인공지능(AI)을 접목한 대규모 임상시험 인프라를 활용해 혁신신약을 개발하는 모습을 생성형AI가 그린 그림. 이재명 기자·달리3 |
최근 세계 제약·바이오 시장의 눈은 장에서 분비되는 한 호르몬(GLP-1)과 비슷하게 생긴 물질(GLP-1 유사체)에 쏠려 있다. '위고비'나 '마운자로' 같은 유명 비만약의 주요 성분인데, 당뇨병에 이어 뇌와 간질환 치료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경쟁적으로 임상시험이 이뤄지고 있다. 최대 격전지는 단연 중국이다. 지난해 2월 기준 세계 GLP-1 유사체 임상 289건 중 절반이 넘는 149건이 중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임상 데이터는 '못 믿는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독보적인 규모로 임상 수를 늘리고 노하우를 축적하면서 데이터의 질이 크게 향상된 지금은 글로벌 기업들이 줄을 서는 임상 강국이 됐다. 특히 중국이 임상 인프라 고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미국과 유럽 빅파마들의 전유물로 여겨져 온 블록버스터 혁신신약을 내놓을 수 있는 양적, 질적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AI 시스템이 임상 환자 원격 모니터링
2024년 7월 중국 상하이 장강에서 타이거메드가 개최한 임상시험 심포지엄에 참석한 이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타이거메드 제공 |
중국 임상의 경쟁력은 규모에 있다. 수백~수천 명의 환자를 관리하고 이들에게 투여할 약을 공급하는 인프라를 갖췄다. 그 중심에 중국 최대 임상시험 수탁기업(CRO) 타이거메드가 있다. 이 회사가 운영하는 GLP-1 유사체 전용 임상 시설이 중국 내 200개에 이른다. GLP-1 유사체 전담팀도 만들어 임상 단계별 프로세스를 인공지능(AI)이 적용된 원격 시스템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거대 임상 규모를 뒷받침하는 의약품 원료 제조 인프라의 대표 기업으론 우시앱텍이 꼽힌다. GLP-1 유사체의 원료를 공급하기 위해 지난해 중국 창저우 생산시설의 용량을 기존의 3배인 4만1,000리터로 확장했다. 연간 생산량 약 20톤에 해당하는 물량으로, 비만약 1,660만 명분을 만들 수 있다. 올해 말까지 생산능력을 최대 10만 리터로 늘릴 계획이다.
중국 창저우에 있는 우시앱텍의 공장 전경. 생산 능력 향상을 위해 2024년 규모를 확장했다. 우시앱텍 제공 |
동물실험에선 오래전부터 압도적인 규모를 보여왔다. 윈난성의 중국과학원 쿤밍영장류연구센터는 유전자를 편집한 원숭이를 연간 3,000마리 이상 생산해 알츠하이머병과 파킨슨병 연구에 활용한다. 우시앱텍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용 독성시험의 70%를 중국 내 원숭이 모델로 수행한다. 국가실험동물자원은행에선 다양한 유전자 변형 생쥐를 곳곳의 연구시설에 공급한다.
한국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제약사 주도 임상시험 점유율에서 중국(14.59%)은 미국(21.15%)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2022년과 비교해 미국(23.57%)은 감소한 반면, 중국(11.34%)은 상승세다. 지난해 한국(3.46%)은 전보다 점유율이 감소하며 6위로 밀려났다. 전체 임상 건수에선 2023년 국제 임상시험등록플랫폼 기준으로 중국(1만6,612건)이 이미 미국(9,100건)을 크게 앞질렀다. 글로벌 조사업체 사이트라인에 따르면 2019~23년 전 세계 임상의 31%가 중국에서 수행됐다.
정용삼 중국 난징농업대 동물의학과 교수는 "중국의 인구 규모(약 14억 명)는 다양한 환자군 모집에 매우 유리하다"라며 "중국은 2020년부터 국제 기준에 맞는 임상 가이드라인을 도입해 임상 데이터의 국제 호환성도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젠세계 제약사 주도 임상시험 국가 점유율. |
정부가 분산형 임상시험 적극 추진
임상시험에 참여한 한 환자가 전자 설문지를 작성하고 있다. 메디데이터 제공 |
국내 전문가들은 중국 임상 인프라가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짚었다. 가령 중국 정부는 '분산형 임상시험' 도입을 적극 추진하며 관련 정책과 지침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이는 모바일이나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약을 우편으로 배송하는 등 기존 병원 중심 체계를 벗어난 임상시험 방식을 말한다.
변화는 곧바로 나타났다. 2020~24년 중국 기업들의 임상은 83%가 자국에서 실시됐다. 자국 신약 출시는 2015~19년 9개에서 2020~24년 76개로 크게 증가했고, 해외 신약을 자국 임상을 거쳐 출시하는 데 걸린 기간은 2005~09년 평균 9.6년에서 2020~24년 3.7년으로 확 줄었다. 김혜지 메디데이터 아시아·태평양 마케팅 총괄대표는 "코로나19 이후 중국에선 정부 주도의 기술 혁신과 맞물려 임상 환경이 디지털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별 신약 후보물질 보유 현황 |
압도적인 임상 인프라는 혁신신약 개발과 유망 후보물질 발굴로 이어졌다. 중국 제약사 베이진의 항암제 '브루킨사'가 2019년 FDA 문턱을 넘은 후 2022년 '카빅티', 2023년 '록토르지', '프루퀸티닙', '라이즈뉴타', 2024년 '테빔브라'가 잇따라 FDA 승인을 받았다. 모두 중국이 개발했거나 공동 개발에 참여한 암 또는 혈액질환 치료제다.
사이트라인에 따르면 중국이 보유한 신약 후보물질은 2022년 4,189개, 2023년 5,402개, 2024년 6,098개로 미국과 격차를 좁혀가고 있다. 한국은 2023년 2,627개, 2024년 3,233개다. 중국을 보는 글로벌 제약사의 시각도 달라졌다. 중국 데이터플랫폼 넥스트파마가 밝힌 중국의 신약 기술수출액은 2021년 109억 달러, 2022년 285억 달러, 2023년 412억 달러, 2024년 522억 달러로 증가세다. 다만, 실험동물 윤리와 데이터 신뢰성 문제는 여전한 약점이다.
이재명 기자 nowlight@hankookilbo.com




























































